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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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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응원단이 묵호항에 왔다는데....

2002 아시안게임 개최지 부산 다대포에서 있었던 Love Story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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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평문학회 선정 “2003년을 대표하는 문제소설”
다대포에서 생긴 일
                                                             조 화 유
“한반도신문” 부산특파원 박진호 기자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응원단을 밀착 취재하라는 지시를 서울 본사로부터 받았다. 주로 여자들로 구성된 북쪽 응원단은 일부러 북한 당국이 예쁜 여자들만 골라서 보낸듯 하나같이 다 예뻤다. 그래서 그들은 아시안게임에 손님을 끌어드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남쪽 사람들은 북쪽 응원단이 북한이라는 이질적인 사회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호기심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 보다는 그들의 아름다움에 더 매료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입장권이 안 팔려 고민하던 아시아경기 조직위원회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북한 선수-임원-응원단의 부산 체재 비용을 전부 남측에서 부담한 것에 대해 북측 응원단은 충분히 보답을 하고있는 셈이었다.
남쪽 총각들은 북쪽 아가씨들을 “무공해 꽃미녀”라고 불렀다. 그 청초한 아름다움이 좋다는 것이다. 남쪽 기준으로 보면 화장은 좀 촌스럽게 했지만, 짙은 속눈섭을 단 것 외에는 얼굴이나 가슴에 칼을 댄 것 같지 않고, 또 입술 속에 콜라젠을 주입하거나 머리를 염색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남쪽 총각들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박진호 기자도 그런 총각들 중의 하나였다.
박진호가 자기 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을 쏜 북쪽 아가씨를 처음 발견한 것은 북한 응원단이 부산 다대포 항에 도착하는 것을 생중계하는 TV 화면에서였다. 그는 텔레비젼 화면에서 가지런한 이를 들어내놓고 환하게 웃는 한 아가씨를 보고 요즘말로 한 방에 뿅! 가벼렸다. 그녀가 다른 북한 아가씨들처럼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이 박진호의 마음에 더 들었다. 그녀의 눈은 쌍꺼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순진하고 아름다운 눈이었다. 숱 많은 까만 머리는 목덜미까지 내려와 있었고 머리칼 두 가닥이 하이얀 이마를 살짝 덮고 있었다. 정말 예뻤다. 물론 이름도 모르는 아가씨였다. 그는 일단 그녀에게 “이상형”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북한 응원단은 만경봉 92호라는 배를 타고 동해를 17시간이나 항해한 끝에 부산 다대포 항에 도착해 있었다. 박진호는 신문기자로서의 취재도 취재지만, 그 이상형 아가씨를 실제로 보기 위해 다대포항 여객선 선착장으로 자기 차 코란도를 몰고 갔다. 마침 선착장에서 열린 북한 응원단 환영식 행사가 끝나고 응원단 아가씨들이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운 색갈의 화사한 한복 차림이었다.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있을 환영 오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박진호는 TV에서 본 그 이상형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러 대의 버스 주위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버스 안을 드려다 보았다. 이상형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보이지 않는 걸까? 혹시 배멀미를 심하게 해서 배에 남아 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버스에 이르렀을 때, 운전기사 뒤쪽 세 번째 자리 창가에 앉아있는 이상형이 눈에 띄었다. 그는 첫 사랑 소년같이 가슴이 뛰었다. 그는 이상형이 앉은 자리 밑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이름이 뭐에요!”라고 소리 질렀다. 두꺼운 버스 유리창 때문에 이상형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박진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 멧시지로 “이름?”이라고 써서 버스 유리창에 가까이 갖다 대었다. 그제사 이상형은 버스 유리창에다 손가락으로 “한송이”라고 천천히 썼다.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라고 박진호가 재빨리 또 문자 멧시지를 써보였다. 한송이는 먼저 오른쪽 손가락 두 개, 다음에 왼쪽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이래서 박진호는 그의 이상형 아가씨 한송이가 스물 세 살의 꽃다운 나이임을 알았다. “나는 박진호”라고 그가 다시 문자 멧시지를 써보이는 순간 버스는 떠나가버렸다. ‘한송이가 내 이름을 보았을까?’ 그는 사라져가는 버스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일단 통성명은 끝난 셈이었다. 아쉬었지만 기분좋은 순간이었다. 그는 한송이도 자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했다. 자기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그는 제멋대로 단정해버렸다. 한송이는 몰라도 적어도 박진호에게 그것은 love at first sight(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박진호는 차를 몰고 해운대 그랜드호텔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부산시장이 주최하는 북한 응원단 환영오찬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PRESS라 쓴 태그를 양복 가슴에 달고 환영회 장소로 들어가 취재하면서 한송이를 찾았다. 그는 주황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송이를 이내 찾아내고 계속 그녀를 훔쳐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박진호가 웃어보이자 한송이도 따라 웃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금방 알아본 것이 기뻤다. 환영행사와 식사가 끝날 무렵 박진호는 한송이와 또 다른 한명의 북한 아가씨를 상대로 잠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한반도신문 기자 박진호입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학생들이라던데 맞습니까?” 박진호의 첫 질문에 “아닙니다. 우린 평양외국어대학 학생들입니다”라고 한송이가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전공이 무엇입니까?”
