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시안西安 일기 ③] 진시황 병마용, 그리고 시안 성곽을 돌아보다

불확실하고 허망한 인생… 진시황도 어쩔 수 없어

글 | 김승열 변호사,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본문이미지
거대한 진시황의 군대다. 진시황이 죽은 뒤 그의 사후세계를 따라갈 수많은 병사와 말 도제들이다. 진시황은 죽음 이후를 매우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오늘은 그 유명한 진시황 병마용(兵馬俑)으로 가기로 했다.
병마용이란, 중국 시안의 진시황 무덤에 있는 약 1만 구의 도제(陶製) 병마(兵馬)를 지칭한다. 병마용은 보(步, 보병) · 노(弩, 방아쇠를 사용하는 활) · 차(車, 전차) · 기(騎, 기병) 4종의 등신대(等身大, 사람 크기와 같은 크기)다.
 
필자가 머무르고 있는 호텔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처음 발견한 농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40년 전인데 그 농부는 병마용을 발견한 공적으로 그 박물관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게 됐단다. 박물관에서 진시황 병마용 책을 사는 사람에게 농부 자신의 사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가보니 그 농부가 있었다. 나이가 70세 전후라고 하니 30세 전후에 발견한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농부의 표정이 아주 밝고 즐거워 보였다.
 
본문이미지
갑옷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이(귀족일까?)가 화려한 네 마리의 말을 몰고 있는 형상이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진시황 병마용은 원래 황제가 죽으면 측근의 병사를 순장하여 같이 묻으려 했는데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 동상을 만들어 대체하기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일부지역은 아직도 발굴 중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진시황의 묘는 그곳에서 떨어져 있는 곳으로 추측되나 아직 묘를 못 찾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묘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려 비밀에 붙인 것으로 보여 진다.
 
본문이미지
병마용 사령부 모습이다. 네 마리의 말이 무언가를 끌려하고 그 주위에 병사들이 서 있다. 손 동작으로 보아 창을 들고 서 있는 듯하다. 

병마용 동상 등을 가까이에서 막상 보니 사진에서 본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크기는 하였으나 위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최초 발굴 당시엔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이었으나 발굴 후 공기 등이 유입되어 산화되어 지금은 색이 바래 흑백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3000여년 전의 진시황 시대 문화를 추측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안타깝게도 진시황 사후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한 것을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뿐이다.
인생 자체가 불확실하고 허망한 것임을 황제라도 달리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자신의 왕조가 영원할 것으로 믿고 있었을 진시황이, 죽어 하늘에서 진나라가 폐망한 것을 목도했을 때 얼마나 허망했을까?
 
본문이미지
병마용갱에 있는 도용들은 각각의 도용마다 표정과 동작과 의상이 모두 달랐다고 한다. 심지어 채색까지 되어 있었는데 발굴 과정에서 외부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채색이 다 날아가 버렸다.

점심을 먹고 시안의 성곽으로 향하였다. 비교적 성곽이 잘 보존돼 있었는데, 이 성곽이 당나라 때 건축된 것이 아니라 명나라 때 건축된 것이라고 하여 다시 한 번 놀랐다. 여러 성문 중 동문에 해당되는 곳으로 가니 성문과 성이 너무 멋지고 나아가 그 보존상태가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시안 시내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현대식 건물과 성곽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본문이미지
성문과 성이 너무 멋지고 현대식 건물과 성곽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규모도 상당히 커서 지금 현대의 대포로 쏴도 성곽이 쉽게 허물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보였다. 특히 성 밖 물로 된 해저드(해자)와 성 사이에 약간의 간격을 두어서 해자를 넘어 온 적군을 화살로 저격할 수 있게끔 잘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곽 너비가 20~30m 이상이어서 군인들이 순찰하고 장비를 준비하는 데 편리하고 효율적이게 설계되어 있었다.
왠지 시안이 너무 멋진 역사이자 문화 도시이고, 가능하면 한번 살아 보고 싶은 아름다운 이국도시로 와 닿았다. 잠시 조용히 산책을 즐기다보니 3000여 년 전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친근하면서도 무한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본문이미지
시안 성문을 통해 버스가 이동해 놀라움을 주었다.

남은 자투리 시간에 자유시장을 잠시 들렀다. 대다수의 상품이 가짜라는 말에 좀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 시장 역시 시안의 한 요소라는 생각에 가이드와 같이 시장을 한번 걸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도 지저분하고 정돈이 안 돼 실망스러웠다. 특히 곳곳에 쓰레기통이 널려 있었다. 조만간 정비되어 좀 더 매력적인 시장으로 다가올 날을 기대해 보고 싶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9-14 09:00   |  수정일 : 2018-09-14 10:4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김승열 변호사,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