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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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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들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 사진은 아래 내용과는 관계 없음
2018년 1월29일 나는 비행기와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고 있었다. 작은 항구도시마다 배가 도착하면 소박한 도시의 골목길들을 걸어다니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봤다. 푼타아레나스, 우수아이아, 스탠리, 푸에르토마르딘 등 모두가 평생 처음 보는 먼 나라의 낯선 도시들이다. 
  
  십여 년 전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간 소설가 정을병 씨와 한동안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는 죽음을 선고받은 후 남미에 있는 이스터섬을 가보고 싶어했다. 인간의 영혼이 지구별에 소풍을 와서 마지막으로 들르고 싶은 곳이 남미대륙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몬테비데오로 가는 배 안에서 몇몇 한국인 부부와 만났다. 거의 다 인생무대의 막이 내리고 텅빈 객석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떠나온 사람들 같았다. 퇴직을 한 고교 선생님 부부도 있고 정년을 맞이한 의대 교수도 있었다. 정신없이 사업을 하다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불쑥 태평양을 건너 남미대륙으로 왔다는 부부도 있었다. 백발의 아픈 아내와 함께 온 육십대 중반의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조금 시간을 앞당겨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어요. 배들이 오가는 부산 바닷가에 살다보니까 먼 바다를 오가는 배들을 보곤 했어요. 그 배들이 닿는 끝에 우리도 가고 싶은 꿈을 꾸었었죠. 점점 먹어가는 나이에서 그래도 지금이 가장 젊은 때 아니겠어요? 그래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미대륙을 선택한 거죠. 여기부터 시작해서 세계 일주를 하기로 작정한 겁니다. 이 다음은 일본 배를 타고 세계를 돌 겁니다. 저희는 이제야 자유인이 됐어요.”
  
  나는 공고(工高)에서 전기를 가르쳤다는 선생님 출신의 그가 과연 그런 노후의 경제력이 있을까 의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자식들에게 대학까지 교육비는 대 주겠지만 그 이후는 너희들이 스스로 살아가라고 일찍부터 말했습니다.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여행하는 건 아닙니다. 집을 담보로 한 역(逆)모기지로 여비를 만들어 이렇게 세상을 떠도는 거예요. 이렇게 살다가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자식들이 가지는 거고 없으면 못 가지는 거죠.”
  
  그의 말이 내 속으로 들어와 마음에 물결치는 것 같았다. 같이 여행을 하는 칠십대 부부는 배에서 나가 버스를 타고 푸에르토 마드린 뒤쪽의 초원으로 갔다고 했다. 작가 생텍쥐베리가 보아 뱀을 연상했다는 호수를 보고 왔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그는 다시 문학청년이 된 것 같았다. 의사 출신인 다른 부부의 인생고백도 들었다.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이라는 부인이 여행길에 오른 과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죠. 남편은 강원도 원주에서 30년 동안 의대 교수를 하다가 이제 정년퇴직을 하게 됐어요. 언제 세월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퇴직을 하고 우리 부부는 제주도로 갈 예정이예요. 거기서 남은 세월을 바닷가 의사로 보낼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소설의 한 장면 같은 평탄하고 행복한 부부 같았다. 내가 그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평생 의사로서의 삶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지난 40년 동안 그저 수술실에서만 살았어요. 레지던트 때 방광쪽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에 들어가면 열한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가고 앉아보지도 못하고 수술을 했어요. 집도하는 교수님은 더러 나가서 소변도 보고 잠시 쉬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죠. 지독한 고통이었어요. 그러다 교수가 됐는데 평생 방광에 있는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 왔죠. 요도를 통해 복강경을 집어넣어 주먹덩어리만하게 부풀어 오른 전립선을 깎는 데는 최고의 프로라고 생각해요.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하반신이 마비가 되기도 하고 성(性)기능이 없어지기도 하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지게 된 게 나의 인생이었습니다. 죽음 저편으로 가는 분들을 구했다는 게 제 인생의 보람이라면 보람입니다.”
  
  여러 종류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는 것도 여행의 묘미였다. 얼굴에 온통 수염이 덥수룩한 육십대 초반의 부부가 있었다. 서울에서 여러 개의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물질적으로는 꽤 성공한 사람 같았다.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이 오십까지는 정말 나라는 게 없었습니다. 일 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사업에만 매달렸습니다. 휴일도 없고 가족도 돌보지 않았죠. 그저 일에만 미쳐서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사업에도 성공하고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들어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돈에, 사업에 노예같이 매어서 사나 하는 회의가 드는 거예요. 어떻게 사는 게 바로 사는 것인지 모르고 이 나이까지 그저 달리기만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장실에서 뛰쳐나와 한 달 간의 남미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밤 나는 배의 선실에서 한밤중에 깨어났다. 밤하늘에는 맑고 투명한 별들이 가득히 떠 있었다. 수평선 위로 밝은 달이 떠서 바다 위를 비추고 있었다. 검게 번들거리는 바다위에 달빛이 긴 띠를 만들고 있었다. 그 달을 보면서 나는 기도했다.
  
  ‘이제는 내면의 깊은 곳에 계시는 그 분에게 모든 걸 맡깁니다. 가라는 곳으로 가고 하라는 일만 합니다. 쉬라고 하시면 침묵하고 쉬겠습니다.’
  
  내면에 있는 본질적인 존재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그분께 맡기라고 한다. 그게 영원과 자유를 얻는 길이라.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2-09 13:26   |  수정일 : 2018-02-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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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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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  ( 2018-02-10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이들은 더 늙기전에 이런 여행을 할수 있어서 성공한 사람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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