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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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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지킴이 동방사(東方寺)와 파리로 간 천수천안관음상

상주 비보사찰((裨補寺刹), 동방사
자취만 남은 옛 터를 지키는 유물들
곳곳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덩어리
과연 동방사가 복원되어 상주를 지킬 수 있을까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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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나왔다.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정한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속리산이 북으로 솟아있고, 남에는 낙동강 줄기가 휘돌고 있다. 산과 물, 들이 고루 펼쳐지니 자연, 인심이 넉넉하다. 옛 선인들은 넉넉한 상주에도 근심이 있었다. 
 
근심의 첫째는 지네 때문이다.
 
상주여자고등학교 서쪽에는 율수(栗藪)라는 제방이 있다. 이곳에 조공재(趙公堤)라는 비명(碑銘)이 있는데 내용인 즉, 선인들은 노음산에서 시작하여 북천에 이르는 형상이 지네를 닮아 이를 오공입지형(蜈蚣立地形)이라 하였다. 지네 때문에 소년의 죽음이 많다고 여긴 선인들은 액을 막기 위해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었다. 1873년(고종 10년)에 세워진 조공제 비문에 따르면, 1871년 상주목사로 부임한 조병로(趙秉老)는 밤나무 숲에 둑을 다시 쌓고 마을 이름을 율수리 또는 밤숲개로 하였다하니 풍수설의 절실함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근심은 배 모양 형세이다.
 
상주 시내 한복판에 옛 동방사의 터가 있다. 대부분 산 속에 절을 짓는데 특별하게도 고을의 한 가운데 절을 지었다. 그 이유를 설명한 기록이 고려 우왕 때 자초스님이 창건한 동해사(東海寺)기록에 있다. 1881년 제작된 <동해사실기(東海寺實記)>에 “상주 들녘이 떠다니는 배의 형국과 같아, 배를 묶어 두기 위해 병성천과 북천의 사이에 가짜 산(假山)을 만들어 동방사를 세웠다.”라고 한다. 상주 시내의 지형은 북동쪽에서 흐른 물과 남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복룡동에서 합수하여 병성천으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 충적평야가 자리하고 있는 형세이니 선인들은 동방사로 하여금 상주를 지키게 한 것이다.  
 
비보사상은 신라 도선국사가 주창하여 고려에 와서 크게 전파되었다. 비보사찰인 동방사는 신라 때 창건하여 융성하였으니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상주문화 제22호에는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상주 기행시가 있다. 1232년 8월 상주 동방사에서 묵으면서 박군문우와 최수재가 술을 준비해 찾아왔기에 한 수를 구점(口占)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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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사의 기억들 
 
신라 말 창건하여 융성하였던 동방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복원의 기회를 놓쳐 옛터는 농토가 되었다. 하지만 기억의 흔적들은 곳곳에 있다. 복룡동 207-2번지에 있는 당간지주는 천년의 시간을 말해준다.  
 
왕산공원을 지키는 석불은 동방사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동글한 얼굴, 내려 뜬 눈과 묵직한 콧방울, 도톰한 입술은 마치 만화 속의 캐릭터 닮았다.
 
동방사 복원에 힘쓰는 동조스님(상락사 주지)은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당시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을 간직하고 있어요. 동방사가 비보사찰로 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창건, 석불을 조성했다는 것은 떠내려가지 말고 영원히 자리를 지켜달라는 마음이죠."
 
허나 지금은 자리를 떠나 왕산공원 가장 높은 곳에서 상주를 바라보고 있다.  
 
동방사터에서 농사하는 이는 "지금도 기와조각, 그릇 조각이 나온다" 하니 한번도 안했다는 발굴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상주문화 제22호에는 당간지주가 있는 주변의 농지에서 '조선시대 자기, 와편과 함께 신라시대 단선문, 고려시대 어골문 와편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말이나 고려초기 사원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라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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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까지 간 철불관음상 
 
천수천안, 그야말로 천개의 손과 눈이다. 만 세상을 살펴보고 구원하겠다는 소원이 담겨있다. 국내 몇 곳에 있으나, 동방사 관음보살처럼 오래되고 훌륭할 수 있을까. 몇 차례 아시아유물을 모아 놓은 기메박물관을 탐방한 적이 있다. 한국관 전시실 복판에서 서양인의 눈요기로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자태이다.
 
1882년 조선 기행에 나선 샤를 바라가 수집하여 기메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바라는 조선여행이 인상적이었는지 <조선 기행>이라는 책을 썼다. 조선기행에서 샤를 바라는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출발, 일본과 중국을 거쳐 인천에 도착, 한양을 경유하여 문경새재를 넘어 낙동강변을 따라 대구, 부산에 이르기까지 기행하였다한다. 당시 상주는 규모가 큰 고을로 이방인은 상주에 들러 천수천안관음상을 수집한 것으로 추측된다. 
 
천개의 눈과 손, 관음보살이 동방사 출토품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불행하게도 동방사사적기나 향토사 등에 관련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샤를 바라가 남긴 기록에 의해 확인될 뿐이다. 그는 신기하게 생긴 불상을 보며 동방사의 옛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의 동방사를 기억하기 위해 <동방사 출토품>이라고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 추정된다.
 
 
상주 지킴이, 동방사
 
이를 복원하고 흩어진 성보를 봉안하는 일은 상주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이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산소 벌초 객들이 몰려있는 도로에서 내내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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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사 복원에 힘쓰는 동조스님(상락사 주지)과 김종하 상주법우회 고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9-12 09:14   |  수정일 : 2018-09-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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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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