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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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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예뻐진다는 소망에 전족을 한 청나라 여인처럼 사는게 아닐까?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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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족 / 영국 노샘프턴 박물관 제공
 아침신문이 상큼한 파란색의 삽화와 함께 맑은 얘기 한 토막을 전하고 있다. 제주에서 삼백평 감귤 밭 가운데 9평짜리 오두막을 지어놓고 사는 사십대 초의 남자에 대한 얘기다. 스위스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딴 그는 음악을 좋아해서 전업 뮤지션이 됐고 바다가 좋아 섬으로 가서 작게 농사를 짓는다. 틈틈이 글도 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음악하는 사람이예요. 공부는 제가 좋아하고 재미있으니까 한 거예요.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선택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많아요.”
  
  최근 그는 ‘모든 삶은 작고 크다’라는 여덟 번째 앨범을 냈다고 한다. 희랍인 조르바 같은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냉한 공기가 도심의 지친 빌딩에 생기를 부어주는 11월 중순이다. 바닥에 화사하게 깔린 노란 은행잎들이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있다.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몇 명의 친한 대학동창들이 모였다. 대부분 몇 년 전부터 정년퇴직을 하고 한가로운 노년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지기는 아쉬워 여러 분야의 강사를 초청해서 30분 정도의 짧은 얘기들을 듣고 있다. 음악분야도 사진도 커피 로스팅 등 다양했다. 이번은 육십대 초쯤 된 경영컨설팅을 한다는 교수였다. 이제는 모두 내려 놓을 나이인데 무슨 경영인가 싶은 마음이 한쪽으로 들었다. 비빔밥 한 그릇을 나눈 후 따뜻한 커피를 시켜놓고 그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삼십대 초반의 젊은 영업사원을 컨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적에 전념해서 목표달성을 하고 나니까 ‘나는 뭐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허탈한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다음으로 정체성과 의미를 찾으라고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요즈음은 방향을 돌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나이에 벌써 그 의미를 찾았으면 천재네? 부럽다 부러워.”
  친구 사이에서 그런 칭찬이 튀어 나왔다.
  
  “여러분은 세웠던 목표를 이루셨습니까? 어떻게 얼마나 이루셨습니까? 그걸 하는 나는 누구였죠?”
  
  그가 육십대 중반의 우리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는 언론인 출신이었다. 대통령의 특별보좌관도 하고 방송사 사장의 물망에도 여러 번 올랐다.
  
  “나는 내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르겠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의 흐름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온 걸 목표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얼마나 꿈을 달성했는지 좌절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옆의 선생님은 어떠세요? 인생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다고 생각하세요?”
  질문을 받은 그는 오랫동안 험난한 인도의 현지에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퇴직을 한 친구였다. 조직 내에서 각광을 받거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저는 인생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어떤 성공입니까?”
  강사가 다시 물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결국 사람들이죠. 여기 함께 있는 따뜻한 친구들과 함께 하듯이 인생에서 동료나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얻었어요. 저는 그래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를 돌이켜 보았다. 어려서부터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프레임 속에 넣어 지금까지 살아왔다. 예뻐진다는 소망에 전족을 하고 평생 어린애 발을 유지하는 청나라 여인같은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이 정말 노력만 하면 되나? 피라미가 노력한다고 상어가 되나? 타고난 그릇대로 그 자리에서 사는 게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항상 있는 그 자리에서 쉬면 쉴 수 있었는데 그런 때와 장소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모인 친구들은 이미 늙어 몸의 부품들이 녹이 슬어서 녹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조용한 역의 창에 작은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책 만권, 여행 만리’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스스로 묶는 어떤 끈도 만들지 않기로 하자.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노년의 자유와 안식을 위해서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났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1-10 09:35   |  수정일 : 2017-11-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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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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