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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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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더 사랑할까요?

글 | 이경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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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늘 무언가 아쉽다.

신년에 세운 계획대로 살지 못한 게 아쉽고, 더 나은 삶으로 진입을 할 수 없었던 게 아쉽고, 이뤄야 할 것들을 이루지 못한 게 아쉽고 아쉽다.
매년 이즈음 반복되지만, 매년 이즈음 감당하는 아쉬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쉽고 안쓰러운 게 있다면 무엇일까. 돈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사랑아닐까.
돌아서 가는 그의, 그녀의,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잘못 살았구나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더 사랑하지 못해 아프고, 내가 더 많이 주지 못해 쓰리다는 걸 느끼는 순간, 후들거리던 두 발은 앞을 헛짚고 바닥으로 나뒹굴어 진다.
그게 하필 거센 찬바람이 부는 이즈음의 겨울, 12월이라는 건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사랑하세요?’라고 칼럼의 이름을 걸어놓았지만, 정작 나는 사랑을 멈출 생각 없이, 사랑에 목을 매고 산 사람 같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아프고 그래서 다시는 ‘혼자’하는 사랑 따윈 하지 않겠다고 쌩하니 돌아서다가도, 사랑을 잃은지도 모르는 해맑은 상대의 아픔을 혼자 가늠하면서, 발을 잡아채 다시 그에게 돌려놓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늘 더 많이 주지 못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아쉬운 이유가 뭘까, 문득 고속버스 터미널 세찬 바람 속에서 생각이 들었다.
버스의 커다란 창안에선 연신 여든의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계셨다. 춥다 어서 가거라. 어서! 차는 서서히 출발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서 있어봐야 겨우 1, 2분이지만 겨울바람 속에 자식을 세워놓은 노모는 그게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내가 사랑이라 여겼던 게 정말 사랑이 맞기는 한가?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 노모를 혼자 고속버스에 태워 보내놓고는, 정지 신호를 놓치고 오거리로 뛰어들고 말았다. 급하게 제동 걸린 차 바퀴에선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쏟아져나왔다.

비상등을 켜놓고 서 있는 오거리 중앙. 거기는 마치 광장 같았다. 차들은 내 차를 가운데 놓고 양 사방으로 휙휙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 푸른 신호만 보고 질주한다면 내 차는 어디론가 튕겨 또 다른 차를 덮칠지도 몰랐다. 조마조마한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창을 내다보던 노모의 주름진 웃음.

어머니의 웃음을 떠올리자 씻은 듯 불안이 가시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더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이 상처받아서 이제는 좀 덜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불안하고 고통스런 어떤어떤 순간마다 내 손을 잡고 끌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면서도 잊어버리거나 또는 외면했던 그것.

갚아야 할 사랑이 산더미인 줄도 모르고, 내 사랑이 넘쳐 썩어들어갈까 나는 염려스러웠던 모양이다.

언젠가 내 딸과 내 아들... 또 내 주변의 누군가 내 웃음을 떠올리며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갚음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더 많이 사랑하는 것 말고 더 할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 아직도 사랑해야 하고 더욱더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어제 누군가 내게 말했다. 이제 사랑 이야기는 그만 쓰고 복수극을 한번 써보라고, 요즘 드라마도 복수극이 뜬다고.
난 복수 같은 건 안 해요. 마음에 그런 걸 담아두는 게 고통스러워 차라리 잊는 방법을 택하죠. 내 말에 일침이 날아왔다. 작가 개인 취향이 아니라 소설을 말하는 겁니다.

2019년 새해의 계획에 그게 들어갈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새해에 우선 적으로 해야할 것은 늘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그 사랑으로 내 주변에 위로가 되고 평화를 주는 것. 내가 내 어머니에 그랬듯 ‘그’도 나를 떠올리며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우선의 계획이다.

‘아직도 사랑하세요?’ 내 칼럼의 물음에 내가 답한다. 여전히 더욱더 열심히 사랑할게요, 라고.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28 14:21   |  수정일 : 2018-12-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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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소설가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국회의장단 기획관을 지냈으며, 일간지 문화부 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JTBC드라마 원작소설 '품위있는그녀 1,2' 를 출간했고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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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한파  ( 2018-12-28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어떤 댓글도 무색하리만큼 가슴 울리는 좋은 글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경험이고 코끝 찡한 세밑의 우리 마음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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