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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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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선달에게 도움을 받은 거지 여인과 몰락했던 권신(權臣)의 보은담

⊙ 권 선달에게 도움을 받은 거지 여인과 몰락했던 권신(權臣)의 보은담
⊙ 양반과 거지의 계급을 떠나, 처지에 공감해서 내줄 수 있는 것을 내주는 인간 대 인간의 ‘공감’을 생각하게 해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 벼슬자리를 구하던 권 선달은 거지 여인을 도우려다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림은 신윤복의 〈연당야유(蓮塘野遊)〉의 일부.
굶어보지 않은 사람,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굶주림, 추위란 걸 모른다. 기약 없이 마냥 굶고 한없이 추위에 떠는 막막한 절망은 다이어트하는 몸짱이나 냉탕 체험하는 아저씨가 느끼는 허기, 추위와 산술적으로는 같을지 모르나, 심정적으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여기에 성별까지 고려하면 고초가 더 극심하다. 남자 말고 여자라면 그녀가 느낄 수치심과 자괴감이 배가된다.
 
  거지 여인이 있었다. 왜 거지가 되었는지는 이야기가 말해주지 않으니 모르지만, 아무튼 곤핍하게 내일 없이 사는 거지 여인에게 다가온 세 부류의 사람들 이야기가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에 〈하동 권씨가 통영 통제사가 된 사연〉이란 제목으로 전한다.
 
 
  거지 여인과의 하룻밤
 
  하동에 사는 권씨는 만석꾼 부자로 살림은 넉넉하나 번듯한 벼슬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조상들 앞에 내세울 벼슬 하나 얻으려고 서울로 올라가, 어느 대감 댁에 의탁해 그의 온갖 수발을 들며 청지기 노릇을 했다. 10년을 그랬지만 자그만 벼슬자리 하나 얻기 힘들었다. 정치꾼들이 그렇듯이 생색을 내며 부려먹기만 할 뿐 도무지 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동 본가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 사달이 나서 온 가족이 굶어 죽게 되었단 소식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만석꾼 부잣집이니 이놈 저놈 기웃거리며 뜯어먹으려는 자들이 득실득실한데 가장(家長)이란 양반이 집안을 10년이나 비웠으니 말이다. 탈이 나지 않으면 이상한 거였다.
 
  권씨는 말미를 얻어 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심란했다. 1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도 그렇고, 그 많은 재산이 다 허물어져 가족이 굶주려 죽을 지경이란 소리에 속이 쓰리고 괴로웠다.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밖에서 탁탁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보니, 동지섣달 그 추운 밤에 웬 거지 아이 하나가 부엌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헤집고 있었다. 탁탁 소리는 몸까지 곱아드는 추위에 어떻게라도 작은 불씨라도 얻어볼까 두들기는 소리였다. 권씨는 마음에 걸렸다.
 
  ‘이 추위에 저러다 얼어 죽을라…. 끼니나 먹었을까?’
 
  그래서 주인을 불러 거지에게 밥을 챙겨 먹이라고 했다. 주인은 마뜩잖았지만 권씨가 돈을 내겠다는 말에 밥을 차려주었다. 권씨는 밥을 다 먹은 거지를 자기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자신도 하룻밤 돈을 내고 자는 옹색한 방이긴 해도 바깥의 추운 날씨보다는 당연히 나을 거였다. 그는 거지를 같은 방 같은 이불에서 하룻밤 재워줄 요량이었다.
 
  사실 권씨의 마음을 짐작기는 어렵다. 거지가 그리 더럽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지금 하동 본가의 식구들이 꼭 저 거지처럼 지낼 걸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방으로 들어오라 했다.
 
  막상 거지가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거지다 보니 옷이 좀 그랬다. 그래서 권씨는 옷을 벗고 이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거지가 도무지 옷을 벗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벗겨보니 그토록 옷을 벗지 않으려 한 이유를 알았다. 거지는 여자였던 거였다.
 
