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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성민의 북한정세분석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서 '벽돌 깨는 군인' 되기

글 |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6-08-05 14:36

북한에서의 군복무시절...하루는 중대장과 중대정치지도원이 군인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정일 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이 벽돌 한 장 쯤은 깰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고 했다나 뭐라나. 

들을 때는, 해마다 반복되는 훈련지시겠거니 했지만, 그날 중으로 막사 앞엔 ‘타격대’가 설치됐다. 그래봐야 1미터 정도의 소나무 기둥에 8미터 정도의 참나무를 가로로 눕혀놓고 새끼줄을 칭칭 감아놓은 허접한 것이었지만, 그 허접한 것이 그리도 큰 고통으로 다가올 줄은 누구도 몰랐었다. 나도 그랬다.  

이튿날 아침, 하루일과의 첫 시간으로 중대군인 모두가 타격대 앞에 섰고, ‘천개의 타격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겨울이어서 손발은 꽁꽁 얼어붙고 있는데 그 허접한 타격대를 천 번이나 두드리라니. 

처음 한두 번은 조심히, 또 조심히 타격대를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주먹을 가져다 대곤 했다. 그러다가 지휘관들의 눈초리에 쫓겨 조금 힘을 주기도 하지만 팔꿈치가 징징 울려와 다시 힘을 풀고 열심히 ‘두드리는’ 시늉한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백번을 두드리고 이백 번을 두드리다보면 어느새 주먹에 열이 생기고 팔뚝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 오백 회 정도가 넘어가면 타격대 앞에 선 군인들의 눈가엔 살기 같은 게 번쩍였고 누군가의 선창에 따른 “일당백” 구호가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루 천개의 주먹을 후려치고 나면 왠지 모를 성취감이 치솟곤 했다. 갑작스런 ‘타격훈련’때문에 주먹의 모세혈관이 터져 너도 나도 피오줌을 누는 환경에서도 저들은 웃으며 주먹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 댔다.  

하지만 ‘벽돌 깨는 군인’ 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6개월쯤 지난 뒤 ‘전군 벽돌 깨기’란 우스꽝스러운 훈련판정이 진행되었는데 북한에 무슨 벽돌이 그리 많아서 백만 명도 넘는 군인들 앞에 벽돌을 가져다 놓는단 말인가. 

일부러 벽돌 구하려 사람을 보내서, 100여명 중대군인들 앞에 벽돌을 깔아놓은 곳도 있었지만 막상 벽돌이 아니라 주먹이 터지고 팔뚝 부러지는 인간들만 속출됐다. 

혹시 몇몇의 군인들이 벽돌을 까부수기도 했지만 역시나 ‘장군님’의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김정일은 북한군 군인 모두가 ‘벽돌을 깨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곤 했다. 

총참모부 직속으로 ‘격술연구소’란 것을 만들도록 해 ‘벽돌 깨기 요령’을 예하 부대들에 전수하게 했고 보안성에도 ‘격술연구반’이란 걸 만들어 ‘벽돌 깨기’를 가르치게 했다. 그러다 죽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비의 대를 이은 김정은이 또 다시 북한군 군인들과 보안원들에게 ‘벽돌 깨기’를 주문하고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전 북한군 대위(예술선전대 작가), 현 자유북한방송국 대표.

현재 ‘한국논단’ 편집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국가인권위 ‘북한인권포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고향의 노래는 늘 슬픈가”(시집), “10년후 북한”(공저)이 있음.


등록일 : 2016-08-05 14:36   |  수정일 : 2016-08-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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