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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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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41)]
우리를 오랑캐의 후손으로 가르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글 |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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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제1차 경찰직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는 아래와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다.
 
02. 다음 고조선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위만은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
    ② <동국통감>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③ 기원전 194년 위만은 우거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④ 위만조선은 한의 침략에 맞서 1차 접전(패수)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고조선에 대한 설명 중 잘못된 지문을 고르라는 문제로 정답은 ③번이다. 위만이 몰아낸 왕은 우거왕이 아닌 준왕(準王)이기 때문이다. 정답과 상관없이 수험생들을 혼란스럽게 한 지문은 ①번이다. 위만이 고조선의 계통임을 알 수 있는 근거로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는 서술 때문이다. 특히 ‘오랑캐의 복장’이라는 표현이 문제다. 이와 관련한 교과서의 서술은 아래와 같다.
 
교학사
위만은 입국 당시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던 점, 왕이 된 뒤에도 국호를 유지한 점, 토착민 출신이 높은 관직에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연 지역에 살았던 고조선 계통의 주민이었다고 볼 수 있다.(21)
천재교육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 상투를 하고 고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고조선과 같은 계통으로 짐작된다.(16)
동아출판
중국 문헌에는 위만이 중국 연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망명할 때 상투를 틀고 오랑캐 복장을 한 점을 들어 연 지역에 살던 고조선 계통의 인물로 보기도 한다.(19)

위 문제와 관련한 서술이 8종 교과서 중 세 교과서에 언급되어 있으나 ‘오랑캐 복장’이라 한 서술은 동아출판이 유일하다. 아마도 이 교과서로 공부한 수험생은 상당히 유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조선인의 옷’, ‘고조선인의 옷’이라 서술한 두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인의 옷과 조선인의 옷이 오랑캐의 옷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조선은 고조선과 동의어이다. 나머지 5종 교과서에는 아예 언급이 없으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정보조차 없다. 우리 한국사 교과서는 이렇게 불공평하다.
 
아무튼 우리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의 준왕(準王)을 축출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위만(衛滿)과 그 무리에 대해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는 서술을 근거로 고조선을 계승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 기록은 『삼국지(三國志)』를 비롯한 몇몇 중국 역사서에 나타난다.
 
연인 위만이 상투를 틀고 이복(夷服)을 입고 와서 왕이 되었다.
燕人衛滿魋結夷服復來王之
(『삼국지』, 「위서, 동이전」)
 
교과서의 ‘오랑캐 복장’은 바로 이 사료의 ‘이복(夷服)’을 풀이한 것으로 이것이 고조선인의 옷으로 바뀌었다. 이는 아마도 이(夷)를 동이(東夷)와 동일시하고 동이는 곧 한민족이며 고조선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말한 夷(이)가 곧 고조선이며 한민족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복(夷服)과 같은 맥락의 글은 아래 사료에서도 보인다.   
 