  10년을 종처럼 서울 대감 댁 청지기 노릇을 하던 권씨는 여인을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거지 여인에게서 냄새가 났는지 안 났는지, 냄새가 났지만 조선시대 일반을 생각하면 그 정도 냄새는 정욕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은 그렇게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거지 여인의 넉 냥’
 
거지 여인은 주막집에서 권 선달이 주고 간 엽전 넉 냥을 노름꾼들에게 빌려주어 부자가 됐다. 그림은 신윤복이 그린 주막집 풍경.
  아침이 되자 권씨는 다시 밥을 차려 거지 여인에게 먹으라 하고는, 주인에게 넉 냥을 맡기며 거지 여인에게 옷을 해 입히라고 했다. 그러고는 거지 여인에게 ‘하동의 권 선달이다’는 말을 남기고는 고향 집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다. 그런데 여인의 배가 불러왔고, 날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제 혼자 입도 건사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젖먹이 식구까지 딸린 거였다.
 
  이 주막에는 장사꾼들이 많이 모였다. 밤에 할 일이 많지 않은 그들은 노름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노름하던 장사꾼 중 한 명이 돈을 다 잃었다. 노름에 빠진 자들이 그렇듯이 ‘하우스’ 주인에게 돈을 빌리려 했다. 주막 주인은 권씨가 주고 간 넉 냥을 빌려주며 말했다.
 
  “이건 저 거지 여인의 돈이오.”
 
  돈을 빌린 그 장사꾼은 운수가 트였는지 아니면 이젠 딸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그 넉 냥을 가지고 다른 자들의 돈을 다 땄다. 그렇게 빌린 넉 냥과 함께 이자까지 넉넉히 쳐서 갚았다.
 
  장사꾼들은 매번 바뀌었지만, 이런 일이 몇 번 거듭됐다. 그러자 자연스레 ‘아무 데 있는 거지 여인의 넉 냥은 노름신이 붙은 돈이다’는 소문이 퍼졌다.
 
  노름이란 운에 기대는 것이고 운에 기대는 사람들치고 징크스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장사꾼들은 일부러라도 이 주막에 찾아와 앞다투어 거지 여인의 넉 냥을 빌려 노름을 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돈을 따서 갚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거지 여인은 부자가 되었다. 여인은 서울 남대문 밖에 큰 기와집을 사고 하인들까지 거느렸다. 장사꾼들은 여전히 노름을 했고 어느 누구도 감히 그 넉 냥을 떼먹지 않았다.
 
  부자가 된 여인은 하동의 권 선달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세금을 걷어 서울로 온 하동 지역 이방을 만나게 되었다. 권 선달의 소식을 물었다.
 
  “만석꾼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지금은 산에 가서 나무 해다 장에 팔며 근근이 지낸다오.”
 
  여인은 이방에게 돈 백 냥과 서울 남대문 밖 기와집으로 와달라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통제사가 된 권 선달
 
  소식을 들은 권 선달은 의아해했다. 백 냥이란 거금을 선뜻 주는 것도 괴이하지만 웬 여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 선달은 백 냥을 부인에게 맡기고 서울 남대문으로 올라왔다. 버선발로 뛰어나온 여인은 이젠 꽤 많이 장성한 아들까지 불러내 인사를 시키며 지난 내력을 낱낱이 고했다.
 
  그렇게 권 선달은 서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여인이 권 선달에게 천 냥을 내주며 밖에 나가 다 쓰고 오라고 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천 냥이라면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결국 못 쓰고 돌아오자 여인이 말했다.
 
  “그것도 못 써서 어떻게 큰 인물이 되시겠습니까. 배고픈 사람 밥도 사주고 헐벗은 사람 옷도 사 입히시면 다 쓰실 수 있습니다.”
 
  다음날, 다시 떠밀려 종로 거리로 나온 권 선달은 팥죽장수와 실랑이를 벌이는 웬 하인을 보게 되었다. 팥죽 반 동이를 외상으로 달라고 떼를 쓰는 거였다. 그동안 외상도 상당한데 또 외상을 달라니 팥죽장수가 안 된다며 야멸차게 거절했다. 권 선달은 잘 되었단 생각에 끼어들어 외상도 갚아주고 팥죽도 사주었다.
 
