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수사와 재판의 원초적 모순과 한계

도덕과 상식의 사회적 가치는 수사 및 재판과 비교가 안될 만큼 크고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치를 너무 모른다. 도덕과 상식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하자!

글 | 문성근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 그래픽=조선pub
사람들은 수사와 재판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절차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렇지만 현실의 수사와 재판에서 과연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실현되고 있을까? 이에 관해 20여년 전 한 선배로부터 “수사나 재판에서 진실이 규명될 가능성은 동전던지기의 확률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참 세월이 흐른 요즈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수사와 재판에는 원초적 모순과 한계가 있다. 우선 재판은 사건의 진상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건의 진상을 훤하게 아는 사람을 심판한다는 구조적 모순을 갖는다. 그런데다 사건이 많아 한 사건에 매달릴 수 없는 사람이 한 사건에 오롯이 인생을 건 사람을 심판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고 수사나 재판에서 추구하는 진실과 정의의 개념은 과연 명확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현인과 철학자들이 진실과 정의를 규명하려고 수천년간 평생을 노력했지만, 뚜렷한 개념정의에 실패했다. 그러다보니 진실과 정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개념이 되었고,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될 때도 많았다.
 
그런데다 인간의 의식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사물의 일부를 볼 수밖에 없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는 것만 잘 기억하는 인지편향적 본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증인들의 증언이 대개는 서로 다르다. 이를 보면, 수사나 재판이란 어렵고 복잡하며, 소모적인 절차이다(이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잘된 수사나 재판이라 하더라도 이를 통해 밝혀지는 것은 증거와 절차라는 좁은 문틈으로 엿보이는 진실의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정의의 문제와 부닥친다. 때문에 ‘미적거리는 앞차에 클랙슨을 누를까? 말까?’, ‘괜히 신경을 거스르는 녀석에게 화를 낼까?, 말까?’, ‘주인에게 종업원의 불친절을 따질까? 말까?’, ‘예쁜 아이를 한 번 쓰다듬어 줄까? 말까?’, ‘그 녀(이)에게 과감히 대쉬를 해볼까? 말까?’ 따위의 고민이 항상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일상의 고민거리는 상대에 따라 오해나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수사나 재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지만 수사나 재판은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시비를 일일이 가릴 수 없다. 어느 사회든 사람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나 충돌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사나 재판보다는 도덕과 상식에 따라 대부분 평화롭게 해결된다. 따라서 도덕과 상식의 사회적 가치는 수사나 재판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도덕과 상식의 가치를 너무 모른다. 그런 나머지 함부로 법을 앞세워 엄벌주의에 빠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역사는, 엄벌주의란 범죄예방효과는 별로 없으면서 범죄예비군을 키울 뿐 아니라 시대와 백성의 여망에 따른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권력의 도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권력에 대드는 자에게 삼대(三代)를 몰살하는 혹독한 처벌을 일삼은 권력자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룬 예가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심과 도덕 및 상식이 제자리를 지키려면, 법이 설치고 날뛰어서는 안 된다. 법이 설쳐대면 수사와 재판이 난무하고, 그렇게 되면 진실과 정의가 오히려 흐려져 억울한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 수사나 재판이 수많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이 설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법에 과도한 기대나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법이 과도한 기대나 부담을 받을 때, 수사나 재판은 범인을 ‘색출’하는 게 아니라 ‘창출’하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수사나 재판이 일반백성의 건전한 상식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고삐를 죌 책무가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우리(백성)들이니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6-27 16:08   |  수정일 : 2018-06-27 16:16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문성근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

⊙ 법무법인 길 구성원 변호사(부산지방변호사회)
⊙ 역사소설 <삼포시대> 저자

2건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철웅  ( 2018-07-05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1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진정으로 알파고나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생물이 움직이는 것을 인간이 판단하여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안지만, 법이 날뛰어서도 안되겠지만 도덕과 상식을 지키지 않는 인간도 문제가 있겠지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즉 신뢰가 바탕이 되어가는 세상이 오면 더 좋은 결론이 나오겠지요,,,잘 읽었습니다,,,
김문창  ( 2018-06-2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
수사나 재판에 관여하는 관료는 주어진 책무에 대하여 권리남용을 하지 말아야 하며, 사건의 조사또한 신의성실에 의거하여 이루어 쟈햐한다고 생각하며, 대한민국 사회에 유전무전 무전유죄라는 말들이 나오지 않토록 하는 사회가 되었스면 하는 바램이나, 배우고 돈많은 넘들이 민초들을(백성)그렇게 생각하고 배려할지 의문입니다. 작가님의 좋은고견 잘일고 숙지하겠으며 민초들이 건전하게 생활할수있는 대한민국사회가 변화기를 바라보고 있겠음.... 작가님의 고견한 의견에 대해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맨위로
자유지성광장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