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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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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유통기간이 있다면 몇 년으로 하시겠습니까?

글 | 이경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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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주인공 유지태가 이영애를 향해 한 말이다. 사랑이 변한다는 걸 이제껏 잘 알고 있던 우리는, 그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문장 대신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변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주절주절 대사가 늘어졌더라면 그 영화의 기억은 빨리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은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가 되었고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살면서 한 번쯤 누군가 앞에서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기억이 그 말을 사무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실제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의 자료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떻게’는, ‘how’를 의미한다. 이미 여러 통로로 보도가 된 내용이라 미리 말하면 다들 짐작하듯 호르몬 분비의 변화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의 배후에는 호르몬 작용이 크다고 한다.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이 그것인데 이들 호르몬이 매우 강하게 분비될 때 우리는 사랑이나 연애의 감정에 충만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 호르몬이 끊임없이 분비되는 건 아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 호르몬도 점차 하강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온다. 우리가 익히 잘 알 듯 그 시기가 평균 18개월에서 36개월 정도다.
 
그래서? 영화 속의 이영애가 유지태에게서 마음을 돌렸던 걸까? 호르몬 반응이 여자에게만 적용되고 남자에겐 적용되지 않아서,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외쳤던 걸까?
 
사람들은 묻는다. 정말 사랑에 갑과 을이 존재하나요? 어떻게 연애에 갑과 을이 존재할 수가 있죠? 이런 때, 질문자는 두 경우 중 한쪽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에서 늘 갑의 위치에만 있었거나 아니면 정말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않았거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묻는 사람이 을이다. 지난번 이야기했듯, 끝까지 사랑한 자가 을이고, 끝까지 지키고 있는 자가 을이다. 사랑으로부터 먼저 떠나는 자는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자다.
 
내가 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 건, 내가 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자들의 호르몬 논리에 이미 적용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나는 연애 시절과 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더 열렬히 남자를 사랑했다. 물론 여기서 남자는 남편을 말한다.
 
직장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한 남자를 향해 심장이 계속 뛰고 있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즈음 나의 바람은 빨리 아기들이 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홀가분히 남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전처럼 밤 세워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영화도 보고, 느릿느릿 여행도 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7년 정도 되었을 때, 드디어 여유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남자는 직장에서 한창 중요한 일을 맡아 바쁘던 시절이라 많이 아쉬웠지만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친 남자가 일찍 귀가했다. 우린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보통 때는 밀린 잠을 자거나 다른 볼일로 각자 바빴을 시간이었다. 늦은 봄이라 바람조차 살랑살랑 사랑스럽게 불던 오후였다. 아파트 뒤쪽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우리는 아이들 놀이터로 향했다.
 
남자와 나는 놀이터 앞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한 아이는 미끄럼틀 위로, 한 아이는 그네로 올라가 꺄악꺄악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모처럼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바란 게 별건가 이런 순간이지, 싶었다. 너무 행복해서 나도 아이들처럼 모래밭을 마구 뛰어다니고 싶었다. 행복했다.
 
정말 좋아. 이런 게 행복인가 봐. 우리 이제 일주일에 하루는 이런 여유 가지면서 살자. 아마도 이렇게 말하려 옆의 남자를 돌아보았던 것 같다. 하필이면 그 순간, 남자가 내 손을 꼭 잡았다. 
“할 말이 있어.”
남자가 웃으며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마도 내가 할 말을 남자가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이제 아이들도 좀 컸으니... 각자 자신의 일에 좀 더 매진하자.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잖아.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 도와 줘...”
 
놀이터 너머의 키 큰 나무 사이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붉은 석양이 나뭇잎에 걸리는가 싶더니 뿌옇게 번지고 있었다.
 
“엄마아!”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던 아들아이가 모래밭으로 곤두박질쳤다. 남자의 손을 놓고 아이에게로 뛰어갔다. 모래밭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도 놀라 모래밭으로 뛰어왔지만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나는 을이었다. 을인 나는, 사랑의 주인이어서, 그 거리를 내가 결정해야 했다.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도 을의 일이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얼마인지 사람들은 묻는다. 학자들은 기껏해야 3년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게 ‘어떤’ 계기가 없었다면, 내 사랑의 유효기간은 아마 죽을 때 까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말 할 수 없다. 내 사랑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 된다는 의미지만 ‘변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의 사랑은 갑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기꺼이 답하겠다.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6-05 17:47   |  수정일 : 2018-06-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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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경희 소설가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국회의장단 기획관을 지냈으며, 일간지 문화부 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JTBC드라마 원작소설 '품위있는그녀 1,2' 를 출간했고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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