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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첫 국산 항모의 이름이 ‘산둥호’인 이유는?

글 |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중국학술원 연구위원·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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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초 국산 항공모함 산둥호(가칭) 진수식. photo 신화·연합

중국 해군이 지난 4월 26일 오전 9시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항에서 최초의 국산 항모 ‘산둥(山東)호’(가칭) 진수식을 가졌다. 진수식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판창룽(范長龍) 상장(우리의 대장에 해당)과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 선진룽(沈金龍) 중장이 주재했다. 산둥호는 앞으로 전자장비 버그(bug) 바로잡기 작업을 거쳐 내년 12월 말쯤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미 랜드(RAND)연구소의 중국군사문제 전문가 마이클 체이스를 비롯한 미군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둥호는 중국이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 5만5000t급(표준배수량) 항모 랴오닝호보다 체적이 다소 적은 5만t급이다. 구소련의 쿠즈네초프급 디자인으로, 핵 추진이 아닌 석유스팀터빈 방식의 항모다. 중국 관영 CCTV의 4월 26일 다롄 현지발 보도에 따르면, 산둥호는 랴오닝호에 비해 체적은 다소 적지만 갑판 위의 함도(艦島·Island) 구조물이 차지하는 넓이를 대폭 줄여 러시아제 전투기 수호이(Su)-33의 중국판 J-15를 36대까지 탑재할 수 있는 갑판 넓이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군사 전문가들은 산둥호가 24대의 J-15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산둥호는 랴오닝호와 마찬가지로 갑판의 선수(船首) 부분이 위쪽으로 경사져 있는 이른바 ‘스키 점프대 스타일’의 활주로를 갖고 있다. 갑판 앞부분이 평평한 미군 항모들에 비해 함재기에 연료와 폭탄을 많이 실을 수 없다. 산둥호가 진수식을 가지는 시간에 한반도에 근접한 미 항모 칼빈슨호는 배수량 10만t의 니미츠급 항모로 85~9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산둥호로는 칼빈슨호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보도했다. 미 해군이 건조 중인 최신예 포드급 항모에 많이 못 미치는 2급 항모라는 평가도 솔직하게 내리고 있다.
 
최초의 국산 항모를 진수한 중국 해군은 미국과 경쟁하는 해군력을 보유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중국 해군은 현재 상하이(上海)에서 세 번째 항모를 건조 중이며, 오는 2020년까지 265~270척의 전함과 잠수함, 병참함을 보유할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현재 미 해군이 보유 중인 275척의 전함과 잠수함 등에는 모두 10척의 항모와 62척의 구축함, 75척의 잠수함이 포함돼 있다. 산둥호의 건조로 2척의 항모를 작전운용할 예정인 중국 해군은 32척의 구축함과 68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미 해군 장병의 숫자는 32만3000명이고, 중국 해군은 23만5000명의 장병을 보유하고 있다.
 
산둥호 진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해군력은 아직 미군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앞으로 미 해군이 독무대를 이루던 동아시아 해역과 인도 해군이 지배하던 인도양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릴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작전에 투입된 랴오닝호와 내년 말 작전에 투입될 산둥호, 현재 상하이에서 건조 중인 세 번째 항모의 건조로 중국 해군력은 일본과 인도를 제치고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것은 1894년 7월 25일 인천 앞바다 풍도에서 개전한 청일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었다.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청의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과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체결된 종전조약의 제1조는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국임을 인정하며, 이 조약 체결 이전에 조선이 청에 대해 시행하던 전례(典禮·조공을 뜻함)는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다”라는 구절로 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 조약 체결 이전에 조선은 청에 대해 완전무결한 독립국이 아니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셈인데, 조선이 청에 연례행사로 제공하던 조공은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해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 결과 대만도 일본에 식민지로 넘겨줬고, 랴오둥(遼東)반도 일부를 포함한 7개 지역을 조차지로 제공했다. 2300년 중국 역사에서 중국의 대륙세력이 ‘남만(南蠻) 오랑캐 왜(倭)’라고 부르던 바다 건너 일본에 패해 중국땅을 할양한 첫 번째 역사였다.
 
지난 4월 6~7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골프리조트에서 진행된 트럼프·시진핑(習近平)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한반도가 한때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고 하더라”라고 트럼프가 전한 말이 우리의 속을 긁어놓았다. 실제로 시진핑이 그렇게 말했다면 시진핑이 중화주의에 젖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고, 트럼프가 잘못 전했다면 미 대통령으로서 무식한 것이라고 부아를 터뜨렸다.
 
우리는 시진핑의 중화주의와 트럼프의 무식함을 탓하기 이전에 시모노세키조약의 제1조를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시모노세키조약 10년 뒤인 1905년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본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Taft) 사이에 체결된 밀약도 되씹어봐야 한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메모’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이 밀약에서 미국과 일본은 각각 필리핀과 한반도에 대한 서로의 배타적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시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한 일본은 1905년 미 포츠머스 항구에서 미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와 종전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의 제2조가 “일본은 한반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중국 네티즌들이 중국의 첫 국산 항모의 이름을 ‘산둥호’로 짓자고 많은 댓글을 단 데에는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1895년 일본에 당한 패배를 씻어보자는 뜻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첫 항모 진수에서 122년 전에 일본에 뺏긴 동아시아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시진핑 중국 지도부의 야망을 우리는 읽어야 한다.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최소한의 BOP(Balance of Power·힘의 균형)라도 갖추자는 논의는커녕, 미군의 사드(THAAD)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간섭에도 우리 대선후보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왈가왈부 토론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슬프다는 말을 안 할 수 없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04 07:05   |  수정일 : 2017-05-0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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