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겨레의 성군’, 세종대왕 탄신지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현 종로 통인동, 옥인동 일대 탄생지 조성 필요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본문이미지
세종대왕 20대 후손 영해군 파종회 이주화 회장. 탄신지 복원을 위해 지역을 지키고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효자동일대를 걷는 사람들 발걸음이 총총,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간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자하문로를 따라 걷다 통인시장 못 미친 지점에 표지석이 하나 있다.
 
본문이미지
탄신지 표지석, 설치 기관 설명도 없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세종대왕 나신 곳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길가에 달랑 서있는 표지석의 내용이다. 겨레의 성군이라는 내용과는 달리 옹색하기 그지없다.
 
준수방이라 추정되는 통인동과 옥인동 일대를 탐방하였다. 동행은 세종대왕 20대 후손 영해군 파종회 이주화 회장과 광평대군 후손 이성진씨가 함께했다.
 
전봇대 등에 “세종마을”이라 쓰여 있고, 세종이야기 미술관, 세종마루(정자), 세종상회 등과 2017 세종마을 세종주간 축제 포스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역민들에게 ‘세종대왕 탄신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준수방 키친’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준수방은 주민들에게 기억의 장소로 여겨진다. 종로보건소와 군인 아파트를 지나니 “자수궁 터‘라는 표지석이 눈에 띤다.
 
본문이미지
자수궁의 터 표지석, 서울특별시 설치했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자수궁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1381~1398)이 살던 집이다. 문종 때 세종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으며, 자수원이라고도 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가 진행하는 <세종대왕 원각경 변상도>의 등장인물이 여기서도 나온다. 현재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각경 변상도(정식 명칭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이 20세에 요절하자 명복을 위해 조성하였다. 때는 1446년이다. 광평대군은 자수궁의 주인 무안대군 방번의 양자로 봉사손이 되었다.
 
‘겨레의 성군’, 세종대왕 탄신지 조성은 역사적 통증을 치유하는 일
 
세종대왕의 탄생지는 경복궁 같은 궁궐 아니냐고, 이주화 회장에게 물었다. 태조 6년에 탄생했음으로 당시는 태종의 집권시기가 아니므로 궁궐이 아닌 경복궁 인근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종의 탄생지가 통인시장 근처 <준수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동행한 이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했다.
 
그럼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의 탄신지가 보존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르렀는지 물었다.
 
이주화 회장은 일제강점기 경복궁 일대를 조선총독부가 해체, 훼손하면서 생가도 상업지구로 변경되었고, 그 후 정부나 후손, 지역주민 모두 무관심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민들을 중심으로 <세종마을 가꾸기회>가 구성되고 마을축제 등이 열리면서 생가 복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후손들과 주민들의 노력 때문일까. 서울시는 종로보건소 맞은편에 건물들을 인수하여 <세종마을 한옥체험관 상촌재>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일제강점기 ‘조선’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은 악랄하였다. 곡물, 자원의 수탈은 물론 말과 글, 이름을 빼앗고 조선사편수회 등을 앞세워 역사를 왜곡, 부정하였다. 조선 역사의 상징인 경복궁 전각을 해체하여 일본 기업 등에 팔아치우고,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박문사 등을 건립하는 데 궁궐을 뜯어 사용하였다. 이런 만행의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화유산이 강탈당하고 훼손, 왜곡되었음에도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이제라도 위대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나아가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찾아 본래 자리에 돌려주는 일은 ‘이야기 풍년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백범의 <문화강국론>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본문이미지
세종마을 주민들의 세종주간 축제 포스터

동 시대를 산 세종대왕과 구텐베르크, 그 유산의 이야기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2005년 유엔이 공식 파악한 지구상 언어는 6,800여개라 한다. 국가의 수보다 언어가 더 많은 이유는 국가 안에도 다양한 언어를 쓰는 부족 등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
 
이 중에 글자를 만든 사람이 명확한 사례는 1446년 창제된 한글이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1974년 제정되었다.
 
구텐베르크는 1455년에 우려곡절을 겪은 끝에 서양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 이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독일의 마인츠에 있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는 독일을 넘어 서양 문명의 자랑이다. 그 이유 중에는 성경을 인쇄, 보급하였다는 점이다. 인본(人本)보다는 멀리 있다.
 
반면 세종의 한글은 오직 애민(愛民)과 주체성, 실용적 합리성에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가 문명 퇴치상을 제정하여 널리 선양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만 그 가치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나 자문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때, 일제강점기 훼손당한 생가를 아직까지 복원, 보전하지 못하는 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이런 이유로 이주화 회장은 생가 복원과 함께 한글기념관의 건립이 필요하다 강조한다. 여건이 허락되면 통인동과 옥인동 일대의 세종 마을을 <세종과 한글의 이야기 마을>로 조성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본문이미지
구텐베르크 동상 모습 사진 캡처, 영화 직지코드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01-05 09:33   |  수정일 : 2018-01-05 10:02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