“영어입니다” 한송이가 말했다.
“그럼 영어들 잘 하시겠네요?”
“그저 좀 합니다.” 그녀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럼 쉐익스피어 작품들도 읽었겠군요?”
“쉐익스피어가 뭡니까? 우린 그런 거 모릅니다. 우리는 실용적인 영어만 배웁니다.”
“아, 그래요? 그럼 North Korea has nuclear weapons.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뭐, 이런 영어만 배운단 말입니까?”
박진호의 황당한 질문에 두 북한 아가씨는 서로의 얼굴만 바라본다.
“농담이었습니다. 남자 친구 있습니까?” 박진호가 또 뜻밖의 질문을 던지자 한송이는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그러자 옆의 아가씨가 “네,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주었다. 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여자의 손가락을 보면 알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박진호는 한송이의 손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반지가 없었다. 박진호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송이에게 확인 질문을 하고싶지 않았다. 혹시 있다고 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십여분 간의 간단한 인터뷰가 끝난 후, 박진호는 그들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한송이의 동료가 먼저 돌아서고 다음에 그녀가 돌아서 갈 때, 그는 “한송이씨!”하고 불러세웠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 명함에다 볼펜으로 “나는 한송이씨를 사랑합니다. 한송이씨는 이름 그대로 한 송이 꽃같이 아름답습니다”라고 써서 주었다. 그녀는 읽어보지도 않고 명함을 손아귀에 접어들고 돌아서 가버렸다.
다음 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북한 응원단이 경기 종목에 따라 이 경기장, 저 경기장 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박진호는 그들을 따라다니며 한송이를 만났다. 그러나 가까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반시민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을 보안요원들이 막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그녀들이 숙소인 만경봉호로부터 내려와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러 갈 때만은 기자들이 접근해서 그들에게 한 두마디씩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이 때마다 박진호는 한송이 손에 쪽지를 쥐어주었다. 매일 건네주는 쪽지에는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네 번째 쪽지에는 “매일 밤 송이씨 생각에 밤잠을 설칩니다. 송이씨를 미칠듯이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그 네 번째 쪽지를 받은 다음 한송이는 처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물론 아침에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러 가면서 작게 접은 쪽지를 박진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 그에게서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평양시당 간부 아들이라는 29세 남자와 얼마 전 선을 본 일이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녀가 마음속에 그리던 남성상이 아니었다. ‘나도 멋있는 남자 만나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 한번 해보고 시집을 가도 갈 것이다’라고 그녀는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남조선 땅에서 경험할 줄이야! 훤칠한 키에 운동선수같이 잘 다져진 몸매, 서글서글한 미남형 얼굴 등 한송이는 박진호의 외모가 우선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대담하게 답장을 쓴 것이다. “저도 박진호 기자님이 좋습니다.”
북한 응원단을 항상 따라다니며 경호하는 보안요원들이 눈치를 채지 않게 쪽지를 거의 매일 교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 같이 휴대전화를 다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박진호는 쓸데없는 공상을 해본다. 그러면서도 이런 간첩 접선 같은 편지 교환에 짜릿한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쪽지 교환은 그럭저럭 가능했으나 단 둘이 만날 수는 없었다. 며칠 후면 아시안 게임도 끝이 나고 북쪽 사람들은 북으로 돌아갈텐데....박진호는 초조했다. 그래서 그는 열 한 번째 만나는 날 “우리 둘이 단둘이만 만나고 싶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쪽지에 써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밤에 일단 배로 돌아오면 다음날 아침에 경기장으로 나갈 때까지 배 안에 갇혀있습니다. 나갈 수가 없어요”라고 쪽지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아시안 게임이 끝나기 이틀 전 쪽지에서 한송이가 묘안을 제시했다. “내일 밤 내가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겠어요. 난 수영을 잘해요. 내일 밤 11시에 우리 배 선미(船尾)에서 100미터 정도 되는 지점 해안가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전조등을 두 번만 깜빡거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선착장과 반대되는 쪽으로 배에서 뛰어내려 선미를 돌아 진호씨 있는데로 헤엄쳐 가겠어요. 죄송하지만 제가 갈아입을 옷을 좀 준비 해주셔야겠어요.”
기발하고 대담한 아이디어였다. 한송이가 이런 모험을 결심한 것은 박진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박진호는 행복했다. 만경봉호는 다대포항 여객선 선착장에 아주 가까이 정박하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헤엄칠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또 선미 부분은 갑판에서 수면까지 거리도 그리 높지 않았다. 문제는 선원들이나 부산 해양경찰 순시선에 발각되지 않고 몰래 배에서 뛰어내려 해안가로 헤엄쳐 가는 것이었다.
