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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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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요?

글 | 이경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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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요?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눈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거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때, 문득 숨을 멈추고 다시 돌아본다.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가, 이게 화양연화인가, 하고.

어린 청춘 시절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고, 내가 바라기만 하면 행복은 내 곁에 머물 것이라고.
그 멍청한 생각이 얼마나 웃긴 것인지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처절한 삶의 논리 같은 것이었다.
행복이란 건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세상을 굴러다니고 있으며, 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취하거나 나를 버리고 달아나는 존재라는 것을.
바람난 연인처럼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아서도 안 되는 손에 쥔 바람 같은 것이란 것을.

2000년대 초반,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생소한 제목에 마음이 팔려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물론 주인공 양조위 때문이었다. 당시 내 눈엔 그의 어떤 모습도 다 좋았지만, 이 영화 스틸컷엔 전에 보이지 않던 색다른 모습이 많아 더욱 가슴이 설렜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멜로임에도, 영화관에 걸린 사진에선 남녀 주인공의 웃음이나 행복한 표정이 전혀 없었다. 음울하고 심오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거기에 단정하게 블랙 수트를 차려입고 담배를 피우는 양조위의 눈빛은, 나 같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을 어두운 관람석으로 밀어넣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빛에 끌려들어 가 처음 알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화양연화’라 일컫는다는 것을. 

영화 속에서도 제목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음악 신청을 받는 라디오 DJ가 엽서를 읽어주는 부분이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메이 양과 친구와의 우정을 기린다는 장 부인, 그리고 사업 때문에 일본에 있는 첸 선생도 이 노래를 청했군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입니다”

영화는 제목부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행복한 시절을 말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출발은 외로운 한 남자와 외로운 한 여자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

1960년대 초반, 홍콩의 어느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지역 매일신문 데스크인 차우(양조위)와 그의 부인, 그리고 무역 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리첸(장만옥)과 그녀의 남편.

차우의 아내는 호텔에서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리첸의 남편 또한 일본에 사업체를 두고 있어 출장으로 늘 집을 비우며 사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차우와 리첸은 아파트 좁은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차우와 리첸은 주변의 이웃과 어울려 가끔 마작을 하거나, 가십거리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점차 절친한 친구가 되어가는 두 사람.

차우는 우연히 리첸과 아내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리첸이 가진 그 핸드백은, 그녀의 남편이 해외에서 사온 것이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우는 아내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리첸 역시 남편이 해외에서 사온 넥타이와 똑같은 걸 차우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와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차우와 리첸, 두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들이 서로 외도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 짐작하게 된다. 둘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로부터 외면당한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리첸, 아내의 외도를 짐작하면서 애써 모른 척 가정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차우.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출장 간 남편과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며 쓸쓸하고 외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의 제목은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의미하고 있지만, 차우와 리첸에겐 ‘가장 힘들고 불행한 시절’이 될 수도 있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고통을 제공하는 자는 차우의 아내와 리첸의 남편이지만, 그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의 모든 시선은  배우자의 외도로 쓸쓸하게 남겨진 두 사람만을 조명한다.

외로움으로 불륜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 내용이지만 차우와 리첸, 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매우 인색하기만 하다.

“우린 그들과는 다르니까요.”

리첸의 말은,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마음의 공간을 부여한다.
좁은 아파트 복도와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 계단을 오가면서도 두 사람은 늘 사이에 공간을 두고 스칠 듯 말 듯 비껴간다.
함께 택시를 탈 때나, 거리를 걸을 때도 그 공간은 여전하다. 그 공간을 채우는 건 영화 속 아름다운 영상이다.

영화는 말이 없다. 대사가 없는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다. 눈빛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시선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뿐이다.

말 없는 말로 연결되는 드문드문 비어있는 그 공간을 채워주는 건 역시 아름다운 영상과 영혼을 울리는 절절한 음악이다.
 
눈과 귀가 영화에 흡입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마치 그 순간을 자신의 화양연화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나에게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이미 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인가. 어쩌면 아직 지나치지 않았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기억 속에 그 시절이 묻혔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아직 아름다운 행복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테니까. 

화양연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외면당하게 되면서 하필, 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맞게 된 두 주인공에게, 그 시절은 결국 어떤 기억으로 남게되었을까?
잊을 수 없는 을의 기록일까, 아니면 을을 뛰쳐나온 갑의 기록일까. 영화의 결말은 당신이 직접 확인하리라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어쩌면 당신도, 앙코르와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뛰어나갈 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그리했던 것 처럼.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7-12 09:14   |  수정일 : 2018-07-1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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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경희 소설가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국회의장단 기획관을 지냈으며, 일간지 문화부 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JTBC드라마 원작소설 '품위있는그녀 1,2' 를 출간했고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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