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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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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의 대표적 예측실패 사례…이란의 마지막 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CIA의 비밀문건으로 보는 한반도

CIA,“모하메드 레자 샤 팔라비는 앞으로 이란의 10년을 통치할 지도자”

⊙ 이란 우익의 붕괴 후회하며 성장한 미국 CIA, 박근혜 탄핵 어떻게 보고 있을까.

⊙ CIA, 이란의 지도자 샤, 좌익세력 호메이니의 혁명으로 무너질때까지 잘못 예측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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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마지막 왕, 샤. 사진=위키미디어

현재 이란은 북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사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이 이란의 것을 함께 해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과거 부시정부는 북한과 함께 이란도 악의 축(Axis of Evil)로 규정한바 있다. 현재는 적으로 분류된 이란이 한때는 미국의 우방이었던 적이 있다. 한미동맹처럼 미국과 이란은 각별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란을 중동의 친미를 기반으로 삼고 다른 중동내 악의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한순간에 미국은 우방인 이란을 잃어버렸다. 1970년대 말까지 이란은 모하메드 레자 샤 팔라비 (Mohammad Reza Shah Pahlavi)가 통치했다. (Shah)는 이란에서 왕을 의미하며 실제 모하메드 레자 샤 팔라비는 이란 팔라비 왕조 출신의 왕이자 통치자였다. 그는 이란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됐다. 당시 미국정부에서는 그를 샤라고 불렀다.
 
미국과 손잡은 이란의 우익정권,  
 
샤는 일찍이 10대부터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문물을 배웠고 서방의 신문물 받아들여 서구식 선진화를 꿈꿨다. 1953년 미국의 지원으로 백색혁명(White Revolution)을 일으킨 샤는 민족주의자였던 모사데그 정권 몰아내고 이란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 그가 집권한 이후부터 샤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파격적인 선진화를 추진한다. 당시 중동권에서는 보기드문 여성의 참정권 보장은 물론이고, 토지개혁, 농업화에서 산업화로의 전환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이때 산유국 이란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세금도 걷지않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70년대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국가였다. 당시 전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이란의 테헤란이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이란의 여성들은 형형색의 미니스커트와 나팔바지를 입고, 남자들은 유명가수처럼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렀다. 도로의 차들도 유럽의 폭스바겐 등이 즐비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파격변화에 1970년대말 이란의 국민들과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CIA의 보고서에서 이란의 경제지표를 보면 취업난이 심각했고, 인구중 3분의 1 30세 이하 젊은이들이었다. 점차 사회적으로 문제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대학생들이 때때로 데모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나왔지만, 당시 CIA의 보고서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77 11 18일 작성된 CIA의 〈주간요약보고서(weekly summary)〉에서 이렇게 쓰여있다.
 
“샤의 통치에 있어 그는 아무런 내부 위협이나 정치적 반대파가 없는 상태다. 그는 향후 10년을 통치할 가능성이 높다(There is no serious domestic threat or political opposition to the Shahs rule. he would seem to have an excellent chance to rule into the next decade).
 
CIA가 이란내 샤의 반대세력이 싹트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샤는 대학생 데모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데모의 규모도 점차커지고 경찰과 군을 동원하면서까지 막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중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CIA는 샤의 몰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계엄령을 선포하는 상황에 도달했음에도 샤가 여전히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1979 1월 시민들의 혁명에 국가는 무너졌다. 혁명의 수장인 호메이니에게 통치권을 물려주고 샤는 이란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그는 이란 땅을 밟지 못한채 타국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는 당시 암을 앓고 있었고, 암 때문에 잦은 두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CIA는 그가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CIA는 연이어 빗나간 예측보고서를 계속 작성했으며, 실제 샤가 좌익세력인 호메이니가 주도한 시민혁명으로 추방당하기 직전까지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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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몰아내고 시위로 정권에 올라온 호메이니. 사진=위키미디어

샤 정권 붕괴 예측 실패한 CIA의 후회와 교훈
 
샤 정권 붕괴이후 약 넉달이 지나, 1979 6 CIA는 사후 분석보고서를 만든다. 앞서 CIA가 왜 잘못 예측한 것인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왜 샤의 집권붕괴 예측에 실패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급비밀(Top Secret)으로 분류된 150장 분량의 보고서다. 보고서의 제목은 《국가 분석 센터의 이란 내란 1977년 중순~1978 11월 실적 분석보고서》 다. 보고서는 이 보고서의 목적에 대해서 “1977년 여름부터 1978 11월까지 샤 정권이 생존하지 못할 것임이 명확했음에도 왜 그런 실적을 냈는지, 당시에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검토해본다”고 적혀있다.
 