  사실 그 하인은 어느 대감 집 하인인데, 권력 구도가 뒤집혀서 몰락해 스무 명이 넘는 식솔이 쫄쫄 굶고 있는 처지였다.
 
  “어떻게 오늘은 평소보다 더 팥죽이 많은 것 같구나?”
 
  대감의 물음에 하인이 전후 사정을 말했다. 대감이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며 권 선달을 청했고, 권 선달은 그 대감을 만나게 되자, 여인의 말을 떠올리고는, 먹을 양식과 살림살이를 사다가 갖추게 하고는 논과 밭까지 사주었다. 천 냥을 몽땅 다 퍼준 거였다.
 
  그렇게 부자가 된 대감이 정국이 뒤집혀 다시 조정에 오르게 되었다. 대감은 권 선달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를 불러 소원을 물었다. 사실 권 선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그마한 벼슬 하나를 얻고 싶을 뿐이었다. 조상들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였다.
 
  대감은 그를 통영의 통제사가 되게 했고, 권 선달은 거지 여인은 물론 하동 본가의 본처까지 불러다 자신의 소원인 벼슬을 하며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한다.
 
 
  거지 여인은 누구를 가장 고마워할까?
 
  이야기는 하동 향반(鄕班) 권 선달이 통영의 수군통제사가 되는 이야기이지만, 거지 여인 입장에서 보면 그녀를 도운 사람들 이야기다. 권 선달, 노름꾼들, 몰락했다가 재기에 성공한 대감,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거지 여인과 직간접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그러면서 여인도 거지에서 부자가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오른다.
 
  ‘거지 여인은 누구를 가장 고마워할까?’
 
  주인공이 권 선달이니 너무 쉽게 권 선달이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거지 여인의 입장이 되어 보면 꼭 권 선달이 셋 중 가장 낫다고 선뜻 말하기 쉽지 않다.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권 선달과 거지 여인의 만남은 꼭 그렇게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권 선달은 강간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껏해야 밥 한 끼, 잠자리 하나 마련해 주고 성(性)을 뺏은 것이다. 게다가 거지 여인 입장에서는 거부하려야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힘센 남자고 또한 어떻든 호의를 베푼 것도 사실이었다. 그 정도(?) 요구는 지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맘 약한 여자라면, 정말 미치도록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였다면, 얼핏 잘못된 판단을 하고도 남을 상황인 거다.
 
  성이 엄청나게 중요한 대단한 것은 아니라지만, 권 선달이 밥과 잠자리를 주는 것의 반대급부로 처음부터 성을 말한 것이 아니라, 상황상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정확하게는 ‘벗겨놓고 보니’ 여성이었고 성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 거였다. 어떻든 ‘정당한’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구비문학대계》의 다른 각 편을 살펴보면 권 선달이 강간을 했다는 묘사로 나오기도 한다. 즉 누가 봐도 거지 여인 입장에서는 궁지에 몰린 불리한 상황인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팔았나?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소외된 약자인 어린 소녀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다 보니 거지 여인의 나이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권 선달이 처음에 남성으로 오인한 것으로 보아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춘향이가 결혼한 나이인 열여섯 즈음에 시집갔던 것을 감안해도, 거지 여인의 나이가 어렸을 것이 분명하다. 꼭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이 아름답게 미화해서 그렇지, ‘성냥팔이 소녀’는 결국 성을 팔았던 것이 분명하다. 추운 겨울날 춥고 배고파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죽는 소녀는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성냥불을 켰다. 작게 피어나는 성냥불 속에서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보았고 따뜻한 벽난로를 보았으며 화목한 가족의 모습도 보았다. 그렇게 가진 성냥을 모두 다 태워버린 후 이제 남은 것이 없게 된 소녀는 결국 죽고 만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나 거지 여인이나 처지는 같다. 자기 몸 외에는 더 이상 팔 것이 없는 이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렀는데,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프롤레타리아 적빈(赤貧) 계층의, 그것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인 거였다. 그러니 거지 여인을, 아니 거지 소녀를 데리고 잔 권 선달은 이익을 미끼로 원조교제를 한 거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냥팔이 소녀나 거지 여인이 살던 당시는 ‘어린이’나 ‘아동’의 개념이 없던 시대이니 지금과 같은 원조교제나 롤리타 콤플렉스(Lolita complex) 같은 프리즘으로 마냥 매도할 수만은 없지만, 어떻든 강압적이고 자발적이지 않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 하룻밤으로 거지 여인 입장에서는 혹이 달린다. 임신을 했고 아들을 낳는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거지 처지에서 볼 때, 막막하고 한심하고 답답해 울분이 터질 노릇이다. 권 선달이 원망스러울 수 있다. 더욱 권 선달은 그렇게 그날 밤의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자신의 생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어쩌다 벌어진 하룻밤의 일이었고, 또 따지고 보면, ‘그 거지 여자는 뭐 처지가 그렇다 보니… 처음도 아닐 테고…’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 남대문 밖의 한 여인이 찾는다는 말에 의아해했고 백 냥씩이나 준 것에 놀랐던 거다.
 