다음 날 밤 10시 30분쯤 박진호는 만경봉호 선미가 바로 보이는 해안가로 갔다. 한송이가 말한대로 만경봉호 선미에서 100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전조등을 끈채 차 안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바로 그 시각, 한송이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에게 “속이 좀 메스꺼워 갑판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하고 운동복 차림으로 선실을 나왔다. 마침 중천에 반달이 떠있었으나 구름에 가려 너무 환하게 비추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팔뚝시계를 보았다. 11시 3분 전이었다. 그녀는 어스름한 달빛이 그림자를 만든 곳에 숨어서 해안 쪽을 바라보았다. 11시 정각이 되자 자동차 전조등이 두번 깜짝거리는게 보였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박진호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녀는 육지와 반대쪽 갑판으로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리고 난간 위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 순간 인기척이 났다. 그녀는 즉시 도로 다리를 내리고 선실 벽으로 사뿐히 걸어가 벽에 바짝 붙었다. 인기척을 낸 것은 선원 같았다. 그 선원은 피던 담배를 난간 위로 던지면서 퇴!하고 바다를 향해 침을 한번 뱉고는 선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난간을 넘기 전에 주의를 살폈다. 이따끔씩 지나가는 부산 해양경찰 순시정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단숨에 난간을 넘어 바다 위로 다이빙을 했다. 첨벙! 한때 학교 수영선수였던 그녀는 별로 큰 소리를 내지않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물 속에 잠겼던 그녀의 머리가 수면으로 떠오르자 부산해양 경찰 순시정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는 재빨리 물속으로 완전히 잠수, 순시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10월 중순의 남도 부산 다대포항의 물은 그리 차지 않았다. 순시정이 지나간 후 그녀는 만경봉호 선미를 돌아 인어같이 조용히 해안으로 헤엄쳐 갔다.
한송이가 해안으로 헤엄쳐오자 박진호는 물가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 차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옷이 흠뻑 젖은 그녀를 뒷좌석에 태우자 마자 시동을 걸고 일단 그곳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힐끔 리어뷰 미러를 보니 차 한 대가 따라오는게 보였다. 우연히 지나가는 차인지, 아니면 자기 차를 미행하는 차인지 몰라 불안했다. 그는 “송이씨, 우선 뒷좌석에 있는 그 옷으로 갈아입어요. 신발도 거기 있어요. 우린 일단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겠어요"라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한송이는 시키는대로 했다.
“거울로 뒤를 보면 안돼요." 그녀는 젖은 웃옷을 먼저 벗으며 말했다. “보려고 해도 어두워서 안보이니 걱정 말아요." 박진호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한송이는 먼저 젖은 운동복 상의와 브라자를 벗고 박진호가 미리 준비한 브라자와 여성 골프셔츠로 갈아입었다. 다음에 그녀는 운동복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팬티를 순식간에 갈아입고 그 위에 블루진 바지를 끼어입었다. 팬티를 벗을 때 그녀의 미끈한 하체가 순간적으로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었으나 박진호는 보지 못했다. 그가 전날 국제시장에 가서 산 블루진 바지와 골프셔츠, 그리고 팬티와 브라자는 대충 그녀의 몸매와 키를 말해주고 산 것들이었다.
“옷이 대충 맞아요?" 그가 묻자 “네. 맞아요. 맞춘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옷걸이가 좋은 사람은 원래 무슨 옷이나 다 잘 맞는 거라구요." 그가 웃으며 말하자
“옷걸이가 좋은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녀가 묻는다.
“아, 참, 북쪽에선 옷걸이란 말을 모르겠구만. 옷걸이는 몸매란 뜻이에요."
“아, 네에!"
“밤이라 쌀쌀하니 거기 내 점퍼를 걸쳐요. 점퍼란 말도 모르겠구만. 거기 내가 벗어 놓은 웃옷이라도 걸치고 있어요."
“고마워요, 박기자님."
“박기자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진호씨라고 불러요, 송이씨."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되고 말구요. 난 기자로서 송이씨를 만나는게 아니잖아요."
한편 만경봉호 위에선 난리가 났다. 11시 30분 취침 시각 점호 때 한송이의 룸메이트는 북한응원단 단장에게 한송이의 실종을 신고했다. 그녀가 겁먹은 표정으로 “송이 동무가 속이 메스껍다 면서 갑판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고 나갔습니다”라고 말하자 단장은 “기래? 기럼, 어두워서 발을 헛디뎌 바닷물에 빠진 거이가?” 했다. “밖에 달이 있으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실족을 해서 바다에 빠졌더라도 송이 동무는 헤엄쳐 나왔을 겁니다. 송이 동무는 수영을 잘 합니다”라고 룸메이트가 말했다. “기래? 기럼 그 에미나이가 어디로 갔단 말이가? 땅으로 꺼졌단 말이가, 하늘로 솟았단 말이가!“ 응원단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서 한송이의 룸메이트에게 “이 일에 대해서 동무한테도 책임이 있어! 같은 방에 있는 동무의 동정을 잘 살펴야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누구한테도 절대로 말하지 말라우, 알갔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당장 큰일 나는 건 단장 자신이다. 단원들을 잘 챙기지 못한 엄중한 문책을 당할 게 뻔하다....
