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그립다

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3-21 09:47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한일관계는 여전히 출렁댄다. 차라리, 조선 시대의 통신사가 그립다. 요즈음의 상황을 접하면서 오래 전 필자와 인터뷰했던 ‘가도와키 마사토(門脇正人·75)’ 씨의 책을 펼쳐봤다.

<조선은 일본과 아주 가까운 나라다. 예로부터 많은 문화가 조선으로부터 일본에 전해졌다.  무역도 왕성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1592년과 1597년 두 번에 걸쳐서 조선에 출병,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히데요시(秀吉)의 무모한 침략을 비판하고 국교 회복을 시작했다. 그 결과, 양국의 우호의 표시로 1607년 조선으로부터 통신사가 보내졌다.>
 
‘가도와키(門脇正人)’ 씨가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내 엮은 저서 <조선인 가도(街道)를 가다>의 머리말에 쓰인 글이다. 또 다른 작가의 말이다. .
 
시모노세키(下關)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은?
 
본문이미지
시모노세키

“저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1980년에 NHK에 입사해서 처음 부임한 곳이 규슈(九州)의 기타규슈(北九州)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4년간을 살았습니다, 시모노세키(下關)는 간몬해협(関門海峡)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인접 도시라서 자주 방문했습니다. 또한,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경우 잘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는 관부(關釜)페리를 탔습니다, 그래서 시모노세키는 나름대로 익숙한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깊은 관계가 있는 도시이며, 재일 교포도 많은 곳입니다. 도쿄에서 성장한 제가 기타규슈에 가지 않았다면, 한국을 ‘이웃 나라’로, 어디까지 의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기타규슈와 시모노세키와 같은 곳에 생활하면서 ‘가깝고도 멀다’는 일·한 이미지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관념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왕래하는 이웃 관계’로 보는 눈(目)은 젊은 시절,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키웠습니다.”
 
본문이미지
다고 기치로 작가
<조선을 노래하다>의 작가 다고 기치로(多胡吉郞·63) 씨의 말이다. 그는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정치가도, 외교관도 아니기 때문에 두 나라의 관계를 평론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항상 노력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차원·경제의 차원’을 넘어 ‘인간 차원’에서 발언하고 싶은 것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는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의 견실(堅實)한 만남과 교류가 큰 물결이 돼서 두 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벽(壁)’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그렇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다. 그는 분명, 한·일 관계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는 작가였다.
 
조선통신사 최초 상륙지
 
필자가 시모노세키를 간 날도 여전히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공원입구에 안내문이 있었다. ‘녹화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조선통신사 최초 상륙지 기념비가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본문이미지
조선통신사에 대한 기록비(碑)
<조선왕조시대 일본의 초청을 받아 방일(訪日)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남긴 사적(事蹟)은 한 일 양국 간의 기나긴 교류사(交流史)에 선린우호(善隣友好)의 증거로 각별한 의의(意義)를 갖는다.
 
당시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취한 일본과 유일하게 국교(國交)를 맺고 있던 조선의 사절(使節)로서 조선통신사는 모두 12회를 왕래했다. 그 중 최후의 쓰시마(對馬)에서의 대응(對應)에 그쳤던 마지막 회를 제외한 11회까지는 일본본토 최초의 상륙지로서 아카마가세키(현, 시모노세키)에 엄류(淹留)하고 귀로(歸路)에도 이곳을 거쳐 가는 것이 상례(常例)였다.
 
한때는 정사(正使)이하 오백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일행의 방일은 국가외교 뿐만 아니라, 선진 문화국인 조선의 문화사절로서 세련된 학문·화려한 예술·뛰어난 문화의 향(香)을 전하면서 성심(誠心)으로 교우(交友)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존숭(尊崇)의 념(念)을 깊게 아로새겨 문화교류와 친선의 크나큰 성과를 거두었다.
 
본문이미지
조선통신사 기념비

지금,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선린우호의 사귐을 더욱 깊게 구축해야 할 때 조선통신사와 역사적 의의를 재인식 하고자 일행상륙의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그 역사를 길이길이 현창(顯彰)하고자 한다.>
 
김종필의 휘호(揮毫)
 
‘朝鮮通信使上陸淹留之地’는 한일 의원 연맹회장이었던 김종필(1926-2018) 씨가 쓴 글이었다. 달필(達筆)이었다. 때마침 그곳을 찾은 일본 학생들도 ‘달필이다’고 칭찬했다.
 
“참으로 달필이네요.”
 
조선 통신사가 머무르는 아카마 신궁에는 약 50 명이 요리 해서 조선 통신사를 접대했다. 일본인들은 “통신사는 한일 우호의 상징. 역사를 알기위한 양국 관계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선조들의 아픔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모르면서 각기 다른 단편적인 주장만 하고 있는 듯싶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등록일 : 2019-03-21 09:47   |  수정일 : 2019-03-21 13:58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