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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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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여성운동 “여자가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됩니까”(김명호)

⊙ 성차별 문제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체가 없으면 각성 못해 (허정숙)
⊙ 여성운동, 적은 일로부터 큰 것에로 꾸준히 나아가야 성공 (한용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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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가 단일체 조직으로 결성된 신간회의 자매단체인 근우회 발족식 모습이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결성됐다. (사진출처=박용옥, 《여성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본격적인 근대의 시작은 여성에 의한 여성운동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지만 식민지 조선은 내재적 역량이 부족했거나 전무한 상황이었다. 여성운동은 일제하 항일 민족운동에서 잉태됐으며 기독교의 전파와 근대 학교교육에서 시작됐다. 또 여성지 《부인(婦人)》(1922년 6월 1일 창간)과 《신여성》(1923년 9월 1일 창간)에 실린 글, 근우회(槿友會) 운동이 선각자적 역할을 했다.
 
  근우회는 민족단결을 위해 조직된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 1927년 5월 발족됐다. 근우회가 발행한 잡지가 《근우(槿友)》인데 주로 여성의 권익과 지위향상을 위한 글을 실었다. 1929년 5월 10일 창간된 《근우》는 편집자 겸 발행인이 정칠성(丁七星), 국판 121쪽으로 발행됐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전문이 삭제되거나 대폭 삭제되는 등 수난을 겪었고 결국 창간호만 내고 폐간되고 말았다. 《월간조선》은 《근우》에 실린 허정숙의 〈근우회 운동의 역사적 지위와 당면 임무〉를 싣는다. 허정숙(許貞淑·1902~1991)은 당대 대표적인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였다. 또 당대 민족지도자인 한용운·송진우·홍명희 등의 짧은 글을 싣고 있다.
 
  1927년 7월 《신여성》에 실린 〈현대 여성의 수양〉도 소개한다. 이 글을 쓴 김명호(金明昊)는 일제 강점기 천도교 지도자다.
 
 
  근우회 운동의 역사적 지위와 당면 임무
  허정숙
 
《근우》(1929년 5월호)에 실린 허정숙의 〈근우회 운동의 역사적 지위와 당면 임무〉 첫 장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과거를 회고할 때에 여성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모든 사회적 조건에 있어서 불평등한 지위에 처하여 있었고 가정과 사회의 2중 질곡에서 고통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현실에 있어서도 역시 이 모든 불리한 ○○(판독불가-편집자)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 그 모든 질곡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계여성의 공통된 처지일 것이며 이 질곡에서 해방되려는 고민도 역시 동일할 것이다. (중략)
 
  부인문제를 취급함에 있어 단독(單獨)이 그 문제를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여성문제 그것이 사회문제의 하나이니만큼 분립(分立)하야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문제 그것이 그 각계의 사회적 조건에 의하야 결정되는 까닭이다. 그럼으로 여성운동 그것도 각기 문제의 기원지인 사회적 정세에 의하야 논의 우(又)는 결정을 짓게 되는 것이다.
 
  현재 조선에도 ××주의 문명이 수입되어서 과거 봉건시대와는 다른 사회상을 나타내이고 있다.
 
  과거의 여성은 봉건적 제도하에서 사회화된 모든 도덕과 인습, 온갖 비참한 질곡에서 신음하였었다. 특히 동양윤리 등 특수제도하에서 조선의 여성은 다른 나라 여성보다 더욱이 참담한 처지에 처하여 있었었다. 그들은 가장제의 복잡한 가족제도하에서 가정노예로 사회적으로는 반인간적 대우를 받게 되어 법률상 무능력자로서 사회상 무지, 무권(無權)자로서 그 일생을 통하야 열등한 생활이 아님이 없는 가련한 인간이었었다. 이것이 봉건제도가 끼쳐 준 조선여성의 고통이다.
 
