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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폭로, 그리고 괴물의 똥물을 거부하는 대중들

글 | 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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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더 폴'에서 현장에서 경찰을 지휘하는 수사관 스텔라
최근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드라마 ‘더 폴(The Fall)’을 보았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제작사가 합작한 이 시리즈물은 영국의 여성 수사관 스텔라가 벨파스트에 파견돼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추리물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3부작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의 1,2부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영상물 평론 사이트인 ‘로튼토마토 닷컴(www.rottentomatoes.com)’에서 100%라는 완벽한 평점을 얻은 수작이다.
 
드라마 주인공인 스텔라는 뛰어난 능력으로 남성수사관들을 지휘하며,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젊고 잘 생긴 남성 수사관들을 보면 거리낌없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시리즈 두 번째에는 친밀하게 지내던 경찰 상관이 그녀를 침실로 찾아가 어떻게 한번 해볼려고 마구 들이대는 장면이 있다. 완강하게 거부하던 스텔라는 한 주먹으로 남성의 얼굴을 가격하여 피투성이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 정신차린 남성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다시 범인과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며칠 후 마침 최영미 시인이 문단에서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단초가 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을 읽으며 문득 드라마 '더 폴'에서 집적거리는 상관의 쌍코피를 터뜨린 스텔라 수사관을 떠올렸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전반부는 다음과 같다.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여기서 En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 고은 이라는 것은 이제는 세상이 다 안다. 유승민 의원은 8일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문학계 성추행을 고발했다.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이라고 언급했다. 또 “고발 내용을 보면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으로 정말 추하게 늙었다”면서 “고은 시인의 시를 국정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이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지도록 성추행을 당했을 때 즉석에서, 드라마 ‘더 폴’의 주인공인 스텔라 수사관처럼 En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쌍코피를 쏟게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 시인은 En이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것을 보고도 “이 교활한 늙은이야!”하고 소리치고 도망쳤다. 만약에 최 시인이 즉석에서 En의 얼굴을 내리쳐서 입술이라도 터지게 만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En의 ‘호위무사’들에 의해 현장에서 즉각 무력으로 제압당하고 보복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노 대가의 유머를 받아주지 못하는 속좁은 인물로 치부되고, 까칠한 성격, 긴 가방끈 등도 도마위에 올랐을 것이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인 시인에게 감히 상처를 입힌 무엄한 인물로 두고두고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En선생의 성희롱 사건은 한 시대를 풍미한 늙은 시인의 기행 정도로 문단의 이면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것이다.
 
명백한 잘못조차도 만담이나 전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En의 힘, 영향력...그것이 바로 En이 누리고 보유한 권력이 아니었을까?  En의 권력은 한국 지식 사회나 문단을 좌파가 장악한 이래 매우 공고해 보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En의 권위는 불가침적인 절대적인 것 같았다. 최영미 시인도 올해 1월30일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뉴스 보며 착잡한 심경.
 문단에서도 성추행 성희롱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없다. 이미 나는 문단의 왕따인데, 내가 그 사건들을 터뜨리면 완전히 매장당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 이미 거의 죽은 목숨인데 매장 당하는 게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귀찮다. 저들과 싸우는 게. 힘없는 시인인 내가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을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내 뒤에 아무런 조직도 지원군도 없는데 어떻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조직이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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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영미 시인이 jtbc에 출연해서 En의 성희롱문제가 공론화되면서, En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En의 호위무사인듯한 사람들이 En을 비호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나타났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인 K가 2월7일 En을 쉴드치는 글을 포스팅하였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서지현 검사를 응원한다는 포스팅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의 포스팅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얼마 전 서지현 검사가 그랬듯 이른바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녀도 ‘상급 권력자’에게 당한 성적 모욕을 돌이키는 일은 그만큼 힘겨웠던 게 분명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 검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을 참고 있는 느낌이었고, 최시인은 격앙과 분노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하지만 적지 않은 ‘문단 사람들’이 지청구를 대듯, 그녀의 인터뷰 내용은 여러 형태의 성폭력을 적당히 감내하지 못하고 저항한 여성문인들은 주요 문학지면을 얻지 못하고 중요 문학출판사에서 작품집 한 권 내지 못하다가 문단에서 잊혀져가게 되는 것이 예외 없는 현상인 것처럼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조금 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그런 식의 성마른 일반화를 강변하지 않고도 자기 본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반론을 승인한다고 해서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최 시인 자신의 경험 여부를 떠나서 그런 사례가 다만 몇 건이라도 실재해 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문단이라는 곳의 불건강성은 ‘일반적으로’ 추론되기에 충분하며, ‘여성문인’들이 문학을 업으로 하여 먹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명망가인 최영미가 저러할 진대 나머지 수많은 작고 기댈 곳 없는 영혼들의 운명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나 같은 ‘꽃길만 걸어온’ 언필칭 엘리뜨 남성 문인은 죽어도 알기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없다.
 - 모든 권력구조는 원래 하부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 의해서만 지속가능한 것인즉, 확실히 이젠 변화가 오기는 올 모양이다.

