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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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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대자암(大慈庵)과 안평대군 탄신 600주년을 보내며

세종 때 왕실 원찰, 고양시 벽제 대자암
안평대군이 불사(佛寺) 주도
소헌왕후 명복위해 불경 조성
몽유도원도 대자암에서 사라져
하버드대학, 도쿄박물관에 진적(眞迹)있어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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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평대군의 묘법연화경 사경문.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 고양 대자암과 안평대군  
 
2018년은 안평대군 탄신 600주년이다. 안평은 1418년 9월 19일에 태어났다. 그 해는 세종이 즉위하던 해이다. 안평의 뛰어난 문예와 정신을 기려 작은 기념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은 둘째 형 수양에 의해 죽임을 당한 36세(1453년 10월 18일)까지 많은 업적과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권력을 차지한 수양은 철저히 안평을 지웠다. 심지어 안평의 며느리와 딸을 권람의 노비로 삼아, 후손마저 끊었다.  
 
하지만 역사는 안평을 기록하고 많은 이들은 안평을 추모한다, 세조가 샅샅이 안평의 기억을 지웠지만 몇몇 유작을 통해 안평을 만나볼 수 있다.  
 
안평의 자취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고양시 벽제 대자암이다. 대자산에 위치한 대자암에는 태종의 넷째아들 성녕대군의 묘가 있고 위쪽에는 고려 충신 최영 장군의 묘가 있다. 고려를 지킨 최영 장군과 조선을 개국한 태종의 아들 묘가 한 자락에 있는 모습을 보니 역사의 아이러니 아닐까 생각하며 일대를 돌아보았다. 대자암은 현재 흔적이 없고 성녕의 사당인 대자사(大慈祠)와 성녕의 묘 그리고 몇몇 인사들의 묘가 그 아래 자리하고 있다.  
 
태종은 성녕이 요절하자 이곳에 묘를 쓰고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자암을 지었다. 안평은 자손이 없는 성녕의 양자로 들어가 제사를 모셨다. 
 
세종은 임종에 즈음하여 안평으로 하여금 태종과 원경왕후, 소헌왕후와 자신의 공양을 대자암에서 모시라 유교(遺敎)하였다. 효성이 지극한 안평은 대자암을 지극정성으로 불사하였다. 특히 세종 28년 소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천도 불사가 대자암에서 봉행되었다. 세종실록(1446년 5월 27일)에 따르면 “승도(僧徒)들을 크게 모아 불경을 대자임으로 이전하였다. 금을 녹이어 경(經)을 쓰고, 수양, 안평 두 대군이 내왕하며 감독하여 수십 일이 넘어 완성되었는데, 이때 대군, 제군이 모두 참여하였다”한다. 즉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을 하였는데 금을 녹인 금니로 하였다는 것이다. 명복을 빌기 위해 사경하는 불경이 주로 묘법연화경 줄여서 법화경이다. 후에 문종도 이곳에서 제사를 모셨다. 이처럼 대자임은 세종 시기 대표적인 왕실의 원찰이었고 대자암의 불사는 안평대군이 주도하였다.  
 
■ 대자암에서 ‘몽유도원도’ 약탈당해  
 
수양은 뛰어난 문예와 사람 부자 안평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결국 계유년(1453년 10월 10일)에 쿠데타에 성공하자 18일 안평을 역모로 몰아 살해했다. 그리고 무계정사 등 안평의 거처에 있던 문집과 예술품 등을 소각하였다. 심지어 태실마저 파괴함으로 철저히 자취를 지웠다. 하지만 대자암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선대의 명복을 비는 곳 대자암은 수양의 야만으로부터 벗어 났고 안평의 유작들은 이곳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김경임의 ‘사라진 몽유도원도을 찾아서’을 보면 몽유도원도가 임진왜란 때 이곳을 점령한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약탈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장들은 조선에 출병하면서 문화재 약탈을 담당할 인력을 준비하였는데 문서나 회화 등은 당시 조선 문물에 이해가 높은 승려들이 그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일본의 승려들은 외교관, 정탐, 책사 역할 등을 수행하면서 조선과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요시히로는 다이지지(大慈寺)의 주지 용운화상을 대동하였다. 다이지지가 있는 시부시는 조선과 중국과 가까운 곳에 있어 용운화상은 국제정세에도 밝았고 세종의 원찰인 대자암에 대한 정보도 사전에 알고 있어 몽유도원도의 약탈에 수월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 도쿄박물관 오구라 컬렉션과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진적(眞迹)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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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옌칭도서관 열람을 마치고 이해경 황녀,이 원 황사손, 김정광 이사장, 이상근 이사장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안평대군 탄신 600주년에 그의 글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지난 8월 이해경 황녀, 이 원 황사손, 김정광 한국문화유산보존재단이사장, 이주화 세종대왕영해군파종회장과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을 찾았다. 옌칭도서관에는 한국의 고문서, 옛 족보 등 1만여 점 이상이 보관되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던 중 고려 문서가 있다고 하여 열람을 요청하였는데 문서 관리하는 중국인 사서가 일단 두 종류의 사경문을 가져왔다. 그 중 하나는 감지금자묘법연화경(紺紙金字妙法蓮華經), 안평(1418~1453)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경임 저자는 이 사경문은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며 안평과 효령에게 명하여 사경(寫經)한 것으로 대자암에 봉헌되었다고 실록에 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이 약탈, 그 후 일본 GHQ(미군정)에서 문화재담당이었던 그레고리 핸더슨에 의해 하버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도쿄박물관 오구라 컬렉션을 목록(920)에는 “행서칠언율시축 (1폭, 34.1×56.5 지본묵서, 이용(안평대군)”이 있다. 박물관 측에 열람을 요청하였지만 열람을 제한한다는 안내만 받아 탄신 600주년에 그의 진적을 만나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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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벽제 성녕대군 사당, 대자암은 흔적이 없고 대자사가 있다.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21 오전 9:34:00   |  수정일 : 2018-12-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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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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