  이러한 조선여성에게도 근대문명의 수입과 함께 새로운 서광을 보게 되었다. 무지를 여성의 소유물로 하고 굴종과 예속만을 선덕(善德)으로 가정노예의 멍에에서 신음하여 조선여성에게 교육기관의 시설, 여성의 사회적 문호개방 등 이전에는 상상치도 못한 여성의 개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야 사회는 그 팔을 벌려서 환영하였다. 이미 이 해방의 문호가 개방된 지도 어언 30여년이 되어온다.
 
  과거 30년 전과 대비하여 볼 때에 얼마나 오늘의 여성이 과거의 여성에 비하야 해방되었으며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게 되었는가. 그러나 봉건적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최후의 단말마적 행동을 폭로하야 여성을 고(苦)롭게 하고 있으되 과거와 같이 공공연히 봉건적 구속이 여성을 침해하지 못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여성자신의 의식적 노력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근대문명이 수입된 결과 조선의 사회적 정세가 여성을 공공연히 압박 구속을 못하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러한 등 여성을 구속하는 사실이 종종 있으나 이것은 봉건의 단말마적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여성의 교육제창 등 여성에 대한 이해 진보(進步), 이것이 근대문명의 수입에 의존한 성적 평등의 지배적 제도가 은연 중에 욕구된 까닭을 증명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피상적 성별 평등의 지배적 제도가 이 조선여성에게 완전한 해결을 주지 못한다.
 
  근대 산업제도가 조선에 수입됨으로부터 조선여성은 구미(歐美) 그것에 비하여 양에 있어서 비록 극소수라 할지라도 봉건의 지배적 제도로서 가정적 예속에서 떠나 사회적 일개인으로 자아의 경제적 생활은 자아의 노동력을 생산치 아니하면 생활치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야 농장으로 공장으로 토목공사장으로 나가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그리하야 그들이 성적 해방을 얻어 가정에서 공장에 대등된 인간으로서 고주(雇主)와 자유계약하에 노동을 하는 임은(賃銀)을 받는 평등적 지위를 얻었다 하겠으나 그들의 생활방식이 결국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봉건적 질곡에서 현대의 경제적 고통에로 몰아넣고 그들을 고민의 과중에서 신음하게 한다. 그들의 가정은 파괴되고 그들의 유아는 굶주린 창자를 안고 가두에 방황하는 부모 있는 고아가 되게 하는 비참한 사실이 그들의 안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부인(婦人)이 현재 약 5만여에 달하고 있다. 이외에 무산층에 속하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결국 근대문명이 여성에게 가져다준 성적 해방 그것은 현하 조선의 여성을 봉건적 제도에서 근대문명에 경제적 모순에 구축(驅逐·몰아서 쫓아냄-편집자)하고 말았다.
 
  조선의 자본주의 발전은 기업에 있어 아직 유치하다 한 점이 무불하나 그러나 기업회사의 불입(拂入)자본을 보면 1911년에 15,910천원이었던 것이 1926년에는 21,061천원이 되었으니 그 격증률(激增率)이 실로 배가 된다. 그리고 이 자본 중에 조선인 자본은 근(僅)히 10.3%(1926년도)에 불과하다.
 
  -(이하 26행 삭제)–
  (*일제 검열에 의해 삭제됐다–편집자)
 
  5
 
  -(3행 삭제)-
  (*검열에 의해 삭제됐다–편집자)
 