-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여전히 그 En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 쪽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비록 노벨상을 향한 오랜 갈구가 이젠 좀 근천스러워 보이고, 엄청난 다작이면서도 한국문학사를 너끈히 관통할만한 단 한 편의 절창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해도, <피안감성>에서 <새벽길>을 거쳐 <만인보>에 이르는 그의 시적 여정 한 땀 한 땀을 늘 아끼고 좋아해 왔으며, 무엇보다 70~80년대의 헌신적 투쟁 과정 속에서 만난 그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 그가 젊고 예쁜 여성들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이쁘다느니 어떻다느니 희롱하고 또 이리 와봐라 저리 가봐라 하면서 손을 잡고 더듬고 하는 일은 나처럼 이런저런 행사에 잘 끼지 않는 사람도 직접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아마 본인은 다 기억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전설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파다한 문단의 일상 같은 일이었다. 산에 가면 나무가 있고, 강에 가면 물이 있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나 할까? 근래에는 나로서는 접할 기회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20년 전까지는 그런 세상이었다. 문단이건 다른 문화예술판이건 젠더감수성, 일상적 인권감수성은 거의 제로라서 어딜 가든 크고 작은 En선생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를 둘러싼 전설이 그처럼 파다했다는 것,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사실에서 의외로 그를 옹호해 줄만한 작은 언턱거리가 찾아질 수도 있겠다. 그의 인생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마는 내 기억에 그에 관한 소문은 늘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모두에게 공개된 술자리가 진원지였다.
- 당사자에게는 그런 자리에서 공개리에 희롱을 당하고 추행을 당하는 것이 정말로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이었겠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지속적일 수는 없다는 뜻도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습한 곳에서 일어나는 추악한 성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대비해 본다면 그의 ‘파다한 행각’은 상대적으로 매우 양명(?)한 것이고 일회적인 것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말하는 김에 또 하나,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가 무슨 주요 문학잡지의 편집위원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맡은 적이 없다. 그의 문단 내외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기본적으로 강약이 부동한 상황에서 발생하므로 원천적으로 권력관계의 소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이를테면 등단이라거나 발표지면 등을 미끼로 여성들을 괴롭혔다는 소문은 들은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최영미시인의 인터뷰가 마치 그 En선생이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여성문인들의 문단활동을 좌우한 것처럼 비쳐진 것은 조금 유감스럽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그런 뒤끝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나에게 자기 주례선생님을 능멸하는 패륜아라고 할지도 모르고, 반대로 오랫동안 문단출입을 안 하더니 눈과 귀가 어두워 순진한 소리만 늘어놓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로서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변명 같지 않은 변명,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열거할수록 사실 기름불에 물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이런 구구한 말 몇 백 마디를 늘어놓는다 해도 최영미시인 한 사람이 겪은 모멸감의 무게 단 일 그램과도 맞설 수는 없는 게 분명하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는 중이다.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다른 존재를 사물화하거나 타자화할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기존의 질서가 안온하고, 그대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자들만이 기존 질서 속에서 언어도 장소도 갖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존재들이 계속 침묵하기를, 견디기를, 이대로 배부른 노예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 어쩌면 En선생은 이 일로 ‘명예’에 흠집을 입고, 그렇지 않아도 미적거리기만 하는 노벨상 위원회에 상을 안 줘도 되는 좋은 구실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주제넘고 남의 인생을 두고 할 말은 아닌 줄 알지만, 어차피 제국과 그 주변에서 돌아가며 타 먹는 노벨상 따위 못 받으면 어떤가.
 - 당사자는 좀 억울하고, 이른바 ‘죄질’도 진짜 어둠 속 독버섯 같은 악질들에 비해서는 범속한 수준일 수도 있지만, 차제에 인생 후반에 맞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스스로 꿈에라도 악행이라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해 평생을 치욕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열하게 깨닫는 것으로부터 다시 만년의 문학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도 큰 다행 아닐까. 처음부터 아무 것 없이 탁발로 표표하게 시작한 삶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단의 명망가인 K 교수의 글에 달린 댓글 120여개의 대부분은 K교수의 글을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En을 비호하는 K교수를 ‘공동정범’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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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jtbc 뉴스룸 캡쳐본

 En을 옹호하여 화제가 된 도 하나의 글은 시인 L씨. 그도 7일 페이스북에 최 시인을 비난하는 글을 포스팅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JTBC 손석희ㅡ최영미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수가 있나" 하며, 통탄하고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

