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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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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과 시진핑의 약속 ‘샤오캉(小康)’은 지켜질까

글 |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 중국 광둥성 선전시 시내에서 시민들이 덩샤오핑과 선전의 전경이 그려진 간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photo 이항수 조선일보 기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지난 3월 16일 폐막했다. ‘전인대(全人大)’로 약칭되는 이 대회는 지난 3월 5일 중국 대륙 전역에서 인민대표 2900여명이 모여든 가운데 개회해 2016~2020년 5개년 발전계획을 심의·통과시켰다. 36년 전인 1980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인민들에게 약속한 ‘샤오캉(小康)사회의 건설’을 완성하기까지 불과 5년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때다. 현 중국공산당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은 2012년 권력을 잡은 뒤 덩샤오핑이 약속한 ‘샤오캉사회의 건설’에 수식어를 덧붙여 “전면적인 샤오캉사회의 건설”을 다짐했다. 덩샤오핑과 시진핑이 중국 인민들에게 거듭 약속한 샤오캉사회의 건설은 과연 지켜질까.
   
   1800년대 초반 청나라의 GDP는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정도의 규모였던 것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유럽 경제가 중국을 압도하면서 세계의 판도는 변했다. 1840년에는 산업혁명으로 동력을 단 군함을 끌고 영국 군대가 중국 남부의 홍콩 앞바다에 나타나 청나라 군대를 궤멸시킨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은 이른바 ‘동아시아의 병부(病夫)’로 전락했다. 1900년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에 일본까지 낀 8개국이 베이징(北京)을 분할 점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량치차오(梁啓超)를 비롯한 많은 중국 지식인들은 이른바 ‘다퉁(大同)사회의 건설’을 내걸고 나라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보려 여러 가지의 개혁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2300년 내려온 유가(儒家)사상의 틀을 깨지 않은 채 중국 사회를 개혁해 보려던 지식인들의 다양한 시도는 모두 물거품이 됐고, 중국에 기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해 보려던 훙슈취안(洪秀全)의 ‘태평천국의 난’도 변변한 무력(武力)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출신 쑨원(孫文)이 최초로 왕조를 무너뜨리고 건설한 중화민국(中華民國)도 제대로 된 군사력의 부족으로 근거지를 대만(臺灣)섬으로 옮겨가야 했다. 1921년 상하이(上海)에서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지도를 받아 홍군(紅軍)이라는 본격적인 군사조직을 갖고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을 세계에 선포했다. 청 말의 개혁적 지식인이든, 쑨원이든 마오쩌둥이든 자신들의 이상은 ‘다퉁사회의 건설’로 잡고 있었다.
   
   다퉁사회란 공자(孔子)가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제시한 이상사회로,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갈등 없이 화목한 가운데 누구나 필요한 만큼 쓸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발전한 사회를 말한다. 마오쩌둥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사회를 유교적 이상사회인 다퉁으로 설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6년 마오가 죽고, 1978년 12월의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사상해방(思想解放)’을 내걸고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다퉁에서 한 단계 아래의 샤오캉사회의 건설을 인민들에게 제시했다. 샤오캉이란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노(民勞)편에 나오는 말로, 사회 내에 대체로 갈등이 없고, 화목하며, 대부분이 잘사는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이상주의자 마오쩌둥이 유교적 이상사회인 다퉁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대약진운동을 비롯해 과도하게 급진적인 경제발전 계획을 추진하다가 실패해서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대열로 전락한 점을 거울로 삼았다. 덩샤오핑은 다퉁보다 한 단계 아래의 샤오캉사회의 건설을 인민에게 제시하고 무엇보다도 배부르고 등 따뜻한 ‘원바오(溫飽)’를 202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 2020년의 1인당 GDP를 1980년의 4배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판량판(飜兩番)’을 내걸기도 했다.
   
   2012년 말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샤오캉사회 건설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서 “오는 2020년까지는 전면적인 샤오캉사회를 건설하고, 2050년까지는 과거 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좌지우지하던 청왕조 초나, 경제적·군사적·문화적으로도 세계 최강이었던 대당제국(大唐帝國)을 다시 재현하겠다”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14억 중국 인민에게 제시했다.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시진핑이 내건 ‘전면적인 샤오캉사회의 완성’을 5년 앞두고 열렸다. 제13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막바지 경제발전의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놓기 위해 작성한 계획이기도 하다. 이 속에 담긴 ‘1000만 빈곤 인구의 가난 해결 방안’이나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이후 최초로 입안해 통과시킨 ‘자선법(慈善法)’이 바로 샤오캉사회로 달려가기 위한 도구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덩샤오핑이 제시하고, 시진핑이 확인해준 샤오캉사회의 건설이 과연 2020년에 달성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중국이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계속해서 6.5~7.0%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많다. 더구나 세계은행이 조사해서 집계한 중국 사회의 경제불평등지수 지니(GINI)계수는 2010년에 0.421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4를 넘어서면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사회 내 불만이 팽배해서 혁명이 벌어지기 직전의 사회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중국이 2020년에 샤오캉사회를 달성하기에는 무리가 많다고 보인다. 더구나 중국 국가통계국이 조사해서 발표한 지니계수는 2008년 0.49로 정점(頂点)에 도달한 뒤 완만하게 떨어지고는 있으나, 지난해 무려 0.462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불평등 상황도 세계은행 조사 결과 중국 내 상위 10%의 인구가 전체 부의 30%를 소유하고 있는 불평등사회로 판단됐다. 우리의 경우 지니계수가 0.3 정도,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의 16%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정도라고 하니 현재 중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로는 2020년 샤오캉사회를 달성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예상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될까. 중국공산당은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될까, 아니면 샤오캉사회가 달성됐다는 통계수치를 만들어서 발표하게 될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6-04-05 08:56   |  수정일 : 2016-04-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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