근우회의 기관지였던 잡지 《근우(槿友)》의 창간호. 1929년 5월 10일 간행됐다.
  이 전략을 세움에 있어 조선의 사회적 조건을 먼저 살펴보자! 근대문명이 조선에 수입된 이후에 그 산업 정책의 발달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야 앙진(昻進)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조선에는 아직까지도 외국에 비하야 공업의 발달이 부족하고 농촌경제가 중심세력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현재 조선의 (1926년 통계에 의하면) 공업노동자가 겨우 남녀 합하야 8만600여 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도 조선의 공업이 경제상 중심세력을 못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아직도 그 발전의 여지가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근대문명이 조선에 수입된 이후 조선 내에 있어 공업의 발달이 일(日) 증가하고 공업경제가 그 세(勢)를 만연하는 것이 사실이나 조선의 공업은 방적, 제사(製絲), 착금(○錦)고무 등 소비공업의 발달됨이 있을 뿐으로 ×××의 생활품의 소비시장으로서의 가치를 면치 못하였고 공업 원료는 재료 그대로 외국에 수출되는 것이 현하 조선의 경제중심이 아직도 농촌경제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농촌경제가 경제계의 중심세력이 되어 있는 이만큼 봉건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어 그것이 비록 봉건적 지배제도로서 존재치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잔재가 여전히 은연중에 여성을 가정 제도에서 사회적 관습에서 그 질곡에 신음케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분위기가 일반 사회를 에워싸고 돌며 여성운동의 분위기에도 이것이 둘러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 즉, 다시 말하면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 그 자신도 이 봉건적 관념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고 또 과거의 무지가 여성의 사회적 기능에 있어 일반운동에 미급(未及·아직 미치지 못함-편집자)되어 있고 따라서 봉건적 잔재에 여지없는 유린을 당하는 등 사실이 우리 사회에 암류(暗流·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온한 움직임-편집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선여성운동은 초보적인 기질(其質)에 비추어 극히 자연생장적인 여성의 성적 반역의식을 가진 여성해방운동으로부터 전개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관념적 해방의식 그것은 벌써 사(死)의 의식이 되어 있는 것이며 또 이 해방운동이 여성운동의 구경(究竟)의 목적에 도달시키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상과 같이 조선사회의 각 개체 조건이나 여성주의적 조건에 있어 여성운동이 성별적 조직의 계단(階段)을 밟지 아니치 못하게 되며 이 여성의 성별적 조직 즉, 성적 차별문제 등을 위하야 투쟁하는 조직체를 통치 않으면 결국 여성의 대중을 실제상 사회적 의식에 각성과 그 조직을 가지게 할 수 없는 것이 현하 조선 여성운동의 사회적 조건이다.
 
  이에서 근우회는 원시적이고 자연생장적인 여성계몽운동을 표어로 한 조직체로서 현 사회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즉 이상과 같은 조선의 사회적 조건이 근우회의 출현을 있게 한 것이고 근우회의 사회적 존재의 의의도 이에 있게 되는 것이다.(이하 생략-편집자)
 
  (출처=《근우》 제1권 제1호, 1929년 5월)
 
 
  근우여성에 대한 각 방면 인사의 기대
 
《근우》(1929년 5월호)에 실린 홍명희와 한용운의 짧은 글이다.
  정치적 의식각성을
  홍명희(洪命熹)
 
  성공의 향로에는 높은 산과 험한 바다가 있으며 지금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일진일퇴의 고경의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조선에 있어서는 전체 인(人)이 난경에 있으며 거기에 일부인 여성운동 역시 같은 현상이고 본디 무엇을 기대한다 해야 된다는 것도 결국 되풀이하는데 불과할 뿐만 아니라 따라서 근본문제에 지나지 않을 줄 안다. 여기에 있어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오직 일천만 우리 제 매의 게(이하 2행 삭제)(*검열에 의해 삭제됐다-편집자) 여성운동 선구자들의 책임이 중대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점에 대하야 주의 주의를 더하야 노력지 않으면 아니 될 줄 안다. 아직 완전히 봉건사상에 탈각을 보기 어려운 조선이고 보니 여성운동에 있어서는 더욱 난관인 것도 사실이나 여기에서 선각 여성은 자성의 이익이 아변에 있음을 바로 보지 못하고 각기 흐트러져 있음은 여성운동 전체로 보아 적지 않은 손해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경에 하나임으로 피할 수 없을 것이나 이 점에 있어 더욱 노력이 있어야 그 목적지에 당할 줄 안다.
 
