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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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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바위같은 것

글 | 이경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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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엄마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사랑에 관한 한 아버지는 엄마에게 을의 입장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바쁜,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지셨지만, 매우 가정적이셨고 누가 보기에도 엄마를 매우 사랑하셨던 분이었다.
 
뇌종양 때문에 예기치 않게 갑자기 삶의 마지막을 맞으셨지만,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가장 큰 걱정은 엄마였다. 엄마가 너무 젊어서, 혼자 남겨놓고 가는 일이 너무 안타깝다는 말씀을 자꾸만 하셨다. 물론 거기엔 준비 없이 떠나는 당신의 안타까움도 함께였을 것이다.
 
발병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황급히 삶을 마감하셨다. 당시 엄마 연세 60세였다.
사고처럼 당한 갑작스러운 일이라 충격이 심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4남매는 모두 결혼을 한 상태라, 슬픔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부재가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결국 삶 전체에 변화를 가지게 된 사람은 엄마였다. 아버지 퇴직 후 두 분이 함께하던 작은 사업체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게 되었고, 집도 규모를 줄였다.
친구들도 만나고, 노인학교도 다니며,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몇 년간 엄마는 홀로서기에 매진하는 것 같았다. 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우리는 모두 서울 생활이라, 늘 마음만 함께할 뿐 각자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빴다.
 
그로부터 5년쯤 지난 어떤 날인가, 집을 좀 다녀가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얼마 전 서울을 다녀가셨던 터라, 갑자기 어디가 편찮으신가 해서 며칠 후 남편과 내려갔다. 전화할 때와는 달리 특별한 일이 없다는 듯 별말이 없으셨다. 그러다 잠시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급히 내게 무슨 종이서류를 꺼내 놓았다.
 
“노인학교에서 주는 건데 서류에 뭘 잔뜩 써오래서 너한테 부탁하려고...”
A4 용지 너덧 장쯤 되는 종이에는, 부모의 재혼에 관한 자녀들의 의견을 묻는, 심도 있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짧은 문장으로 답을 해야 하는 것이긴 했지만, ‘부모님이 재혼과 동시에 혼인신고를 한다면 재산권은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입니까?’ 등등의 제법 까다로운 질문들도 있었다.
엄마의 요청대로 그걸 기재하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를 부른 이유가 이거였다고?
 
하지만 그 답은 곧바로 엄마가 들려주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라. 오빠나 언니한테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서류라고는 하지만 설문조사 형식의 종이 몇 장일 뿐인데, 왜 이걸 그렇게 비밀로 해야 하는지 묻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게 엄마에게 중요한 것이구나를 느껴서였다.
 
설문지엔 성실히 답했다. 대부분 긍정적인 답을 했다. 나는 솔직히 엄마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므로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식 넷 중 엄마에게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 내가 왜 선택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식 네 명 중 내가 가장 불편한 대상이라고 한다) 더구나 언니, 오빠, 동생에겐 비밀로 해달라니...
 
나중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엄마가 재혼한다고 하면 내가 제일 강하게 반대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라고, 그래서 내 동의를 먼저 구하려 내게 그걸 보인 거라고.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상황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가끔 우리 집에 와 계실 때나, 차로 함께 이동할 때 불편하게 전화 받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다. 상대는 자연스럽게 하려는 것 같은데 엄마가 말을 안하거나 얼른 끊어버리는 그런 전화. 그뿐이었다.
 
몇 달 전, 서울 오신 엄마를 집까지 모셔다드린 적이 있다. 막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는 전화를 받더니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거실에서 3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상해서 살짝 노크를 하고 방을 들어갔다. 엄마는 외출복 그대로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계셨다.
“무슨 일 있어? 누구 전화였어?”
엄마는 그제야 생각난 듯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셨다. 그러다간 다시 침대에 앉았다.
“왜 그래? 누구 전화였는데?”
“아는 사람... 어디 간다고...”
“어딜?”
“자식들한테.... 미국으로...”
엄마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남자... 친구야?”
“....”
“친해?”
“....무슨.. 그냥 학교같이 다녔던 분이셔...”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미국 간대?”
“... 아주 간대. 혼자서 힘들다고...”
그 말을 하는 엄마가 더 힘들어 보였다. 나는 얼른 거실로 나왔다. 생각이 복잡했다.
 
나는 엄마가 원한다면, 재혼을 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었다. 엄마가 외로워지는 걸 아버지도 몹시 걱정하셨고, 우리 역시 엄마 혼자의 삶을 생각하면 늘 가슴 어딘가가 쓰리고 아팠다.
마음 맞는 좋은 분이 생긴다면 남은여생을 같이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일 뿐 누군가 나서서 엄마의 마음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진작 말하지. 그분도 기다리다 더는 안될 것 같아 자식들한테 간다는 거 아니야? 엄마가 잘못했네...”
저녁을 먹으며 농담처럼 말을 꺼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해. 그냥 학교 친구라니까.”
엄마는 정색을 했지만 표정은 다분히 복잡해 보였다.
엄마, 그분 붙들어. 가지 말라고 해, 농담처럼 슬쩍 던져볼까 했는데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엄마 연세 80이 넘었다. 그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바윗돌 같은 거야. 결혼이라는 건.”
수저를 놓으며 엄마는 화난 사람처럼 말했다.
“돌은 아무리 잘게 깨도 흙이 되는 건 아니야. 돌은 돌이야. 누가 뭐래도 나는 늬 아버지 옆에 묻힐 사람이야.”
엄마는 내 마음을 다 읽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너한테 그때 그걸 부탁했던 건, 니가 제일 입이 무거울 것 같아서야. 그리고 너는 그런 거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할 거라 생각해서야. 생각대로 그렇게 해준 건 좋은데 니 맘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지는 마라. 자식 중에 니가 그걸 제일 잘 할 것 같아서 해달란 거였어.”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왜 그걸 다른 가족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연세가 되도록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라면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 긴 시간을 보내셨을까?
떠나기 전에 만나기로는 한 건지, 아니면 비행기 오르기 전 공항에서 한 마지막 인사 전화인지 이래저래 궁금증만 더 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살아야 할 시간들이 아직 20년도 더 남았다면, 나는 지금 이 시점 엄마에게 어떤 자유로운 선택을 하시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만일 우리라면? 끝없는 물음표가 거대한 바위처럼 우리 앞에 서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8-16 09:26   |  수정일 : 2018-09-1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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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소설가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국회의장단 기획관을 지냈으며, 일간지 문화부 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JTBC드라마 원작소설 '품위있는그녀 1,2' 를 출간했고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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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소리  ( 2018-08-1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4
누구에게나 삶은 오차범위가 넓지 않은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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