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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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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양 의술 발상지를 찾아서...오이타의 알메이다 병원

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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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人 ‘루이스 데 알메이다’
 
일본의 구마모토(熊本)현 아마쿠사(天草)에 크리스천관(館)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기념관은 혼토성(本渡城)이 있었던 곳이다. 기념관 내부의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기에 눈으로만 확인하고 외관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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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의 크리스천 기념관

기념관 아래에는 크리스천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드문 십자가를 많이 만날 수 있다. 거기에서 필자는 한 서양인에 대한 기념비를 찾았다. ‘루이스 데 알메이다(Luis de Almeida, 1525년-1583년)’라는 인물의 비(碑)였다. 간단명료하게 정리돼 있는 그의 생애를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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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에 있는 크리스천 묘지

<알메이다(Almeida)는 152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나 21세에 의사 자격을 획득, 동양 무역상인(貿易商人)으로 활약했다. 1555년 히라도(平戶)에 건너가 예수회에 입회했다. 사재를 털어서 오이타(大分)에 고아원을 세움과 동시에 종합병원을 개설하고, 임상적 외과의(外科醫)를 양성하는 등 일본 최초로 서양의학을 전래했다.>
 
<1561년 이후에는 포교활동에 전념했다. 1566년 시키(志岐)씨의 초청으로 래도(來島)해서 섬의 각지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1583년 아마쿠사(天草)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기념비는 알메이다의 생애를 기념하고 생을 마감한 지역에 세운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키(志岐)씨는 크리스천 다이묘(大名)인 시키 시게쓰네(志岐 鎮経)이다. 그는 아마쿠사에 알메이다를 초청해서 포교를 허가했다. 이를 계기로 아마쿠사에 기독교가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키(志岐) 자신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이타의 알메이다 병원

필자는 지난 달 25일 오이타(大分)에 간 김에 ‘루이스 데 알메이다(Luis de Almeida)’의 흔적을 찾았다.
 
그는 기념비에 쓰인 대로 전국(戰國)시대 말기 일본을 방문한 포르투갈인 이다. 상인(商人)이었지만 의사 면허를 지니고 있어서 일본 최초의 서양 병원을 만든 인물이다.
 
알메이다(Almeida)는 1525년 유태교에서 가톨릭으로 바꾼 콘베르소(converso:개종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546년에 포르투갈 왕이 부여하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세계를 향한 웅비를 꿈꾸면서 인도의 고아(Goa)를 거쳐서 마카오((Macau)에 갔다. 1552년 무역을 목적으로 일본을 첫 방문했고. 일본과 마카오를 왕래하면서 제법 많은 부(富)를 쌓았다.
알메이다는 일본의 야마구치(山口)에서 예수회 선교사 ‘코스메 데 토레스(Cosme de Tones)’ 신부를 만난다. 신부는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rancisco Xavier)’의 사업을 계승해 일본에서 포교를 계속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알메이다는 1557년 외과·내과·한센병과(Leprosy)를 갖춘 종합병원을 세웠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병원이며, 그 장소가 바로 ‘분고의 나라(豊後國)’ 오이타(大分)인 것이다.
 
“알메이다 병원으로 갑시다.”
 
운전은 아베 유이치(阿部祐一·63)씨가 했고, 오이타 의회 의장 이노우에 유코(井上裕子·66)부인이 뒤를 따랐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서 병원을 찾았다.
 
알메이다를 기리기 위해서 명명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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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메이다 병원 외관

병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일단, 로비에 있는 알메이다의 흉상에 카메라의 렌즈를 맞췄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했던 동상과는 달라서 안내원에게 물었다. 안내원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알메이다 병원의 사무부 차장 안도 마사요시(安東雅由)씨였다. 필자의 설명을 듣던 그는 미소를 띠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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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내의 알메이다 흉상(좌 : 이오우에 부인)

“그 동상 말씀이십니까? 오이타 현청 앞에 있습니다.”
“그래요? 제가 거기에서 왔습니다만....”
 
안도(安東)씨는 지도를 펼치면서 동상이 서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병원의 연혁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병원은 1969년 4월 1일 이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지상 6층, 지하 1층의 건물에 100개의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입니다.”
 
필자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이 병원이 알메이다씨가 세운 병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세운 병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60년 전의 일이 아닙니까? 그가 오이타에 일본 최초의 서양병원을 세운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이 병원에 ‘알메이다’씨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닌가. 동행한 아베(阿部)씨와 이노우에(井上)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업을 해서 번 돈으로 병원에 투자했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우러나서 한 것이다.
 
필자 일행은 다시 차를 돌려 출발점인 오이타 현청으로 갔다. 현청 앞 작은 공원에서 비를 맞고 있는 동상을 발견했다. 무척 반가웠다.

 
기업인이 만들어 시민들에게 기증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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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술발상 기념상

동상(銅像)은 환자를 돌보는 ‘알메이다’씨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품이었다. 동상의 이름은 ‘서양 의술 발상(發祥) 기념상’-그 옆에 있는 설명문을 중복된 부분을 빼고 옮겨본다.
 
<...병원은 외래 외에 입원 설비를 갖추어 1562년에는 입원환자가 100명을 넘었다. 더불어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를 위해서 순회 진료를 행하였다. 또한, 병원에 일본 최초의 의학학교를 병설해 젊은 일본인 학생들이 서양 의학을 배웠다...세월이 흘러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어 이 기념비를 세우고 이를 시민(市民)들에게 기증한다.>
 
이 기념비는 1972년 한 기업인이 일본의 유명 작가인 ‘고가 타다오(古賀忠雄, 1903-1979)’씨에 의뢰해서 만들어졌다. ‘알메이다’의 훌륭한 업적이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필자는 알메이다의 기념상 앞에서 비를 맞으면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서양의술을 전파한 알메이다 씨의 훌륭한 업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후세에 길이길이 남기려고 동상을 세운 기업인도 훌륭한 사람이다.’
 
봄비를 맞은 동상(銅像)의 색깔이 더욱 짙어졌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0 14:50   |  수정일 : 2017-05-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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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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