로그인메뉴

칼럼 | 북한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중국이 받을 수 있는 두 개의 한반도 통일 방안이란 무엇일까?

북경대 김동길(金東吉) 교수의 제안. 통일 후 38도선 이북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방안, 북한 지역과 만주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어 평화지대화 하는 방안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본문이미지
1951년 7월 12일 개성 휴전회담에서 오전회의를 마치고 떠나기 전의 북한과 중공군 대표들./조선DB

중국 북경대 김동길(金東吉) 교수는 작년에 '북조선에 대한 중국의 인내력: 그 임계(臨界)의 사적(史的)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김 교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영구적인 게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북한을 지지하는 데서 생기는 부담이 그로부터 얻는 이익을 초과한다면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데, 아직 그런 임계엔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전에 중공군이 개입한 과정을 들여다 보면 한때 중국은 북한을 '사석(捨石)'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모택동이 군대 파견을 망설였다는 기록이 많다. 파병 결정은, 중공군 파견이 한국군과 미군이 평양~원산선에서 북진(北進)을 멈추게 만들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뤄졌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피를 흘리지 않고 북한의 북부를 확보하는 게 된다. 한국전 개입은 북한의 구원이 아니라 영토의 확보였다.>
  
  
   모택동(毛澤東)이 팽덕회(彭德懷)에게 지시한 최초의 작전방침은 수세적이었다.
   <북쪽 산악지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적군(敵軍)이 평양-원산선을 고수하고 더 이상 북상(北上)하지 않으면 우리도 평양, 원산을 공격하지 않는다.>
 
   1950년 11월7일 영국군 참모총장 슬림 원수는 영국 합참회의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유엔군은 한반도에서 가장 좁은 지역(注: 평양-원산선)을 선택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해야 한다(유엔군의 현재 포진은 너무 넓어 방어하기가 쉽지 않고 한국군은 중공군의 첫 공격에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하면 중공군도 압록강 남쪽에서 머물면서 협상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헨리 키신저의 생각도 같다.
 
   <중국의 한국전 개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미국의 정책은 미군의 진격을 한반도의 가장 좁은 선(주: 평양~원산선)에서 멈추고 나머지 북한지역을 국제관리 하에 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워싱턴이 맥아더에게 압록강에 접근할 때는 한국군 이외의 병력은 투입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런 방향의 정책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 명령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정책화되지 못하였다. 맥아더는 그 명령을 '실천 불가능'이라고 무시하였다. 워싱턴은 전역(戰域) 사령관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통에 따라 지침을 고수하지 않았다.>(키신저 著 '외교'에서 발췌)
    
   한미(韓美)합동군사훈련을 할 때 미군은 계획서에 압록강~두만강에서 남쪽으로 50km까지를 작전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 훈련이라도 중국을 자극하기 않으려는 조심성이 느껴진다.
 
   미국의 전략 담담자들 사이엔 한국전 당시 중공군의 개입과 미군의 총퇴각이 하나의 트라우마이다. 이는 북한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이나 통일과정에서 무력 개입을 계획할 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동길 교수는 북한의 존재가 중국에 가장 크게 득이 되는 부분은 미군을 38도선 이남(以南)에 묶어두는 점이라고 했다. 역사적 경험에서, 중국은 서해와 발해만을 북경 침공 루트라고 생각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일본, 영국, 독일은 여순, 위해, 청도 등 서해 및 발해만의 연안 도시들을 점령하였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에 대응하여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접근할 때 맹렬하게 반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두 번째 이득은 중국이 북한의 존재 덕분에 분단된 남북한을 조종하기 쉽다는 점이다. 남북한이 중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 편으로 기울면 북한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이 중국의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과 군사동맹이 되려는 것을 방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의 천연자원과 2500만 명의 시장에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김동길 교수는 현재의 미중(美中) 관계의 갈등이 계속되고 한국이 미국 편에 서는 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였다. 물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이 환영하는 것은 중립적인 통일 코리아이다. 이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한미군 철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보수파도 이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 코리아가 자본주의는 유지하되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방법에 대하여는 중국이 동의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과 한국 보수파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김동길 교수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통일방안 두 개를 소개하였다.
 