무리를 지은 천여 사람이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 옷’을 입고 동으로 갔다.
<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 - 『史記』, 「朝鮮列傳」>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이복(夷服)이나 만이복(蠻夷服)을 모두 ‘오랑캐 복장’으로 풀이하고 이를 위만과 그 무리가 ‘조선인’ 계통이라는 근거로 삼고 있다. 이 사료에 근거하여 백과사전에서도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한편 위만이 연에서 들어올 때 ‘상투를 틀고 조선 옷을 입었다(魋結蠻夷服)’고 묘사되어 있고, 또 국호를 그대로 조선이라 한 것으로 보아 위만은 조선인 계통의 자손으로 보인다.<위만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앞서 『삼국지』에는 이(夷)만 기록되어 있으나 이 자료에는 만이(蠻夷)라 하여 만(蠻)과 이(夷)를 동시에 들고 있다. 이(夷)를 고조선이라 한 것도 무리한 연결인데 만이(蠻夷)를 ‘고조선’이라 한 것은 더욱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夷)나 만이(蠻夷)는 중국이 변방의 이민족을 비하하여 일컫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흔히 남만(南蠻), 북적(北狄), 동이(東夷), 서융(西戎)과 같이 일컫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夷)는 동쪽의 이민족을, 만이(蠻夷)는 남쪽과 동쪽의 이민족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의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인 『이아(爾雅)』에는 “구이(九夷)·팔적(八狄)·칠융(七戎)·육만(六蠻)을 사해(四海)라 한다.”고 하였으며, 이에 대해 손염(孫炎)은 “海(해)란 晦(회:어둡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예의에 어두운 것이다.(海之言晦, 晦闇於禮義也)”고 풀이하였다. 동쪽에는 아홉 개의 이(夷), 북쪽에는 여덟 개의 적(狄), 서쪽에는 일곱 개의 융(戎), 남쪽에는 여섯 개의 만(蠻)이 바로 『이아』에서 말하는 사해(四海)다. 삼면이 육지와 접해 있으면서 바다라고는 동해 밖에 없는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해(四海)라는 용어는 실상 사회(四晦:네 개의 어두운 족속), 곧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을 일컫는 말이다. 사해(四海)는 본래 사회(四晦)였으나 회(晦)자가 음과 자형(字形)이 익숙한 해(海)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해(四海)는 곧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예의를 모르는 미개한 족속’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다.
 
또, 우리는 흔히 이(夷)나 만(蠻)과 같은 글자를 ‘오랑캐 이’, ‘오랑캐 만’이라 풀이하며 오랑캐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이 ‘오랑캐[兀良哈]’라는 용어는 실상 조선 초기 ‘두만강 일대의 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멸시하여 이르던 말’에 어원을 둔 것으로 이후 이민족을 낮잡아 부를 때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부정적 의미의 이(夷)와 만이(蠻夷)는 다음 사료에서는 다시 호(胡:오랑캐 호)로 바뀌어 등장한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準)에게 항복하였다.
燕人衛滿亡命, 爲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위만의 망명과 관련한 동일한 내용의 기사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이때의 호복(胡服)도 역시 ‘오랑캐의 복장’이라고 번역하였다. 앞서 이복(夷服)과 만이복(蠻夷服)을 고조선인의 옷이라 하였으니 이 글의 호복(胡服)도 마찬가지 고조선인의 옷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중국의 역사서는 위만에 대해 이복(夷服)과 만이복(蠻夷服), 그리고 호복(胡服)을 입은 미개한 인물로 묘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미개한 인물 묘사에 동원된 만(蠻)‧이(夷)‧호(胡)를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여 고조선과 동일시함으로써 은연중 미개한 족속임을 자처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예전의 국정 국사 교과서에도 수록하여 가르쳤고, 지금도 몇몇 교과서에 수록하여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뜻도 내용도 모르고 교과서에 있으니 당연히 옳은 역사라 여기고 시험에 대비해 밑줄 그으며 외우기에 바쁘다. 그러한 가운데 시나브로 우리는 미개한 족속의 후손임을 뇌리(腦裏) 깊이 새기고 있는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1-14 14:02   |  수정일 : 2017-11-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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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학사/석사/박사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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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타  ( 2017-11-19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이나라에는 김병현박사 말고 한국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없나? 어찌해서 이런 중요한 역사적사실을 언급하는데도 동참하는 인간들이 한마리도 없을까? 오랑케 후손들이 맞나보지?
윤태호  ( 2017-11-15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
중국은 현대에 기록하는 역사도 수정하는데 그 기원은 고대에 기록하던 역사도 수정해왔던데 있습니다. 우리의 고대 사서들은 일본에 의해 분서 폐기됐고 일부가 일왕궁도서관 등에 있는걸로 보여집니다. 수탈 징용병 위안부보다 더한 행위입니다. 전국 산맥 줄기마다 철주를 꽂는 것과 한 맥락의 민족의 정기 영혼을 없애기 위한 일환이고 우리는 고대사를 잃고 타국의 수정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왜곡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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