응원단장과 부단장, 그리고 만경봉호 선장은 선장실에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한송이, 이 에미나이가 수영을 잘 한다니까 물에 빠져 죽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가? 이거야, 큰일 나지 않았소? 남조선 경찰에 신고를 할까?”하고 단장이 말하자 부단장은 “안됩니다, 기건. 우리끼리 조용히 해결해야디요, 한송이가 누굽니까? 인민군 상장(중장)의 딸 아닙니까? 기런 아이가 남조선에서 사라졌다고 남조선 신문 방송이 떠들어대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습니다!”라고 비공개를 강력히 주장했다.
“부단장 동지 말씀이 옳습니다.” 선장이 거들자 단장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우리가 어떻게 조용히 해결한단 말이요? 이 넓은 부산에서 그 에미나이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찾는단 말이요? 이거야. 정 죽갔구만!”하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켰다. 그런데 라이터가 불을 붙이지 못하자 단장은 “공화국에선 라이타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나, 젠장!”하고 화를 냈다. 그러자 옆에 섰던 선장이 일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이 무렵 박진호의 코란도는 다대포 지역을 벗어나 해운대 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다행히 뒤따라오던 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미행하는 차는 아닌 모양이었다.
“송이씨, 생각보다 대담하군요. 그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박진호가 거울에 비치는 한송이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자 그녀는 “두 주일 동안이나 경기장과 배 사이만 왔다 갔다 하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밤 11시가 넘은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별로 없어서 박진호의 코란도는 거침없이 신나게 달렸다.
한참을 달린 후 코란도가 멎은 곳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 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노래방 “파도” 앞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박진호는 노래방 입구 밝은 불빛 아래서 처음으로 한송이의 전신을 자세히 바라다보았다.
“옷이 대충 맞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송이씨. 그걸 입으니까 몸매가 훨씬 더 예뻐요. 북에서도 블루진 입나요?” 그가 말하자, “이런 옷은 없어요. 러시아 영화에서만 보았을 뿐이야요”라고 그녀가 대꾸했다. 박진호는 자기의 오른 팔을 한송이의 오른쪽 어깨에 가볍게 올려놓고 왼손으로 노래방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한송이는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바닷물에 젖었다 마른 머리를 다시 깨끗이 수돗물로 씻고 그곳에 비치되어있는 헤어 드라이어로 말린 다음 빗으로 단정히 빗었다. 그리고 나서 룸으로 들어가자 단골 손님인 박진호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주인 겸 마담이 “어서 오세요. 박기자님이 오늘은 대단한 미인과 함께 오셨네요” 한다. 그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정한 칭찬이었다. 그러고 보니, 화장을 하지 않은 한송이는 더 아름다워 보였다. 화장품의 가면을 벗어 던진 그녀의 피부는 더 하얗고, 그녀의 볼은 연지 바른 것 보다 더 볼그레했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쁜 여자가 진짜로 아름다운 여자라고 박진호는 항상 생각해 왔었는데, 한송이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수인사가 끝난 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담은 “말투로 보아 북쪽 사람 같은데, 옷차림을 보면 북한 응원단 아가씨는 아닌 것 같고, 그럼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가씬가?” 한다. 박진호는 뜨끔했으나 “맞아요. 조선족 아가씨에요”라고 받아 넘겼다. 그리고 “우리 국산 와인 한병 하고 마른 안주 좀 갖다 줘요” 했다. 와인과 안주가 들어오고 두 사람만이 룸에 남게되었을 때 둘은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박진호가 먼저 “조국 통일을 위하여!”라고 외치자 한송이도 따라 외쳤다. 첫날 인터뷰할 때를 빼놓고는 매일 아침 선착장에서 잠깐씩 인사말만 나누었을 뿐이지만, 여러 차례 쪽지 편지 교환으로 대화를 나눈 그들은 이미 오래 사귄 연인같이 전혀 서먹하지가 않았다. 박진호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신문 스크랩을 한송이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가 그랜드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한 기사와 칼라사진이었다.
“이 사진 마음에 들어요?”
“네, 실물보다 더 예쁘게 잘 찍어주었네요.”
“내 눈엔 실물이 훨씬 더 예쁜데요, 뭘. 이 사진을 보고 반한 부산 총각들이 청혼을 하겠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신문사로 전화를 많이 걸어왔어요.”
“그래요? 영광입니다.”
남쪽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모두 “합네다” “합세다”식으로 말하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등교육을 받은 북한 사람들 특히 평양 사람들은 억양만 평안도 식이지 말 자체는 남쪽의 표준말과 다름없이 “합니다” “합시다”식으로 말한다. 한송이의 말도 그러했다.
“북쪽에도 노래방 같은게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네, 평양의 호텔에 외국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가라오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송이씨도 노래방 출입이 오늘 처음인가요.”
“네.”
