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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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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니?

글 | 이경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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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니?”
 
결혼하고 4-5년쯤 되었을 때 누군가 내게 물어주었던 말이다.
결혼 전 헤어진 연인이라든지, 잊었던 옛 남자친구가 한 말이었다면 아주 로맨틱한 질문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은 바로 나의 큰이모였다.
 
결혼 후, 잘 마주칠 수 없었던 큰이모를 만난 건 친정집에서였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에 급히 짐을 챙겨 친정집으로 내려온 길이었다. 뇌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이라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오는 길에 시댁에 들러 어린 두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겼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드릴 기회를 막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당시의 판단은 아직 죽음에 대한 개념이 서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라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따지고 보면 서른의 중반을 지나고 있던 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이 닥쳤다는 엄청난 사실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간  터라 죽음의 개념 운운할 입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를 만나러 왔던 이모는 막 일어서던 참이었다. 딸이 여섯이나 되는 외가의 맏이였던 큰이모는, 거의 막내에 가까운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훨씬 많았었다. 하지만 일본 동경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당시 대기업에서 외국어 강의를 하고 계셨는데, 나이보다 훨씬 젊고 교양있으며 늘 세련된 모습이었다.
 
단정한 투피스 차림의 이모는, 언제나 그랬듯 다정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남편에게 시댁 어른 안부까지 챙긴 이모는 우리의 양해를 구하고는 먼저 대문을 나섰다.
갑자기 요즘 큰이모 댁에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얼른 지갑에서 얼마를 꺼내 이모를 따라 나갔다. 그게 얼마든 이모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한때 이모가 이웃으로 살 때 자주 보았던 풍경이 있다. 남루한 사람들에게 주머니를 털어 돈을 쥐어주는 모습이었다. 그러곤 돌아서 마음 아파 하셨다. 물론 조카인 내게 마음을 베풀어 주신 건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이모는 불쌍한 사람을 절대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이모들과 우리 엄마에게조차
심하다는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큰이모는 개의치 않았다. 지갑이 텅 비도록 불쌍한 사람들을 챙기고 나서야 비로소 함께 마음 아파할 자격을 가진 듯 그들의 힘든 삶에 아픈 눈길을 보내곤 했었다.
 
배웅할 것 없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는 잠시 옆을 따라 걸었다. 봉투도 준비 못 했는데, 이 돈을 어떻게 드릴까, 받기는 하실까, 생각뿐이었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모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지그시 보시더니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러곤 바로 내게 그 말을 하신 것이다. 한껏 따뜻함이 담긴 다정한 목소리로.
 
“... 행복하니?”
 
‘(결혼해서 많이) 행복하지?’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결혼 후 이모와 처음 만난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그 물음이 당시의 나로선 너무도 뜬금없게 들렸다.
아버지가 위독해서 친정으로 내려온 상황인데다, 이모께 용돈이라도 드리려 따라 나온 내게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하고 나를 깊숙이 찔러봐야 하는 질문이었다.
 
이모의 물음에 뭐라 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행복하다고 했을 리도 만무하고 (행복하다 한들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인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불행하다고 했을 리도 없었다.
 
다만 이후 오래도록 그 말이 내게 선명하게 되새김질 되는 이유는,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누구로부터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받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친지들을 만나면 대부분 하는 말들이 비슷했다. 애들 아빠 뭘 좀 잘해 먹여라. (운동하며 관리 중인 상황인 것도 모르고) 지난번보다 야위어 보인다. 혹은, 아들 하나로 되겠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더 낳아야지? 또는, 요즘 얼굴 좋아 보이는 거 보니 애들 아빠가 잘 해주는구나. 등등 지금껏 수식어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 무한 반복되고 있는 말들이다.
 
그런데 그 흔하고 쉬운 인사말을 두고 이모는 왜 하필 ‘행복한가’를 물었을까.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로 날아들었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나는 행복한가...? 내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편과 아이들의 행복이 내 행복인 건가? 아니면 오로지 나 자신만의 만족이나 즐거움, 성취가 행복인가? 아니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최고의 상태가 행복인가? 그럼 행복이란 결국 유토피아라는 결론에 이르는 거 아닌가?
 
질문이 질문을 낳다 마지막엔 이 문장에 이르렀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지난 추석 명절 동안 ‘xx란 무엇인가’ 가 화두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던져놓은 문장에서 재미있는 많은 ‘무엇’들이 양산되었다. 근황을 묻는 가족 친지의 질문에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질문으로 답을 하라,라는 말로 칼럼은 끝이 났지만, 명절 내내 ‘xx란 무엇인가’는 여러 통로로 회자되면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물론 나 역시 그 칼럼을 읽고 이모와의 일을 떠올렸으니까.
 
이모를 만났던 날 저녁, 아버지는 의식을 잃으셨고 이틀 후 돌아가셨다. 행복하니? 라고 질문을 던져준 이모 역시 몇 해 후 돌아가셨다. 경제적인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헌화를 하고 나오니, 이종사촌 오빠가 급히 나를 따라 나왔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당연히 와야 할...”
 
상주에 대한 예를 표할 사이도 없이 오빠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어머니께서... 틈날 때마다 네 얘기를 하셨어. 정말 고맙다고... 그때 우리가...  집까지 넘어가고 정말 힘든 때였거든... 네가 드린 돈 정말 요긴히 썼다고 하시더라.  너한테 마음 갚아야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어. 아직 신혼인데... 받지 말아야 했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사촌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울었다.
 
늘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였던 이모 집이었는데... 그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모를 따라 나갔던 그때, 급히 되는대로 지갑에서 돈을 집어 나간 터라, 세어보니 만 원짜리 일곱 장이었다. 그대로 드리려다 무성의해 보일 것 같아 만원 두 장을 빼서 주머니 넣고 5만 원만 드렸다. 오빠가 잡고 우는 손이, 만원 두 장을 도로 집어넣은 바로 그 손이었다.
 
이모의 기일이 하필이면 추석날이다.
마지막을 예감한 이모는 유언으로 자기 제사는 따로 지내지 말고 추석날 차례 지내는 것으로 대신해달라고 하셨다 한다. 이모의 마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모는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실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나도 질문하고 싶다.

“이모, 거기서 행복하신 거죠?”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0-02 16:40   |  수정일 : 2018-10-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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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소설가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국회의장단 기획관을 지냈으며, 일간지 문화부 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JTBC드라마 원작소설 '품위있는그녀 1,2' 를 출간했고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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