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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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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평화주의 자(者) 기무라(木村) 씨

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일본인 이야기
 
“조선일보 근처로 장소만 알려주시면 어디라도 좋습니다.”
“네. 코리아나 호텔 로비 5시 어떨까요?”
“좋습니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 기무라 히데토(木村英人·73) 씨와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필자는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장소로 갔다. 지난여름 나가사키(長崎)에서 만난 이후 반년만인 지난 22일의 일이다. 그는 ‘나가사키 평화의 집’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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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거리에서의 기무라 씨

광화문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단체들이 무리지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단체도 있었다.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살아 있는 모습입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일본을 보세요. 아베 신조(安倍晉三) 수상이 아무리 잘못해도 일본인들은 입을 꽉 다물고 있지 않습니까?”
 
기무라(木村) 씨는 필자가 우려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구성원들이 길을 메우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성난(?) 목소리들을 뒤로하고 광화문교보문고로 갔다. 거기에도 사람들이 북적됐다. 기무라 씨는 서점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은 ‘책을 사는 사람들이 소수일 것’으로 생각했단다.
 
“놀랍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독서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만, 서점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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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본소설 코너에서의 기무라씨

기무라 씨가 서점에 간 이유가 있었다. 의사이면서 유명작가인 ‘하하키기 호세이(帚木蓬生)’ 씨의 <세 번 건넌 해협>의 번역본(해협)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가 일본 책 번역본을 사는 것은 소설이 한국어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되고 없었다.
 
기무라 씨는 일본 소설 코너에 일본 작가들의 책이 즐비하고, 일본 소설을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일본에는 한국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일본소설만 별도로 진열한 코너가 있군요.”
 
그는 교보문고에서 임진왜란과 관련한 책을 한 권 사고서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각종 네온들이 낮과 밤의 경계선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무라 씨가 ‘한국에 자주 오는 관계로 매운 음식도 좋아한다’고 해서 광화문에 있는 평범한 식당으로 갔다. 메뉴는 낙지볶음.
 
“보통 맛으로 해 주세요.”
“네. 중간(매운)맛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필자가 주문한 낙지볶음에 대해 기무라 씨와 식당 종업원이 우리말로 주고받은 대화다. 그가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친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남북사진전 참가를 위해 한국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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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사진전에 참가한 기무라(좌) 씨와 이재갑(우) 작가
기무라 씨가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남북사진전 ‘통일의 꽃이 피었습니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22일은 이시우 작가가 ‘금강산 통일 미학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그는 필자도 알지 못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한국을 찾은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저도 모르는 행사에 참가하셨군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입니다.”
 
기무라 씨가 내민 자료를 보자 사단법인 통일의 길과 한반도 경제문화포럼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그는 “남한과 북한 작가의 사진 30점이 전시되어 있었다”면서 “사진예술을 통해서 한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기무라 씨는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조정래 선생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읽고서 지리산을 찾기도 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도 무척 좋아한다. 오래전에 방영된 ‘<형제의 강>과 <허준>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날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기무라 씨는 ‘형제의 강 드라마에서 어린 배우들이 밀양아리랑을 부르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강제노동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 중공업의 손해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됐다. 이 판결 이후 양국 정부 간 국장급회의 가 열린다는 보도만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필자는 기무라 씨의 생각이 궁금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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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의 강제노동에 대해서 말하다가 잠시 침침묵하는 기무라 씨
“제가 법률전문가도, 정치인도 아닌 평범한 시민에 불과하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하지 않겠습니다...그러나,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합니다.”
 
이어서 기무라 씨는 필자가 가지고 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펴낸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박수경·전은옥 옮김)의 183쪽을 펼치면서 말했다.

“여기 있군요. ‘일본 패전 당시 징용공을 포함해 약36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이 나가사키와 그 주변의 산하 및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던 조선인의 수가 13,156명이 넘는다’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강제노동은 사실입니다.”
 
이 책에는 강제노동자에 대한 숫자를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미쓰비시 조선관련 6350명, 미쓰비시제강 관련 675명, 미쓰비시병기제작소 2133명, 미쓰비시 광업 다카시마 탄갱 3500명, 그리고 하시마(군함도) 탄광 500명이다.>
 
필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를 취재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필자와 기무라 씨는 “양국의 관계가 과거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미래를 향한 발전적인 일에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서울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효창동에 있는 복지재단의 숙소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치 자기 집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필자도 지하철을 탔다. 집에 도착하자 둥근달이 중천에 떠있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퇴임하고서도, 쉬지 않고 평화를 위해 헌신(獻身)하고 있는 기무라 씨의 얼굴이 둥근달 속에 들어 있는 듯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24 17:09   |  수정일 : 2018-12-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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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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