“그럼 오늘 싫도록 노래를 불러요. ‘휘파람’ 그 노래 좋던데 한번 불러봐요. 그 노래가 남쪽에서도 한때 인기였어요. 그래서 노래방 기계에서 반주가 나옵니다. 자. 내가 반주가 나오게 해줄테니 이 마이크를 잡고 송이씬 노래만 부르면 돼요.”
“내 목소리가 썩 좋지는 않지만 해 보겠습니다.” 한송이는 내숭떨지 않고 마이크를 받아 반주에 맞춰 ‘휘파람’을 불었다. 노래 점수는 95점이 나왔다.
“대단한 실력이네요, 송이씨. 자, 그럼 북쪽 대표 한송이에 도전하는 남쪽 대표 박진호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는 ‘사랑을 위하여’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불렀는데도 점수는 75점이 나왔다. “이 기계 고장이로군!” 박진호가 웃으며 말하자 한송이도 따라 웃으며 “노랫말이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간간이 와인을 마셔가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봄의 교향악” “찔레꽃” “아침 이슬” “반달” “고향의 봄” “성불사의 밤” 등 남과 북에서 공통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거의 다 불렀다. 더 같이 부를 노래가 생각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박진호는 이번엔 한송이를 데리고 아시아경기 선수촌 안에 있는 디스코텍으로 갔다. 아시안게임 참가국 선수들이 매일 밤 스트레스를 풀며 즐기는 곳이다. 홀에는 번쩍번쩍 조명등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고막을 찢을듯한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누렇고, 검고, 거무틱틱한 남녀 얼굴들이 신들린 것처럼 몸을 흔든다.
“선수촌 안에 이런게 있는지 몰랐어요.” 한송이의 말에 박진호는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 44개국 중 유독 북한 선수들만 이 디스코텍에서 볼 수 없어요”라고 대꾸했다. 두 사람은 금방 각국 젊은이들 틈에 끼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송이는 빠른 템포의 디스코 춤이 처음엔 좀 서툴렀으나 곧 따라했다.
그 때 북쪽 보안요원인 듯한 두 명의 남자가 디스코텍 안을 유심히 살핀다. 그러나 명멸하는 조명등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디스코 곡이 끝난 후 조용한 블루스곡이 나온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손과 허리를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송이가 춤을 잘 추는 것에 놀라며 박진호는 “송이씨, 춤 잘 추는데요?”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학에서 단체로 하는 사교춤 정도는 가르쳐줘요”라고 말했다. 춤추는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조명등도 느리게 움직이자 수상한 두 사나이는 기회다 싶은지 춤추는 여자들의 얼굴을 더 자세히 살핀다, 이를 눈치챈 박진호는 한송이에게 “좀 수상한 자가 있으니 얼굴을 내 가슴에 묻어요”라고 속삭인다. 그녀는 시키는대로 한다. 두 사람은 이제 두 팔로 완전히 서로의 허리를 껴안고 아주 느리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북쪽의 보안요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그곳에서 나간다.
얼마 후 박진호와 한송이도 디스코텍을 나와 코란도에 다시 탔다. 그때 아까 그 두 사나이가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마침 그곳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잡아탄다. 미행임을 직감한 박진호는 악셀을 힘차게 밟는다. 곧 경부고속도로 진입로가 나타난다.
택시를 탄 두 명 중 하나가 기사에게 무심결에 “운전수 동무....”하려다가 가까스로 “무”자는 겨우 들리지 않게 얼버무리고 다시 “운전수 양반, 저 앞차를 날래 따라갑시다!”라고 말했다. 기사는 “예, 손님”이라고 대답하고 리어뷰 미러로 뒤를 힐끗 살핀다. 얼굴이 거무스럼하게 탄 건장한 두 사나이가 초조한 표정으로 앞차를 응시하고 있는 게 보인다. 운전기사란 호칭 대신 운전수 양반이라고 부른 것과 “날래(빨리) 따라갑시다”라고 한 말, 그리고 TV드라마에서 들어본 이북식 억양을 쓴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이들은 아시아 경기에 참가하러 온 북한 선수들인가보다 생각하고 택시 기사는 “북한에서 온 선수들 맞지예?”하고 말을 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 차를 놓치면 안되오! 차비는 두배로 낼터이니까니 저 차를 놓치지 마시라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따블 요금을 주겠다는 말에 신이 난 기사는 “알았심더!”하고 대답을 했지만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든다. 혹시 남쪽으로 귀순하려고 선수촌을 탈출한 북한 선수들이 자기들을 안내하는 차량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앞서 달리는 박진호는 뒤따라오는 택시가 틀림없이 자기들을 추격하는 북한 요원들이라고 단정하고 악셀을 더 세게 밟는다. 자정이 넘은 시각의 고속도로는 텅텅 비다시피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경찰차 한 대가 싸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두 대의 차량을 추격한다.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는지 교통경찰차는 무전으로 지원 차량을 부른다.
“과속 차량 2대 적발, 지원 요망. 오우버!”
