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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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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연애...연애에 많은 계산이 동원되는 시대의 반영

글 | 박소정 작가   일러스트 | 셔터스톡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파티장. 여자의 지인들은 잠시 후 나타날 여자의 남자친구를 기대 어린 시선으로 기다리고 있다. 시선 사이로 초조해 보이는 여자가 비친다. 뒤미처 한 남자가 파티장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일순간 그를 둘러싼 감탄과 환호로 파티장이 술렁인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손깍지를 끼며 다정하게 웃는다. “많이 안 늦었지?” 여자는 초조했던 시선을 거두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여자의 지인들은 부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배우 이진욱이 연기해 화제가 됐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의 한 장면이다. 많은 사람의 공감과 호응으로 SNS상에서는 따로 편집본이 유통되었다. 이 장면의 인기는 이진욱의 달콤한 눈웃음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목을 끄는 완벽한 이성을 자신의 헌신적이고 다정한 연인으로 소개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데서도 비롯된다. 기다리던 여자가 초조했던 이유는 남자의 얼굴이 늘 이진욱의 얼굴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는 뭇 여성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남성의 외모였다가도 잠이 들면 추남이 되기도, 할머니가 되기도 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친구의 지인들을 맞기 위해 파티장에 가기 전 억지로 잠을 여러 번 청해야만 했다. 지인에게 연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여자와 남자에게 필요한 얼굴은 배우 이진욱의 멋진 외모였다.


‘럽스타그램’ 속 우리의 욕망

SNS의 한 종류인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유저라면 ‘럽스타그램’이라는 신조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love’와 ‘instagram’를 조합한 말인데,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자신의 연인과 찍은 사진이나 연인에게 받은 선물 사진 등을 올리고 ‘#럽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을 팔로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 행위다.

현대 연인들에게 자신의 연인을 공개하는 일은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이벤트다. 사랑의 사회학자라고 불리는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미국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이루어지는 포스팅 행위가 ‘사적 자아(private self)’를 ‘공적 수행(public performance)’으로 전환시키는 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프로필에 잘 나온 사진과 개인 정보를 취사 선택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그럴듯하게 전시한다. 럽스타그램이야말로 연애가 SNS를 만나 사적 자아가 공적 수행으로 변환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럽스타그램에는 규격화된 문법이 존재한다. 최근 여자친구가 생긴 지인 A는 고가의 DSLR 카메라와 삼각대를 장만했다. 어느 주말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전주 한옥마을의 돌담길에서 한복을 입고 여자친구와 마주 서 있는 사진이 럽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달고 포스팅되었다. 다음 주말에는 예쁜 풍경을 향해 뒤돌아선 여자친구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A의 손이 포스팅되었다.

그다음 주말은 롯데월드 회전목마 앞에서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다. 인스타그램에는 A의 것과 유사한 콘셉트의 사진이 각각 만 장쯤은 있다.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특정한 사진 구도와 데이트 양식을 보노라면 연애는 더 이상 사적 관계로만 존재하지 않고, 규격화된 문법에 맞춰진 전시 행위로 여겨진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연애를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나게 되었을까


연애가 일종의 전시 이벤트가 된 데에는 대중 미디어가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맨스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오래된 단골 소재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연예인의 짝짓기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어 시청자의 연애와 다소 동떨어진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연애를 상담하고 코칭받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약 3년간 방영된 〈마녀사냥 〉(JTBC)이 대표적이다. 〈마녀사냥〉에서 로맨스의 주체는 시청자, 바로 우리였다. 시청자나 방청객은 수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연애 일대기를 고백했다. 짝사랑부터 성 경험까지 내밀하고도 사적인 연애담이 줄줄이 공개되었다. 자신의 연애를 자랑하기 위해, 또는 더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TV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콘텐츠의 증가가 연애 전시 현상을 불러온 것인지, 자신의 연애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콘텐츠가 생겨난 것인지 선후 관계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의 연애인(戀愛人)들은 연애를 더 이상 사적 영역 안에만 가둬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애를 전시하는 더 내밀한 이유는 연애를 통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애에 많은 계산이 동원되는 시대다. N포 세대의 물적 조건에서 결혼은 물론 결혼의 전 단계가 될지도 모르는 연애는 신중함을 요한다. 자갈밭에 굴러도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옛날에나 통했던 말이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요구받는 청년들에게는 연애도 자기계발과 같이 잘 가꾸어 나가야 하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연애의 스펙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떤 연인을 만나는가는 곧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자 생애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또 다른 지인 B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의 사원증과 꽃다발 사진을 걸어 놓았다. 무심히 올린 듯한 그 사진의 기저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조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꽃을 선물하는 다정함을 지닌 남자로부터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존재한다. 이것을 예쁘게 전시하고 주위 사람들이 부러움을 표할 때 B는 자존감을 느낀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주인공의 연애가 주변인에게 인정받고 선망의 시선을 받는 장면이 주목받는 이유다. 우리 모두의 은밀한 듯 공공연한 판타지이다.


intimacy? extimacy!

‘extimacy’라는 단어가 있다. ‘외밀성’이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만들어낸 말로, 친밀성을 뜻하는 ‘intimacy’에서 파생했다. 외밀성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외부를 일컫는다. 외부의 기준이나 규칙이 강하게 작동하는 오늘날의 연애는 더 이상 친밀성이 아니라 외밀성이 아닐까?

현대인들이 생존주의와 자기계발주의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승리자가 되는 방법은 많은 가치를 스펙으로 양화시켜 장착한 후 훌륭하게 자기 PR을 하여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애가 많은 노력과 희생을 요하는 것이라면 가장 훌륭한 연인을 만나 멋진 연애를 해내겠다’라는 의지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외부의 레짐(regime)이 내밀한 영역을 모양 지으면서 연애는 외밀성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연애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제시하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나 연애를 코칭해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외밀성을 부추기고, 우리는 자꾸만 연애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 이 콘텐츠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연애정경》(박소정 저)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10-05 오전 10:15:00   |  수정일 : 2017-09-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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