보고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란은 전례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수집된 정보를 잘못 해석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당시 보고서가 데모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그 데모를 만든 세력과 샤의 반대세력에 대한 분석에 소흘했다는 점을 꼬집었다(the conditions under which the opposition would split; the depth of the feelings against the Shah). 뿐만 아니라, 당시 수집된 현장정보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도가 높은 정보들이 포함되지 않고 무시됐다. 이런 정보를 간과하면서 정확한 분석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작성된 보고서들은 상당수가 잘못된 정보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뿐 아니라 다른 관련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이란 비밀정보국 사박(SAVAK)이 미국 CIA와 반대파 좌익 세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사박은 반대파 진영에 대한 상당량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미국측에 이를 보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외부로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추측이 있다.
 
이란의 샤 정권 붕괴 사건은 미국 CIA의 역사상 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CIA는 이런 실패의 교훈을 토대로 발전했다. 해당 사건은 CIA 내부적으로도 교육자료로 활용하며,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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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난 당 대표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박근혜 탄핵을 지켜봤을 미국 CIA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이던 2016년말부터 2017 3월 탄핵이 결정될때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란의 지도자 샤를 연상케 한다. 당시 박 대통령의 임기중 여러차례 촛불시위가 있었고, 세월호를 기점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인 좌익진영을 주축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시위가 거세졌다.
 
세월호 이후 2015년부터 시위는 점차 거세졌다. 광화문 거리에는 민주노총 등이 민중총궐기 집회 등을 열었다. 민노총, 전농 등 53 8만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당시 국정농단과 탄핵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이다. 집회 참가자들을 쇠파이프 등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 수십대를 집회 참가자들이 때려부섰다. 버스의 유리창을 깨고, 일부는 경찰버스의 기름통에 불이 붙은 천을 집어넣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과격 폭력 시위가 거듭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데모에 참가한 반정부 대세력은 이들의 청와대 행을 막는 경찰을 향해 과잉진압이라고 했다. 이 장면이 다수의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어 보도됐다. 한때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숨어들어가는 사건도 있었다.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 태블릿 PC가 언론을 통해 등장,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기폭제가 됐다.
 
과연 미국 CIA가 현재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란의 샤 정권 붕괴 예측 실패를 딛고 일어난 CIA가 한국의 박근혜 정권 붕괴 과정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2 27,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이 구형이 내려진 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녀 사냥(Witch Hunt)’이라는 단어 하나만 달랑 올렸다. 한국에서 검찰이 해당 발표를 하고 불과 몇시간이 지난 뒤였다. 당시 발표시간은 한국시간으로는 오후였지만 미국 동부는 이른 새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경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트위터를 게재했다. 미국 대통령은 매일 수시로 CIA 국장으로부터 각종 정보 보고를 받는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4-20 14:05   |  수정일 : 2018-04-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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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라운드 하우스(Round House)는 조선시대 '원실'(圓室)이라고하며, 일본에서는 '원형기관차고'(円形機車庫)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당시 열차와 같은 '운송수단'의 집합소이자, 수리실이었습니다.

라운드 하우스를 통해서 필자와 함께 둥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둥근바퀴로 풀어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라운드 하우스를 붙여서 한 단어로 말하면, 돌려차기 혹은 훅(hook) 펀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독자분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필자와 함께 시원한 한방을 날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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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 2018-04-26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3
안녕하세요
이은우  ( 2018-04-22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5
오늘의 박근혜를 만든 요물은 TV조선, 이진동이 아니던가?
지나가다  ( 2018-04-22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20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의 배후로 의심받는 CIA입장아서 가장 걸끄러운 인물이 박근혜였을 것이고, 북경의 열병식에 참가한 것은 미국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을 겁니다. 부친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이어받았을 가능성때문에도 오히려 CIA는 사태를 방조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아마도 록히드 마틴의 싸드 도입을 촉구하면서 공론화 시키고 KFX무용론을 주장하던 세력을 앞세워 탄핵 사태를 주도한게 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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