곧 제2의 경찰차가 나타나자 제1 경찰차는 우선 가까운 위치의 택시를 추월하면서 마이크로 정지를 명령한다. 택시가 오른 쪽 갓길로 들어서서 서행하다가 멈춘다. 제1 경찰차가 그 택시를 처리하는 동안 제2 경찰차는 박진호의 코란도를 계속 추격한다. 제1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관이 택시 기사에게 “속도 위반입니다. 음주량 측정도 해봐야겠심더!!”라고 부산 사투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나 술 안마셨심더. 이 북한 선수들이 급하다꼬 빨리 가자 캐서...”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뭐. 북한 선수들?” 경찰관은 택시 안의 승객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리고 “북한 선수들 맞심니꺼?” 하고 묻는다.
“네, 기렇습니다.” 두 사나이 중 키가 큰 사나이가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대답한다. “우릴 선수촌으로 좀 데려다주시갔습니까?” 그들은 한송이 추격을 포기한 듯 했다. 남쪽 경찰이 이 사실을 알게될까 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선수촌으로요? 알겠심더. 기사 양반, 교통법규 위반은 눈깜아줄낀께 이 북한 선수들을 선수촌까지 좀 데불다 주소. 알겠십니꺼?” 교통경찰관이 말하자 기사는 “예, 고맙심더”하고 절을 꾸뻑하고 시동을 건다. 경찰이 딱지를 떼지 않은 것이 황송할 뿐이다.
한편 박진호의 코란도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복잡한 상가로 들어가 경찰차를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그는 한송이를 데리고 어느 24시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점포 안에 가득찬 물건의 풍요함과 다양함에 크게 놀라는 눈치다.
“송이씨, 우리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을까? 경찰차 따돌리느라고 신경 좀 썼더니 목이 마르군.”
“아이스크림요? 어름보숭이 말입니까?” 그녀가 말하자 그는 “맞아, 어름보숭이”하고 웃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편의점을 나온 그들은 다시 고속도로 위로 올라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경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송이, 이게 경부고속도로이고 우린 지금 북쪽으로 달리고 있어. 우리 이대로 서울까지 달릴까?” 박진호는 한송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한다. “송이씨”가 어느새 “송이”가 되어 있었고 말투도 친근한 반말투로 바뀌었다.
“그러자구요!” 한송이도 웃으면서 말한다. 노래방에서 조금씩 홀짝홀짝 마신 와인이 그녀를 적당히 기분좋게 만들었다.
“아니, 서울까지만 갈게 아니라 평양까지 가서 송이네 집에 데려다 주고 올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속도로 달리면 서울까지 4시간 반, 서울서 평양까지 2시간 반, 7시간이면 평양까지 갈 수 있어. 이렇게 작은 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다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어!”
“맞아요, 이건 비극이에요!”
“자, 우리 노래나 부르자!” 이렇게 말하고 박진호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창하자 한송이도 따라 부른다. 그리고 다음은 봉선화, 고향의 봄.....
하늘에 반달이 떠있어 어둡지 않은 경부 고속도로를 상쾌하게 질주하는 코란도는 경주 인터체인지 근처에서 U턴해서 다시 남쪽으로 향한다.
박진호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한송이의 손을 잡고 백사장을 걸었다. 바다 위에 새로 건설되어 부산의 골든 게이트 브릿지(금문교)가 된 광안대교는 휘황찬란한 조명등으로 장식되어 더욱 아름다웠다. 해수욕장 백사장에서는 마침 아시아경기 부산 개최를 축하하는 심야 락 칸서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야성의 바닷가, 넘실거리는 청춘의 물결....혹은 손을 잡고, 혹은 허리를 껴안고, 혹은 가볍게 입을 맞추며 쌍쌍이 걸어가는 젊은 남녀들....남쪽의 젊은이들은 정말 자유분방하게 살고있구나, 한송이는 그들이 부러웠다.
백사장을 한동안 걷고나서 박진호는 한송이를 데리고 어느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한 테이블에 대학생들로 보이는 남녀 젊은이 세 쌍이 앉아서 소주잔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박진호와 한송이는 그들 옆 테이블에 앉았다.
“남쪽에서 개최되는 국제스포츠 경기대회에 처음으로 북한선수단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응원단까지 내려오고, 경의선과 동해안 철도, 그리고 도로 연결공사가 진행 중이고....이러다가 곧 통일 되는거 아니야?”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남학생이 말한다. 그의 티셔츠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가 쓰여있었다.
“야, 통일이 그렇게 빨리 될 수 있니?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데”하고 다른 남학생이 대꾸한다. 그는 Proud To Be a KOREAN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다. 지난 여름 서울 월드컵 때 한국 응원단이 많이 입었던 티셔츠의 Be the REDS!라는 구호가 “공산주의자가 되라!”는 뜻으로 외국인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해서 그 대안으로 나온 티셔츠 구호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이다.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다고? 누가 통일을 반대하는데?” 안경을 낀 세 번째 남학생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I'm MADE IN KOREA라는 좀 특이한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구호를 직역하면 “나는 한국제다”이니까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구호인 것 같다.