 
  적은 일부터
  한용운(韓龍雲)
 
  현재 어떤 나라를 물론하고 여성운동의 대상은 더 말할 것 없이 여성으로 하여금 불리한 경우에 있도록 한 구(舊) 윤리·도덕·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여성운동이 각 방면으로 나아가지만 그 근본 의의는 여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에 있어서는 운동 전체가 그러하니만큼 여성운동에 있어서는 난관의 미약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타협이라고 할지 모르나 세계 어떤 나라를 물론하고 그 시대~의 일어나는 운동은 현실, 거기에서 태생하는 것이니 우리는 현실을 너무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 조선이 그러하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너무나 이론과 실현의 결핍한 우리라고 하고 싶다. 그럼으로 나의 바라는 바는 실현의 충실하야 적은 일로부터 큰 것에로 꾸준히 나아감으로 모든 성공이 올 줄 안다.
 
 
  가정부인 교육에
  송진우
 
  현재 조선에 있어서는 모든 것에 질서적으로 그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이며 어느 것을 나중에 하여야 된다고 할 수 없으며 많은 지장은 각 방면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니 그 실현의 있어 매우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동서양을 물론하고 일어나는 운동은 각기 그 나라와 경우를 따라 방침이 다를 것이니 조선에 있어 여성운동도 환경이 특수하니만큼 그 방침도 다를 줄 안다. 그럼으로 모든 것을 다하여야 하겠지만 무엇보담도 근우회의 사명은 일반 암애(어두컴컴하게 낀 짙은 안개-편집자)한 구 가정여성으로 하여금 세상의 일을 깨닫기에 필요한 교양사업을 주로 하기를 바라며 또는 그리해야 되겠다. 여기에는 먼저 선각 여성의 책임과 실현의 충실하야 근우회가 조선여성의 이익을 도모함에 표현기관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근우》 제1권 제1호, 1929년 5월)
 
 
  현대여성의 修養
  김명호
 
《신여성》(1927년 7월호)에 실린 김명호의 〈현대 여성의 수양〉 첫 장이다.
  상(上), 과거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려라
 
  근래는 여자도 해방을 시키느니 교육을 시키느니 평등이니 자유이니 새로운 말이 많이 돌아다닙니다. 그렇다고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여자도 완전한 인격자가 되며 완전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여자로서 사람다우며 사람다운 살림을 하기는 많은 노력이 아니면 안 됩니다. 더욱이 자식이 있는 여자, 그중에도 책상을 대하고 있는 여학생 같은 이는 더 깊은 생각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지난 때 일을 잘 알아봄에서 오늘의 생각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중략)
 
  당나라 현종 때의 궁녀가 4만인, 환관이 4000인, 이것 한 가지만 가지고 생각해 볼지라도 엣날의 임금들이 사람목장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감독하는 사람들을 두고 잘 길러서 필요한 때에 마음대로 사용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마음성을 잘 짐작할 것입니다. 목장에서 기르는 짐승, 궁내에서 기르는 궁녀 무엇이 다릅니까. 또 부력(富力)이 있는 사람은 큰 목장을 두고 많은 짐승을 기릅니다. 우리 조선 사람은 도야지 한 마리식도 기릅니다. 제왕은 많은 여성을 길러서 마음대로 사용하고 또 그만 못한 사람은 적게 길러서 사용하고 가난한 백성은 도야지 한 마리 기르는 셈으로 한 사람의 여자를 기릅니다. 여자 여러분! 이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옛날에 백성을 지도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놈들의 한 짓을 생각할 때에 여자도 사람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됩니까. 역사니, 윤리니 하는 것도 만들었습니다. 글로 써서 후세에 전해주었습니다. 또 옳은 사람이 좋은 글을 썼을지라도 그놈들은 자기들에게 싫으니까 잘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글 중에도 그 따위 글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여성으로서 참된 값과 인격을 나타내는 데는 장애가 될 것뿐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시인하며 긍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선동이 아닙니다. 꼭 그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말합니다. — 모든 것은 불살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속으로 옛날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고 오직 새 마음, 새 생각으로 새 인격을 창조해야 합니다. 따지(地) 자를 이미 써놓고 하늘천(天) 자로 고치려면 애쓸수록 더러워만지는 것과 같이 옛날의 잘못된 생각을 다 받아들이고 좀 새로워 보겠다고 애써 가지고는 도저히 시원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옛날의 모든 잘못된 것은 한꺼번에 불살라 버리고 이후론 여자도 참된 인격자가 되어 세상에 난 보람이 있고 산 보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제까지의 지난 때 많은 세월에는 사람으로 생겨난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부터 여자도 사람으로 생겨난 첫날로 생각하고 새로운 결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下), 무섭게 수양하라
 
