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역사는 이념과 이상이 아니라 돈과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가장 큰 득을 본 사람은 신라나 당의 왕이나 백성이 아니라 무조라는 한 여인이었다. 이를 보면 역사는 철저히 개인의 욕망과 돈에 따라 움직인다.

글 | 문성근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본문이미지
태종 무열왕 김춘추 영정.

김춘추!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외모가 출중하고, 행동거지가 분명하며, 사려 깊은 성품의 소유자로서 삼국통일의 대망을 품고 외교전문가가 되어 나당연합군을 성사시킴으로써 한반도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어려서부터 삼국통일의 대망을 품고 외교전문가가 되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낮은 신분(그때까지 신라의 왕은 모두 성골이지만, 그는 진골이었다)으로 왕이 될 가능성은커녕 젊을 때 왕자대접도 받지 못했고, 국가나 민족은 17,8세기 근대 이후 생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의 인생역정을 본다면 그렇게 말하기는 더 어렵다.
 
김춘추는 38세 때 대야성전투에서 애지중지하던 딸과 사위를 잃고 절망에 빠졌다. 그럼에도 신라의 현실은 국력이 약해 백제에 보복은커녕 영토 유지도 버거웠다. 이 때문에 김춘추는 목숨을 걸고 적국인 고구려를 찾아 가 군사원조를 애걸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오히려 볼모가 된다.
 
그럼에도 그는 ‘신라왕실을 설득하여 영토의 일부를 넘겨주겠다’는 구실로 고구려를 탈출한 뒤 백제의 동맹국인 왜로 갔다. 일찍이 신라의 재상 김제상이 왜에 사절로 갔다 죽임을 당하고 부인은 망부석이 된 전설을 지닌 원수의 나라를 찾아가야 할 정도로 나라(신라)의 형편이 위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국 역시 김춘추를 철저히 무시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하는 수 없이 멀리 바다 건너 당(唐)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김춘추는 당으로부터 어리둥절할 정도의 환대를 받았다. 당으로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태종은 형제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현무문 사건(서기 626년)으로 심각한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었고, 정통성 시비를 불식하려고 감행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 태종으로서는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의 후방인 백제를 치자는 김춘추의 제안은 민심이반과 왕조의 몰락을 막는데 더 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수단이라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최초의 나당연합군이 결성되어 대야성탈환전(서기 648년)이 벌어졌고, 이를 기화로 당은 왕조의 안정을 기하고, 신라는 백제를 견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김춘추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신라에 또 다른 기회가 왔다. 당태종의 후궁이던 무조라는 여인이 아들인 당고종의 후궁으로 있다 급기야 황후로 즉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당 조정은 아버지의 후궁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황제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무조가 황후에 오르자 그 불만은 폭발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무조는 뛰어난 정치감각을 발휘하여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여 백제를 전면침공함으로써 당나라 백성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친 김에 고구려까지 정벌함으로써 민심달래기를 넘어 당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 공적을 쌓았다.
   
그 후 무조는 백제와 고구려의 궁궐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통치자금으로 투입하여 서적편찬기관인 북문학사(北門學士)를 만들어 지지세력을 육성하고, 권력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셋째아들을 황제(중종)로 삼았다가 두 달도 안 돼 막내아들(예종)로 바꾸는가 하면 나중에는 스스로 여황제(측천무후)로 즉위하고, 국호마저 주(周)로 바꾸는 등 역사적 유례없이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이를 보면, 한반도의 삼국통일로 가장 큰 득을 본 사람은 신라나 당의 왕과 백성이 아니라 무조라는 한 여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이념이나 이상보다는 철저히 개인의 욕망이나 돈에 따라 움직인다는 냉엄한 현실을 알 수 있다. 민심을 살펴야 하는 국내정치보다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의 현실인 김씨 일가의 세습정권,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아베의 집권욕, 트럼프의 재선열망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히 연구되고 있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외교가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털어내기 어렵다.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당과의 강력한 동맹을 통해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삼국통일을 이룬 역사를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외교는 국내정치 못잖게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그리고 정치, 경제적 이해가 같을수록 동맹은 결속되고, 체제나 이념이 비슷할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은 세계사의 교훈이다. 특히 동서양과 대륙 및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한반도의 주인에게는 더욱 더 소중한 교훈이니 만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7-19 13:52   |  수정일 : 2018-07-19 13:52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문성근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

⊙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부산지방변호사회)
⊙ 역사소설 <삼포시대> 저자

2건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철웅  ( 2018-08-22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3
과거나 지금이나 지리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이 나라에서 외교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만, 무엇이 슬기로운 대처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요. 다만, 과거나 지금이나 내부 결속이 되지 않아 외세에 침략을 당한 것을 생각하여 경제력 등 국력이 강해지면 생각이 다들 생각이 달라지겠지요
김문창  ( 2018-07-23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7
작자님이 글 쓰신 의도는 잘 알겠으나,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작가님늬 글대로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진보들은 자주를 외치면서 전자권을 환수 하려고하고 있고, 우리의 최대동맹국인 미국과 결속은 되지않고 국사훈련도 하지않고, 조금씩 빗끗거리는것 같아 보이고 있으니 이나라의 앞날이 조금은 극정 되는 것은 사실 인것 같아 보입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