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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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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 라면 가게를 하고 있는 한국인

"한국이 잘 살려면 젊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복작거리지 말고 세계로 계속 뻗어나가야 해요. 아이들 때부터 적어도 2개 국어 이상은 두뇌에 입력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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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무한도전에 방영되었던 푼타 아레나스의 윤서호씨가 운영하는 라면 가게.
  나는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의 스산한 거리를 걷고 있다.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2200킬로 떨어진 남극으로 가는 관문기지다. 남극을 돌아보는 경비행기를 탈 기회를 놓쳤다. 녹슨 양철지붕의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부서진 유리창을 갈지 않고 비닐과 테이프로 붙인 집들도 많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지나려면 남아메리카의 끝인 이곳을 배들이 통과해 지나갔다고 한다. 배들이 들어오지 않는 지금은 외로운 도시가 되었다. 남극 기지로 가는 연구원들이 잠시 묵어가는 곳이라고 했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광장의 벤치에 잠시 앉아 나그네의 발길을 쉬었다. 칼을 찬 마젤란의 동상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의 발 아래는 울상을 지은 인디언이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다. 남미는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와서 원주민을 살육한 피의 역사인 것 같다. 광장 모퉁이에서 원주민의 후손인 듯 보이는 남자가 대나무로 만든 남미 고유의 악기를 불고 있다. 슬픔이 밴 멜로디다.
  
  이 작은 도시에 작은 라면가게를 하면서 한국인 한 사람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국인 가족이 라면을 끓여 팔면서 산다고 했다. 잠시 쉰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몇 블럭 떨어진 건물 귀퉁이에 붙은 작은 라면집까지 걸어갔다. 작은 라면가게는 서너 명이 들어서면 돌아설 공간도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탁자와 의자를 놓을 공간도 없었다. 벽에 바를 매어놓고 그 앞에 네다섯 개의 스툴이 놓여 있었다.
  
  남미계의 여성 두 명이 앉아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책꽂이같이 생긴 찬장이 보였고 칸마다 한국산 라면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옆에 가스 테이블이 있고 냄비에서 김을 내며 라면이 끓고 있었다. 육십대 중반쯤의 남자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들어 올렸다 다시 국물에 담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숫발을 부드럽게 하는 자신의 노하우인 것 같아 보였다. 작고 당당한 몸매였다. 둥근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빛이었다. 검고 짙은 눈썹은 만만치 않은 그의 성격을 알리고 있었다. 라면을 주문했다. 땅 끝에 와서 사는 그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어떻게 이런 라면가게를 하게 됐어요?”
  내가 물었다.
  
  “여기 푼타아레나스에 나 혼자 사는데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더라구요.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 대화라도 해야 우리 말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래서 겸사겸사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부터 대한민국 남자면 라면은 혼자들 잘 끓여 먹었잖아요?”
  
  “그 말이 맞네요, 나도 음식을 만드는 다른 재주는 없어도 어려서부터 라면은 끓일 줄 알았어요. 아버지와 함께 처음 나온 라면을 끓이면 짭조롬한 노란 국물에 크고 자잘한 기름방울이 떠있었는데 말이죠.”
  
  그가 말을 계속했다.
  “한국에서 중앙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를 갖다가 제대한 후에 일찍 미국으로 이민 왔어요. 수산업을 하다가 흘러들어온 게 여기 푼타아레나스예요. 돈보다 그냥 외로워서 라면 가게를 차렸어요. 내가 마흔 다섯 살에 난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그 녀석이 중학교 3학년 때 이곳 푼타아레나스로 데려왔어요. 여기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녀석이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어느 날 아들 녀석의 공책을 보니까 한글로 스페인어를 가득 써 놓았더라구. 그걸 외워서 말을 배우는 거죠. 그렇게 공부해서 얼른 스페인어를 배우고 대학에도 무난하게 갔어요. 한국뉴스를 더러 보면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 모양인데 한국이 잘 살려면 젊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복작거리지 말고 세계로 계속 뻗어나가야 해요. 아이들 때부터 적어도 2개 국어 이상은 두뇌에 입력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극을 앞에 둔 이곳 땅끝에 와서 늙어가면서 깨달음이 있다면 뭐예요?”
  그는 나와 같은 세월을 살아온 비슷한 나이였다.
  
  “탐욕을 버리고 무심히 사는 거지 뭘. 인생 별게 있나 뭘?”
  
  그가 짧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많은 사연을 침묵 속에 감추어 두고 있는 것 같다. 법정스님은 혼자 산골의 오두막을 지어 평생 살면서 고독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았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좁은 집 안에서 붕붕거리며 사는 벌 같은 존재도 있다. 그들은 어깨를 마주하며 자기가 사는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 또 나비같이 혼자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존재도 있다. 사람도 그랬다. 오히려 그는 혼자 삶을 살아가는 외로운 늑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자리에서 일어설 때가 됐다. 다음 목적지인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란 작은 바닷가마을로 배가 떠날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배는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떠 있었다. 그가 메모지 한 장과 싸인펜을 가져다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간단하게 글 몇 자라도 적어줘요. 이 라면집 벽에 붙이게."
  나는 잠시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의 땅 끝 푼타아레나스에 와서 한 남자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는 그의 이름은 <윤 서 호>
  그는 깨달음을 라면에 넣어 먹는 사람의 영혼까지 배부르게 한다.’
  
  헤어질 때 그에게 허그를 하자고 했다. 그를 안고 손으로 등을 두드려 주었다. 헤어지는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러면 여기서 죽을 거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죽으면 재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2-07 09:47   |  수정일 : 2018-02-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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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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