1927년 7월호 《신여성》 표지.
개벽사가 발행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가벼웁게 옅게(淺)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신 여자란 이들이 가벼웁게 옅게 행동을 하는 까닭에 도로 코웃음을 사고 또 여자운동에 장애가 되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부터라고 생각할 때에 그 행동은 무겁고 그 생각은 깊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쉽게 실행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세월에 크게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 따라서 반드시 이제서는 안 될 몇 가지를 여기서 말하겠습니다.
 
  첫째, “자존의 감정을 기르라.”
 
  남존여비라는 말은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입니다. 우리가 그만치 많이 들은 만큼 사람들은 거기에 머리를 수그립니다. 더욱이 여자로서 완전한 인격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이따위 말의 힘이 될 것입니다.
 
  ‘미치지(狂) 않은 사람도 많은 사람이 다 미쳤다고 하면 미친 사람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몇 천년 동안을 그저 그저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고 글로 말로 항상 말하였으니 아무리 남녀가 다르지 않다고 한들 그 영향이 어찌 없겠습니까. 우리는 그때 받은 상한 자리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즉 자존의 감정을 길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존의 감정이란 것은 무엇인고? 스스로 높은 체하고 거만을 피우란 말이 아닙니다 흰구름 위에 높이 날아다니는 학과 같이 그렇게 고상한 생각을 가지고 지난 때의 너저즐한 생각을 털어버리는 말입니다.
 
  여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때에 어떠한 생각들을 가졌습니까. 한 번이나 나도 완전한 사람이다 하고 자기의 뜻을 세워본 일이 있습니까. 남자의 얼굴이나 바라보고 여러 가지로 아양을 부린 것뿐이 아닙니까. 남자에게 자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남자가 부려먹는 한 고기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략)
 
  둘째, “생각을 자유롭게 가지라.”
 
  각 사람의 몸은 각 사람이 수시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갑이 을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며 을이 갑의 몸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물론하고 자기를 명령하고 자기를 부릴 사람은 오직 자기뿐입니다. 못난 사람이라 하야 잘난 사람이 명령하며 부릴 것이 아니며 약한 사람이라 하야 강한 사람이 명령하며 부릴 것도 아닙니다. 그러하다면 여자 여러분이 가지는 생각은 자유이며 자유로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자유로 못하고서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가슴속에도 높고 귀하며 지혜로운 것이 있음을 찾아내야 합니다.
 
  셋째, “물질적 실력과 정신적 실력을 기르라.”
 
  이 사회제도 밑에서 여자더러 물질적 실력과 정신적 실력을 기르라는 말은 퍽 상식이 없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또 그것을 아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물질적 실력의 근원이 될 만한 노동력과 정신적 실력의 근원이 될 만한 사고력은 길러야 합니다.
 
  이 위에 말한 세 가지는 현대의 여자로서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수양조건입니다. 우리 여자들의 지금의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깊은 생각을 가지고 모든 불평에 속을 태우는 이들은 제발 이 몇 가지를 잊어버리지 말아 주기를 바랍니다. -(비오는 저녁 南滿 一隅에서)-
 
  (출처=《신여성》 제4권 제7호, 1926년 7월)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6-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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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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