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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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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공격성

글 | 정장열 주간조선 편집장

학창 시절 학교에서 벌어지는 싸움 구경만 한 재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서열 1위인 개똥이와 2위인 말똥이가 드디어 맞붙는다는 소문이 퍼진 날이면 수업시간 책에 머리를 처박고도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다들 쏜살같이 싸움 구경을 하러 달려갔습니다. 결국은 코피가 나고 입술이 터져야 끝나는 싸움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항상 승부가 갈렸습니다. 서열 1위와 2위가 뒤바뀌기라도 하면 흥분은 극에 달해 구경꾼 모두 자기가 이긴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부터 당장 새로운 서열 1위를 거꾸러뜨릴 도전자를 입에 올렸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날을 떠올리는 친구들을 만나면 가관입니다.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년들이 모두 신이 나서 ‘선빵의 추억’을 떠들곤 합니다.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다들 낄낄거리는 통에 누가 맞았는지, 누가 때렸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수컷들에게는 싸움과 공격성이 본능적인 오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수컷들이 왜 공격적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이론이 있습니다. 수컷의 공격성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침팬지와 보노보입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둘은 무척 다른 동물입니다. 유전적으로 약 200만년 전 서로 갈라져 다르게 진화해왔다고 하는데 피그미침팬지로 불렸던 보노보가 침팬지와는 다른 종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 불과 90년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침팬지가 보노보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공격성입니다. 침팬지의 수컷 우두머리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조직에 갈등이 생기면 무력으로 응징합니다. 침팬지들은 조직적인 전투를 하고 서로 죽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콩고에만 사는 보노보는 딴판입니다. 일종의 평화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계 중심인 보노보들은 조직에 갈등이 생기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싸우지 않고 섹스를 하는 겁니다. 인간 외에 번식이 아닌 목적으로 섹스를 하는 동물은 보노보 말고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개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과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기 꺼리지만 동물원의 보노보들은 인간의 눈을 오랫동안 지그시 바라보며 교감의 몸짓을 해서 관람객들을 놀라게도 합니다.
   
   인간은 보노보와 침팬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내 안의 유인원’ 저자인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인간 속에 보노보와 침팬지가 모두 들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침팬지보다 더 잔인하고, 보노보보다 공감능력이 더 뛰어난 우리는 양극성이 가장 심한 유인원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조간에 미국의 ‘러스트(rust) 벨트’가 ‘머더(murder) 벨트’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디트로이트 같은 제조업의 도시에서 살인율이 치솟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번영의 상징이었던 도시가 쇠락하면서 상실감, 박탈감, 위기감 등이 분노와 공격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워지면 우리 안의 침팬지가 득세하는 건 당연할 듯합니다. 내년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노보가 사라지고 침팬지가 많아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0-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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