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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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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古都), 교토(京都)의 상처

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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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크리스천의 순교지라고 하면 대부분 규슈의 나가사키(長崎)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천 년 고도 교토(京都)도 순교에 대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필자는 교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던 가모가와(鴨川)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400년 전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모가와 고조가와라(5条河原)로 갑시다.”
 
택시 운전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필자의 요구대로 차를 몰았다. 곤도 쇼헤이(近藤聰平·46)라는 씩씩한 운전사였다.
 
“혹시, 특별한 목적이 있으시나요?”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400여 년 전 처형장(處刑場)의 흔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는 계속적으로 의구심을 표출하면서 “제가 운전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습니다만, 처형장을 찾는 분은 손님이 처음이십니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셨나요?”하고 물었다. 필자가 피식 웃으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그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국인이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도 모르는 처형장을 찾으시려고 합니까?”
“그저 궁금해서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가모가와(鴨川)에 다다랐다.
 
상처의 흔적을 찾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바람도 시원했다. 도로변에 작은 석비(石碑)가 하나 있어서 들여다봤다.
 
‘겐나(元和) 크리스천 순교의 지(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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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나(元和, 1615-1624년)는 일본의 연호이다. 에도(江戶) 막부에 의해 당시 크리스천들이 철저히 탄압 당했던 시절이다. 1619년 이 자리에서 55명이 순교를 당했다. 그들은 장작 더미 위해서 27개의 십자가에 겹겹이 묶이어 하늘나라로 갔던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중에서도 가슴 찢어지는 슬픈 사연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순교자 중에 ‘하시모토 테클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3세, 8세, 11세의 어린아이와 같은 십자가에 묶여 불타 죽었다. 천국에서의 재회를 맹세하며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예수, 마리아’를 외치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팔에 안긴 아이들을 놓지 않았다.>
 
이 내용은 당시 교토에서 살던 영국 상인 ‘리처드 콕스’가 쓴 편지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또다른 흔적들을 찾기 위해서 강둑을 걸었다. 풀잎 사이에 작은 시비(詩碑) 하나가 숨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의 꽃을 보면서/ 서성대다보면/ 가모강변에 다다르네./(강에는) 물새가 춤을 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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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시즈요(村上靜代)의 노래가 새겨진 비(碑)였다.
 
‘떨어진 꽃잎들은 저 강물을 따라 흘러갔으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처형당했던 곳
 
순교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418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 또 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동군의 총대장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는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승리의 나팔을 불었다.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체포된 것은 5일 후인 9월 21일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는 이미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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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우도 성터에 있는 고니시(小西)의 동상
1600년 10월 1일. 눈에 핏발이 선 이에야스(家康)는 고니시(小西)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할복하라! 장군으로서의 마지막 모습을 거룩하게 보여라!”
 
“싫소. 나의 목을 치시오. 기리스탄(크리스천)인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가 없소이다.”

“저런, 저런, 저자의 목을 쳐라.”
 
절박한 순간-정토종 승려가 고니시의 머리 위에 경문을 갖다 대려고하자,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크리스천에게 불경을 읊다니...불경 따위는 필요 없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를 불러 달라.”
 
“안 된다. 사제를 불러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서로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다. 다시 고니시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Margarita de Austria-Estiria)로부터 선물 받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聖像)을 주시오.”
 
마지못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니시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다. 고니시는 자신의 머리에 성상을 세 번 대고 난 뒤에 참수됐다. 할복자결을 거부하고 효수(梟首) 당했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지막 명(命)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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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小西)가 처형 당했던 강변

“고니시의 목을 산조 오하시(三條大橋: 현 교토 시의 동서 통로인 다리)에 걸어라.”
 
로구조가와라(현, 5条河原)는 예로부터 권력자에 반항한 정치인·종교인들이 처형당했던 곳이다.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 봤다. 강물은 옛 상처를 기억조차 못하는 듯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 따라 유영(遊泳)하는 물새들을 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5-30 09:13   |  수정일 : 2018-05-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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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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