- 최영미의 그런 발언에 대해 절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그녀의 가해자가 된듯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 왜 그녀가 이 시점에서 자기 체험을 일반화해서 문단 전체에 만연한 이야기로 침소봉대해 쏟아내는지 조금 의아했다.
- 지난번 호텔 집필실 사건이 터졌을 때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옹호했었다. 시인도 인간이기에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하긴 그녀는 손석희와 인터뷰 때 추악한 문단을 떠난지 오래였다고 했다. 허나 그 오랜 기억이 문단의 현재적 풍토인양 뉴스화됐다.
- 최영미 시인, 그녀는 선병질적으로 튀는 성격이었다. 매우 완강한 자존의 소유자였고, 어찌 보면 유아독존적 처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시에 대해 추호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어찌보면 창비와 언론이 만들어낸 <최영미 현상>이 불러온 결과였기에 그녀의 무례함에 대해 누구도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 그즈음 이 땅의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그녀의 시 구절 ㅡ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는 말만이 오랫동안 술좌석에 회자되었을 뿐, 그때 우리는 그녀가 야기한 환멸의 미학에 얼마나 통탄스러워했던가.
- 1994년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서울 마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 합평회>가 열렸다. 그날 창비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는 표현은 서정주 시의 표절이었다)에 대해 수십명의 시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저자인 그녀는 물론 민영 시인 등 원로 문인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몇몇 시인들이 그녀 시에 대해 사소한 비판을 했는데, 그때 그녀는 좌중이 놀랄 정도로 난리 부르스를 쳤다. 숫제 안하무인이었다고 할까. 그 싸가지없던 악다구니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합평회란 시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오가는 게 상례건만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그녀는 피해의식으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 십여년 전인가? 그녀는 실천문학사에서 <돼지들에게>란 시집을 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왜 그녀는 그 시집에 등장한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일부러 만나 그런 사건을 만들어야 했는가. 어찌보면 난 그게 의문스러웠다.
그 시집을 읽고 이걸 팩트로 믿어야 하나, 물론 시적 장치이지만,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 최영미 발언이 용기 있다고 한다.
어허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
물론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 진행형하여 매도하는 건 조금 납득할 수 없다.
- 남자의 성적 욕망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리고 그 욕망의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또 얼마나 지속적이고 치유 불가능한가.
그걸 최영미 발언을 통해서 확인해본다.
- 난 미투가 두렵진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이십년, 삽십년 전 일로 미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본다. 타인의 불행이 더이상 나의 행복은 아니다.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시인 L의 글에는 무려 580여개의 댓글이 붙었다. 대부분 L시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내용들이다.
 평론가 K는 En의 ‘명예’에 흠집이 날까, 노벨상을 못받을까 걱정한다. L 시인도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하고 통탄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의 일부 반응을 살펴보면 그는 이미 바닷 속 깊이 침몰한 난파선 신세나 다름없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그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들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좌파 언론이라 하더라도 En에게 다시는 새해맞이 기념시를 부탁하거나, 앞날을 묻는 인터뷰를 기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저항시인이 젊은 대중의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처럼 속절없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세상에서 멀어져 가기도 쉽지 않을 듯 하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후반부에서 대중들에 대해 걱정한다.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하지만 최 시인의 이러한 걱정은 기우(杞憂), 즉 앞일에 대한 쓸데 없는 걱정이라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2-09 15:40   |  수정일 : 2018-02-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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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 2018-02-12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성욕이란게 무서운거라고? 그래서 Not me 가 못되니깐 Me too 라고?!!!
문준용효수  ( 2018-02-12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0
고은따위로 노벨상운운하는 조선인들이 더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심 뇌있냐 아무리 관제후보라도 최소한 뭐가 있어야 기대를하지 ㅅㅂ ㅋㅋㅋㅋㅋ 하멜은 옳았다
김주현  ( 2018-02-11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4
남자들이라면 특히, 권력을 가진 양반들이 술 좋아하고 여자좋아하는 것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금에사 성 추행이 사회적인 문제로 노출되니깐 흘러간 옛애기를 꺼집어 내고 인격적으로 사형선고를 하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특히 언론들이 고기가 물만난 듯 여론화 하는 것은 너무나 속보인다. 이미 성추행 문제가 패가망신 아닌 법적인 문제로 공식화 되고있다.
서석희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35 반대 : 2
En 님, 선글래스 끼고 마당만 배회할게 아니라 가장 최선의 방법은 정공법으로 1. 지금 즉시 2. 사실을 시인하고 3. 진실한 반성 4. 국민들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박신영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42 반대 : 2
성격 더러워서 성추행에 예민하게
문제 제기 한다는 건가?
전형적 물타기,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피해자가 문제라 그렇다고 몰아 가는 것...
이래서 여자들이 아무말 못하고 참고 있었던 거다.
이런식으로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거다.아무말 못하게 끔....
이동훈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41 반대 : 0
많은 말이 필요없다.En이라는 자는 성추행 했다면 사과하고 모함이라면 고발하라. 같은 류의 EN을 옹호하는 자는 그 근거를 명백히 밝히라.
조병율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57 반대 : 2
추한 늙은이를 옹호하는 자들의 실명을 밝히기 바란다!
자기들의 마누라,딸들이 당해도 너그러운지 시험해 봐야겠다.
장순길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45 반대 : 5
괴물에 대해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은 고은 시인의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공공연하게 만연하였다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고발 시인을 우상화하거나 사생활 또는 그동안의 작품 활동을 들추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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