“우리 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은 우선 중국과 일본이지. 자기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에 통일된 민주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중국이 좋아할 리가 없고, 일본 역시 통일 된 한반도보다는 분단된 한반도를 더 좋아하겠지. 특히 일본은 한반도가 강력한 경제적 라이벌이 되는걸 원치 않을테니까 말이야.” 두 번째 학생이 말했다.
“물론 일본과 중국이 우리의 통일을 달가워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우리 민족 자체의 통일 의지가 강렬하면 주변국가들의 방해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안경 낀 학생이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근본적으로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 문제는, 남쪽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남북이 통일되기를 원하지만, 북쪽에서는 공산주의 체제로 한반도가 통일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야”라고 덧붙인다. 그러자 바로 그 옆에 앉은 여학생이,
“북쪽 사람들 모두가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 적화통일을 바라는 건 김정일 정권이지 북한 동포들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라고 아주 야무지게 말했다.
“맞아, 아주 좋은 지적이야.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 정권이 가장 큰 통일의 장애물이지.” 안경 낀 남학생이 그의 여자 친구인 듯한 여학생의 말에 동조했다. “김일성 정권의 대를 이은 김정일 정권은 절대로 남한과 같은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지 않을 거야. 민주주의 하면 자신들이 몰락할테니까 말이야.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이 50년 이상 누려온 그 좋은 절대독재권력을 남한식 선거를 통해 포기할 것 같애? 어림도 없지. 김정일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변신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통일은 아직 멀었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동감이야.” 여학생이 또 맞장구를 쳤다.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는 아주 똑똑해 보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과거 우리의 선배들은 군사독재 타도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는데 오늘 날 우리는 왜 김일성-김정일 세습 독재에는 그토록 관대한 거지? 왜 우리는 북한의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느냔 말이야. 우리는 김정일 독재정권과 북한 동포를 확실히 구별해야해.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김정일 독재정권이지, 2천3백만 북한 동포가 아니잖아! 핵무기 문제만 해도 그래. 핵무기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북한 동포들의 생존과 안녕에는 오히려 해가 될 뿐이야. 그러므로 김정일이 진정으로 북한 동포들을 위한다면, 제2의 고르바쵸프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고르바쵸프가 소련의 공산주의를 스스로 붕괴시켰듯이 김정일도 북한식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치형태와 시장경제를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남쪽 사회가 북쪽 사회보다 모든 면에서 반드시 우월한 것은 아닐지 몰라. 남쪽에도 나쁜 점, 부족한 점이 아직 많아. 그래도 나는 남쪽이 북쪽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해. 남쪽에선 최소한 국민들이 자유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그게 안되잖아. 국민들이 지도자를 선택할 수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고 희망이 없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김정일은 제2의 고르바쵸프가 되어야해. 그것만이 북한이 사는 길이며, 김정일 자신이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야!”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녀는 초, 중, 고교 때 웅변대회라도 나간 경험이 있는 학생 같이 말을 아주 잘했다.
“옳소!” 하고 좌중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자, 그런 의미에서 내 술 한잔 받아요!” ‘우리는 하나’ 티셔츠를 입은 남학생이 열변을 토한 여학생에게 소주잔을 내민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염색한 금발머리 여학생이 조금은 질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옆 테이블에서 이들의 토론을 지켜본 박진호도 그 여학생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는 한송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송이, 저 학생들 말 들었지? 어떻게 생각해?”하고 나즉히 물었다.
“난 정치는 잘 몰라요. 그저 우리 민족이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야요.” 그녀가 대답했다.
포장마차를 나온 두 사람은 정답게 손을 잡고 광안리 해변가 거리를 한동안 걸었다. 끝없이 늘어선 횟집들의 현란한 네온 간판들이 부산을 밤이 없는 도시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했다. 정치나 통일 문제 같은 것은 잠시 잊어버리자. 지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젊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으랴.....박진호는 한팔로 한송이의 허리를 껴안았고 그녀는 다소곳이 기대왔다.
새벽 네 시경, 두 사람은 다대포항 선착장 근처에 주차한 코란도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다. 한송이는 아직 덜 마른 원래 자기 옷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박진호의 점퍼를 걸치고 있다. 박진호는 한송이의 어깨를 한 손으로 껴안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송이,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글쎄요. 무슨 생각을 했어요?” 그녀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묻는다.