  이렇게 보면 가장 무책임한 인물이 권 선달이다.
 
  그런데 여인은 그를 맘에 넣고 잊지 못했다. 그를 찾으려 했고 만나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후대했고 결국 그를 통영 통제사가 되게 했다. 이유가 뭘까? 자식을 낳아서일까? 결국 권 선달이 준 넉 냥이 씨앗이 되어 부자가 된 것이니 보답하려고 그런 걸까?
 
  그것은 다른 두 부류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름꾼의 거래
 
  주막에 몰린 장사꾼들은 노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거지 여인의 넉 냥을 가져다가 노름을 해서 돈을 땄다. 장사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장사꾼들은 눈곱만큼의 이득이라도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장사꾼들이 모두 하나 같이 약속이나 한 듯 그 넉 냥을 꼬박꼬박 돌려줬고, 속이지 않고 이문까지 붙여 주었다.
 
  앞서 말했듯이 거지 여인은 약자 중의 약자이고 별 볼 일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도 장사꾼들은 모두 약속을 지켰다. 아마도 거지 여인은 그들이 떼먹지 않고 돌려주는 것에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냥 갖고 도망치든 힘으로 제압하든 그녀는 어찌할 도리 없는 신세였으니 더욱 그러했을 거다.
 
  그런데 거지 여인은 그들보다 권 선달을 더 고마워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아예 고마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장사꾼들과의 관계는 단지 ‘거래’였기 때문이다. 노름꾼들은 ‘재수가 좋으려고’ 그녀의 돈을 빌렸을 뿐이고, 운이 따라줘서 어김없이 돌려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돌려준 이유는 깨끗한 거래를 중시하는 신의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부정 탈까 두려워서 돌려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다. 노름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중에 뜬 주사위의 눈 같은 것이고 노름으로 딴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란 걸 그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깟 넉 냥을 쓱싹해서 재수 옴 붙으면 어쩌려고?”
 
  다들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노름꾼들이 여인을 대하는 태도는 물주(物主), 아니면 ‘행운의 넉 냥’의 주인일 뿐이었다. 거지 여인과 노름꾼들 사이에는 단지 이런 정도의 거래와 암묵적 계약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니 ‘고마움’ 같은 느낌은 사치스런 감정일 뿐이다.
 
