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6월 1일, '의병의 날'을 기억하시나요?

-6월 1일은 의병의 날, 2010년 대한민국 기념일로 지정
-의병장 곽재우가 ‘의병의 기치’를 세운 날 기념

글 |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본문이미지
일본 나고야성 박물관에 기록한 임진왜란에 대한 소개의 일부,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2016년 11월, 서울 마포에서 미얀마 88재단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들 중에는 1988년 8월 8일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20년 이상 수감생활을 한 진미 씨도 있었다. 아웅산 수지의 집권으로 석방된 그는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제일 먼저 광화문에 가서 촛불 시위 현장을 보고 싶다 하였다. 이유는 시민 스스로 평화적인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부지런히 저녁을 마친 일행들은 광화문으로 갔고, 광화문의 촛불 파도를 배경으로 찍은 그의 사진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전해졌다.
 
2017년 9월, 일본의 한 매체와 인터뷰했다. ‘문화재 반환운동’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하였다. 민간단체로서 그 어떤 보상이나 남다른 사명감이 있는지도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한국인의 핏 속에는 의병정신이 살아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1592년 임진년의 조선침략전쟁, 즉 임진왜란을 설명하였다. 당시 왜군은 조정의 무능과 분열로 조선을 침략하면 금방 승전할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뜻밖의 복명은 ‘의병’이었다. 팔도강산에서 변변한 무기조차 없어도 사력을 다해 싸우는 의병의 격전에 왜군은 패배하였다. 왜군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본 규슈 사가현 나고야성 박물관에는 임진년의 전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다.
 
<--- 조선에 대한 침략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과 의병으로서 봉기한 민중이 이에 반격을 가해 내원한 명군과 함께 일본군을 남해안까지 격퇴했다.---->
 
국가기념일 48회, 의병의 날은 행정안전부 주관
 
2018년 현재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2.28민주운동 기념일을 시작으로 12월 27일 원자력안전 및 진흥의 날까지 총 48회의 기념일이 있다. 이 중에는 2.28민주운동 기념일, 3.15의거 기념일, 4.19혁명 기념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6.10민주항쟁 기념일, 11.3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있으며, 의병의 날은 6월 1일이다. 모두 애국애족과 민주인권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치루며 싸워 온 날들이다.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이라 불린 곽재우 의병장이 의령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킨 날인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제정했다. 그리하여, 의병의 날을 제안한 의령군은 기념축제를 4월 22일을 기준으로 행사하고 있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지만 이를 기념하는 행사는 많지 않다. 의령군과 제천군, 당진시, 광주광산구 등이 진행하고 2018년에는 문경시에서 정부기념 행사가 열린다.
 
본문이미지
의병의 날 기념행사 한 장면, 사진 한국일보 캡처.

역사 속의 “의병(義兵) 정립 필요
 
곽재우는 의병을 일으킨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聖朝休養臣庶二百餘年。一朝有急。皆爲自全之計。不顧君父之難。今若以草野不起。則擧一國三百州無一男子。寧不爲萬古羞耶。
 
趙慶男『亂中雜錄』卷1 壬辰年 上  
 
벼슬아치나 백성들이 나라의 보살핌을 받은 지가 이백년이나 되었는데도 나라가 위급함에 모두 자기 보전 계책만 세우고 나라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제 나 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삼백 고을의 남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니, 어찌 만고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 조경남『난중잡록』권1, 임진년 상에 기록된 곽재우장군 의병창의 심정 중에서
 다음(Daum) 백과사전 학습용어사전 초등사회에 따르면 의병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군대 또는 그 병사“라고 한다. 대표적인 의병활동으로 임진왜란과 조선말 항일의병 등을 꼽는다. 우리 역사는 의병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수와 당의 침략에 맞서 싸운 고구려 안시성 전투, 고려시대 원의 침략에 맞선 대몽항쟁 등도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의병의 역사이다. 
 
이에 한국통사의 저자 박은식 선생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의병은 ‘의병의 날’을 통해 체계적이고 역사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1년에는 전국 규모의 행사를 하였지만, 이후에는 지자체 중심의 ‘의병의 날’ 행사를 열고 지역 연고 의병장을 추념하거나, 지역 행사의 일부로 치러지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 정보에는 의병 관련 261건의 관련 정보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등의 시기에 파괴당한 “의병승전비” 등에 대한 기록은 살펴볼 수 없다. 2005년 야수쿠니 신사에서 반환된 북관대첩비의 귀환 소식에 ‘의병 승전비“에 관한 관심이 잠시 급증하다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제는 역사의 속의 의병 활동과 의병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미래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의병 정신을 잇기 위해 지금도 문화주권, 평화통일, 역사정립을 위해 애쓰는 문화의병, 통일의병, 역사의병이 활동하고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5-08 17:00   |  수정일 : 2018-05-08 17:10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자유지성광장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