   첫째는 미군이 통일 코리아에 잔류하지만 미군 부대는 38도선 북쪽으로는 전개하지 않는 방법이다. 중국이 이런 통일을 지지할 경우 동북 아시아에 새로운 경제권이 만들어져 중국의 동북지방과 몽골과 시베리아의 경제 발전을 자극하고 미국에도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중국은 이 방법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두번째 발상은 한반도가 통일된 후 북한 지역에 경찰력만 배치하는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중국도 중조(中朝) 경계선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을 심양(瀋陽)~장춘(長春) 선까지 물리도록 요구한다. 이렇게 형성된 비무장지대는 '평화지대'로 불리면서 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동의하면 미국도 찬동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안정이 강화되면 주변국도 환영할 것이다.
 
   이미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은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2012년 1월 9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한 국빈 만찬 자리였다. 통상적으로 중국 지도자들은 공산당에서 승인한 준비된 발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공식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그동안 중국 정상(頂上)들과 나눈 의미 있는 대화는 대부분 비공개석상에서 이루어졌다. 이날 만찬장에서 후진타오는 먼저 중국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있지만 중국 인민의 생활수준과 복지수준은 아직도 낮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뒤이어 남북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후진타오에게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이야기했다.
   “통일이 되면 한·중 양국은 1200킬로미터(1300킬로미터인데 당시 잘못 알고 발언했다)의 국경을 마주하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한·중관계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내 발언은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그동안 중국에서는 금기시되는 내용이었다. 과거 한·중 정상 간의 대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통일 후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 문제도 이야기했다. 이 발언은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통일 한국이 미군을 현재보다 더 북쪽에 주둔시키지 않도록 중국의 입장을 배려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정상과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내 이야기를 별다른 반박 없이 듣고 있었다.>
 
   송민순(宋旻淳) 전 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중국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한미군사동맹하의 통일한국을 수용할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미군이 휴전선 이남(以南)에만 주둔하면 될 것이라는 가정도 기본적으로 한반도 전역(全域)이 한미동맹의 영향하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다자(多者)안보체제 수립을 당면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미북(美北)수교를 전제로 하고, 일북(日北)수교가 동행할 것이다. 이는 북한의 개방을 불기피하게 만들 것이다. 개방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존립하느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 자체의 변화 수용 능력에 달려 있다. 통치 불능의 상태로 빠질 경우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원칙인 '주민의 의지'에 좌우될 것이다. 북한주민의 통일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계속 키워야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역이용, 중국을 포위하려 하고 중국은 북한의 핵(核)이 미국을 견제하는 이점(利點)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美中 모두 북한의 핵문제를 서둘러 해결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에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핵탄두를 미국 본토에 투하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고 판단할 때 미국의 계산법은 달라질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독재자의 핵미사일이 중국에도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세적인 대중(對中)압박을 불러 손해가 막심하다고 판단한다면 중국은 북핵(北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조할지 모른다. 그런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즉 북핵(北核)문제가 전쟁 일보 직전이나 벼랑 직전까지 가지 않으면 돌파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출처 | 조갑제닷컴
등록일 : 2016-10-19 10:01   |  수정일 : 2016-10-19 11:23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1건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태미  ( 2016-10-19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4
군사력의 비교 관점은 625전쟁, 월남전이나 월남중국전 같은 50년대 70년대 처럼 보아서는 안된다. 이라크전이나 탈레반전쟁처럼 2000년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폭격과 점령은 큰 문제는 안될 것이다. 다음은 중국의 염려인데, 중국도 미국의 능력과 의지를 생각하면 쉽게 개입하지 못할 것..결론 너무 중국 신경 쓸 것 없다..중국 좀 고려만 해주면 된다. 이게 2010년대 한미중 군사력 수준을 고려한 통일시나리오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