 
  보은은 쉽지 않다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 부자가 된 거지 여인은 이런 모습으로 권 선달을 기다렸을까?
  몰락했던 양반도 노름꾼과 비슷하다. 물론 대감은 거지 여인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으나, 그녀의 재물을 통해서 목숨을 유지했고 때가 되어 다시 조정에 오를 수 있었으니, 그녀와의 관계는 행운의 넉 냥을 빌린 노름꾼들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대감은 은혜를 잊지 않고 권 선달이 통제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자신이 궁핍할 때 도와준 권 선달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은 것이다. 이런 행위는 노름꾼들의 ‘거래’보다는 조금 더 고상한 행위라 할 것이다. 처음 권 선달이 빚을 갚아주고 먹고살게 해준 것이 무슨 계약을 맺어서 한 행위가 아니라 일방적인 은혜였으니, 따지고 보면 대감은 그냥 모른 척해도 나무랄 수는 없다. 계약도 거래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대감은 은혜를 갚았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 판치는 세상에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는 ‘보은(報恩)’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호의를 베풀고 오히려 욕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실 거다. 그냥 베푼 것으로 만족해서 스스로 넉넉한 마음이 되는 것이 인생살이에 더 편하다. 심한 과장이 결코 아니다. 꽤 많은 연예인이 자기를 처음 발탁해 준 감독, PD, 작가들을 모른 척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게다. 사실 궁핍하고 곤란한 처지의 모습을 ‘보았던’ 자가 옆에서 얼쩡거리는 것은 눈에 거슬리는 법이다. 자신의 못난 시절, 너무 절박해서 할 짓 못 할 짓 다 하던 시절을 속속들이 아는 자가 있다는 것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자에게 보답을 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보은은 쉽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이 대감은 자신이 고생하던 시절에 도와준 공을 잊지 않았고 그것을 보답했다. 멋진 얘기다.
 
 
  공감·거래·보은
 
  거지 여인 입장에서 권 선달, 노름꾼, 대감을 고마운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대감은 노름꾼보다는 낫지만, 권 선달보다는 아래에 놓을 것 같다. 대감의 ‘보은’이 쉽지 않은 가치이고, ‘거래’처럼 이해타산적 행위도 아니지만, 거지 여인에겐 권 선달이 보여준 행동이 그보다 더 높게 여겨졌다.
 
  그것이 대체 뭘까? 거지 여인은 왜 그토록 권 선달에게 고마워했을까?
 
  대등한 거래나 넉넉할 때의 보은도 좋지만, 가진 것 없이 고달픈 신세일 때 받은 은혜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한 잔의 냉수지만 우물가에서보다는 사막 한가운데서 더 고마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룻밤 잠자리와 따뜻한 밥 때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드러난 굶주림을 면한 음식과 추위를 피하게 된 잠자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베풀어진 호의 속에 담긴 진정, 맨 처음 문을 열고 탁탁 부지깽이로 부엌 아궁이를 쑤시던 때의 절박감을 알아준 그 따뜻한 마음, 그것이 그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녀도 안다. 권 선달이 자신이 여자인 줄 알고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어떻게든 잠자리를 염두에 두고 방으로 들어오라 꼬드긴 것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자신은 거지이고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약한 신세였다. 때리면 맞고 뺏으면 뺏길 수밖에 없고 강간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냄새 나고 더러운 서글픈 거지였다.
 
  하지만 권 선달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불쌍하게 여겼다.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줬다. 진정한 애끓는 마음에서 밥을 먹였고 방에 들어와 자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성관계가 있었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거부하기 힘든 면도 있었지만 그건 밥과 잠자리를 준 것에 대한 ‘거래’도 ‘보은’도 아니었다. 진정한 마음의 흐름이었다. 그랬기에 거지 여인은 권 선달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권 선달의 진정한 긍휼(矜恤)에 감동했던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보니 세상엔 세 가지 관계 맺음이 있는 것 같다.
 
  ‘공감(sympathy)’ ‘거래’ ‘보은’.
 
  이 중 그 어느 하나로 관계를 맺든 그건 꽤나 멋진 일이고 인간다운 일이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권 선달이 했던 ‘공감’을 고르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 양반과 거지의 계급을 떠나, 하얀 이불보와 꾀죄죄한 더러운 옷의 구분을 잊어버리고, 처지에 공감해서 내줄 수 있는 것을 내주는, 그렇게 밥을 나눠 먹고 온기를 나눠 갖는 진정한 관계이니 말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1-13 09:06   |  수정일 : 2017-11-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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