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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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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새로운 사료 발견

글 | 박기용 부산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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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용 부산문인협회 이사
근래 우리나라와 일본이 동해바다 명칭을 두고 ‘동해’다 ‘일본해’다 하는 국제 분쟁에 대하여 2017년 4월 모나코에서 개최된 국제수로기구(IHO)에서 한일 양국이 2020년까지 협의하기로 합의된 상황에서 부산문인협회 이사인 수필가 박기용(朴箕容) 씨가 일본의 오키하라 헤키운(奧原碧雲) 역사교사가 지은 『죽도 또는 울릉도』란 책자에서 귀중한 ‘동해’의 새로운 사료를 발견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명치 40년 3월 말에 독도를 죽도로 칭하고 신 영토계획으로 30여 명이 죽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단원 중 오키하라 헤키운(奧原碧雲) 역사교사는 조사결과물을 써서 시마네현에 내고 1907년 5월에 조사내용을 『죽도 또는 울릉도』란 책자로 출간했다.
 
이 책자의 제1장 지리의 위치와 지세를 살펴보면, “울릉도는 한국 강원도의 해상에 있는 큰 섬으로 북위 37도 29분, 동경 130도 53분에 위치하고 강원도의 연안 거리 약 80리, 서북 140리에 있다. 지세로는 본도는 강원도 금강산의 한 지맥, ‘동해’에 들어있고 산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봉우리와 골이 이어져 있다. 산세는 험하여 평지는 보이지 않는다. 중앙에는 나리산이 해발 40척이나 된다. 전도에는 산림이 우거져있고 근년에 와서 벌목을 하여 암벽이 노출된 곳도 있다. 골마다 중앙에는 고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사방으로 흐른다. 이런 물들이 큰 내 천을 이루고 제방 시설이 없어 폭우에 홍수가 범람하여 피해를 이룬다, 연안의 절벽들은 험한 파도에 암벽이 깎여 곳곳마다 암벽의 조각을 이룬다. 섬 동북 3바위 조각도 그 한 예이다”
 
이러한 ‘동해’ 표기는 우리의 ‘동해’를 당시 일본사람도 ‘동해’라 불렀고 일본 정부도 ‘동해’ 명칭을 인정해 왔다는 것을 이 사료가 다시 한번 증명해주고 있다.
 
앞서 필자는 2012년 5월 선친이 남긴 일제강점기 때의 레코드판과 작곡집 등을 정리하다가 당시 일제가 공식행사에서 부르게 했던 ‘애국행진곡’이란 전시가요의 가사에 ‘동해’ 명칭을 발견했다. 문제의 가사가 실린 작곡집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병과 전시동원체제가 본격화하던 1937년(소화 12년)에 발간된 것으로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을 작곡한 박시춘(1913~1936)의 대표곡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사실은 당시 현재의 동해에 대해 일본 정부 역시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근거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러자 일부에서 애국행진곡 가사의 ‘동해’는 일본의 태평양이란 반론이 제기됐다. 이에 필자는 여러 전문 교수들의 진술,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지도, 관계 서적 등으로 3여 년의 각고 끝에 2015년에 일본 애국행진곡의 ‘동해’에 관한 연구 논문(Technical Note)을 한국수로학회지에 발표하여 우리의 ‘동해’라는 사실을 도출하였고, 조선pub은 위 논문을 요약하여 일제 전시동원 ‘애국행진곡’ 가사의 ‘동해(東海)’는 우리의 동해일까, 일본의 태평양일까? 라는 제목으로 2016년 7월 11자에 비중 있게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위의 새로운 ‘동해’ 사료의 발견으로 동해바다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아울러 필자는 우리의 동해 명칭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본이라는 상대국이 있는 만큼 차선책으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도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5-29 09:00   |  수정일 : 2018-05-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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