“먼 훗날 우리 나라가 통일이 되었을 때, 내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평양 관광을 하러 가서 대동강변을 거닐다가 저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걸어오는 송이를 만난다면 우리는 금방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래요?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금방 진호씨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그럴 것 같아.” 그도 그녀의 청순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 모습을 그들 뇌리의 필름 위에 영원히 새겨놓으려는 듯이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달빛과 가로등의 간접 조명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래. 송이를 붙잡고 북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거야.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모 형제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송이의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너무나 저주스러워 울고싶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진호씨.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에요.” 한송이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나도 송이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격렬하게 포옹하는 두 사람. 처음으로 입술이 부딪친다. 오랜 키스가 끝난 후 이윽고 그녀가 결심한듯 일어난다. 박진호가 차 문을 열고 먼저 나가고 한송이가 뒤따라 나와 바로 만경봉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뒤돌아보기라도 하면 마음이 변해 도로 박진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것만 같아 곧장 앞만 보고 걷는다. 박진호는 “송이, 돌아와!”하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이윽고 한송이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는 한동안 넋잃은 사람 마냥 차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음 날 박진호는 한송이와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샌 뒤라 하루 종일 집에서 낮잠을 자고 해질 무렵 아시아경기 메인 스타디움으로 갔다. 아시아경기 폐막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나온 북한 응원단에 한송이는 끼어있지 않았다. 이튿날 그는 마지막으로 다대포로 취재하러 나갔다. 차를 몰고 가는 도중 접촉사고가 난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막혀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가 다대포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북한응원단 환송식이 막 끝나고 울굿불굿 한복을 입은 북쪽 아가씨들이 만경봉호에 승선하고 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한송이를 찾았으나 이미 배 안으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아예 나오지를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벌을 받고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걱정이 되었다. 승선한 응원단은 배의 3개 층 갑판에 나란히 도열하고 손에 든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배웅나온 부산 시민 1천여명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역시 한반도기를 든 부산시민들이 “우리는...”하고 외치면 갑판 위의 아가씨들은 “하나!”하고 큰 소리로 화답한다. 또 선상에서 “조국...”하면, 선착장에선 “통일!”하고 화답한다. 부두에 있는 사람들도, 갑판 위의 아가씨들도 눈시울을 적신다. 서로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외친다.
오후 한시 정각, 뱃고동이 울리고 만경봉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진호는 카메라 망원렌즈를 통해 한송이를 열심히 찾았다. 이윽고 낯익은 그녀의 모습이 여객실 지붕 갑판 위에서 포착되었다. 오랜지색 한복을 입은 그녀는 손은 흔들지 않고 누군가를 찾는 시선으로 선착장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진호는 최대한으로 가깝게 망원렌즈를 당겨 보았다. 그러자 한송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그는 카메라를 내리고 두 손으로 메가폰을 만들어 입에 대고 “한송이! 사랑해!”하고 외쳤다. 그녀가 그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박진호의 눈도 젖기 시작한다.
부우우우웅.......
만경봉호가 다시 한번 뱃고동을 울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선착장을 다 떠난 뒤에도 박진호는 수평선너머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만경봉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떠날 줄을 모른다.
이튿날 오전 6시, 박진호 기자의 숙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박진호는 이른 아침에 웬 전화냐는 짜증스런 얼굴로 잠이 깨어 수화기를 든다.
“박진호씨!" 화가난듯한 남자 목소리가 느닷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네, 누구십니까?" 그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하자 상대방은
“나, 본사 사회부장이요" 한다.
“아, 네, 부장님. 이른 아침에 웬일이십니까?"
“우리 경쟁지 조간 봤어요?"
“아직 못 봤습니다만..."
“우리 경쟁지 부산특파원이 쓴 기사를 보면 어제 새벽 2시께 부산에서 ‘북한 선수 두 명이 선수촌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 위로 올라갔다가 택시가 과속 질주하는 바람에 교통 경찰에 걸려 선수촌으로 돌아갔다. 본인들은 길을 잃어 택시를 탔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좀 수상한 구석이 있다. 그들이 탔던 택시기사는 그들이 탈출, 귀순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우리 신문 부산특파원은 무엇하고 있었소?" 사회부장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박진호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박기자는 우리 신문이 우리 경쟁지와 얼마나 피나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있소?"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있는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기사를 빠뜨려도 되는 거요?"
“죄송합니다, 부장님."
한 시간 후 오전 7시, 평양의 조선중앙 텔레비젼은 아침 첫 뉴스 방영을 시작했다.
“남조선 부산에서 개최된 제14회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 공화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던 우리 응원단은 오늘 새벽 만경봉 92호를 타고 원산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남한 아나운서들보다 항상 한 옥타브 높은 북한 아나운서의 ‘멘트’에 이어 응원단장의 얼굴이 화면에 뜬다. 그는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우리 공화국 응원단 전원은 조그마한 사고 하나 없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끝>
Copyrightⓒ2003, 2018 by W.Y. Joh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2-07 16:33   |  수정일 : 2018-02-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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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 (曺和裕 / W.Y. JOH)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문학작품집 “이것이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다”를 냈고, 2010년엔 두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은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고, 이 소설을 직접 영어로 다시 쓴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는 amazon.com에서 eBook으로도 나왔다.

미주동포들을 위해 쓴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은 1990년대 조선일보사가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보급되었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각각 그 나라 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6~7년에는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씨이저” “왕자와 거지” 등 세계명작을 한영대역 만화로 재구성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워싱턴 교외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메일 johbook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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