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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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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실유물 되찾아 오자"··· 대한황실시기 세계 각 국의 수집가들에 의해 반출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맞아 조선왕실의 후손들 나서
-임진전쟁 시 문화재약탈부대에 의해 왕실문서 등 약탈
-대한황실시기 세계 각 국의 수집가들에 의해 반출
-일제강점기, 실록, 의궤 등 보존물은 물론 궁궐 등도 뜯겨나가
-미군정기와 전쟁시기에도 집중적으로 반출 당해
-해방이후 우선 반환대상... 국가의 상징성 담겨 있어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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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화유산회복을 위한 문화인 결집대회에 참석한 대한황실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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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황실문화원 총재 황사손 이원

  2017년 7월 19일 국회헌정기념관. 한여름의 더위가 절정에 달한 오후 3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2017년 문화유산회복을 위한 문화인 결집대회>에 모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고 간혹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조선왕실의 후손들로 대한황실문화원의 구성원으로 참석하였다. 조선 500년 역사가 남긴 문화유산은 찬란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으로 종묘, 조선왕릉, 창덕궁, 수원화성 등이 있고 기록 유산은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훈민정음, 승정원 일기 등 둥재된 유산 중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유산을 보전할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책임이 앞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17년 10월 13일은 대한제국을 선포한지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호시탐탐 조선의 침략을 노리는 강대국에 맞서 고종은 자주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황제국가로 그 뜻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것은 중국 중심의 사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세계의 중심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지한 자구책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뜻은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이루지 못했고 제국 열강의 거센 야욕을 넘지 못했다. 결국 1905년 을사늑약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1897년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딘 대한제국의 역사는 유산으로 도처에 남아 있지만 원형은 크게 훼손당하였다. 제국임을 직접 하늘에 고한 <원구단>은 일제에 의해 해체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망실되어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등만이 남아 있다. 더욱이 조선 총독 데라우치는 원구단의 건물을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 현으로 반출하여 <조선관>이라 이름 짓고 조선 왕실 등에서 가져간 도서 문고로 사용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왕실의 고문서를 다량 반출하여 일본의 왕실에 바쳤고 경복궁의 건물을 해체하여 일본인 기업 등에 팔아넘겼다. 그 자리에는 왜색의 정원과 동·식물원을 만들어 구경거리로 삼았다.
 
   1592년 임진전쟁 당시에는 문화재약탈부대를 별로로 편성하여 대규모적으로 약탈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개시부터 금은보화를 담당하는 보물부대, 도자기와 도공을 잡아가는 공예부대, 병기와 금속예술품을 약탈하는 금속부대 그리고 왕실의 고문서 등을 약탈하는 서적부대로 하여금 궁궐과 사찰, 사원 등에서 대규모 문서를 약탈하였다. 이런 결과로 지금 신라의 <화랑세기>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있다. 심지어 세종대왕 당시 전국 340여 곳에 설치한 측우기가 전쟁이후 전부 사라져 그 후 300여년이 지난 1770년 극히 일부인 8도에 복원되었을 뿐이다. 이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부 소실되었고 현재 국내에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것인 1971년 일본 기상청으로부터 반환받은 1837년 헌종의 금영측우기뿐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조선왕실의 어보(御寶)와 국새(國璽)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불법 반출 당했다. 문화재청의 도난문화재 현황 자료(2017년 5월)에 따르면 국새 29과와 어보 47과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중 지난 6월에 미국으로부터 문정왕후어보와 헌종어보 2과를 반환받았으니 아직도 45과의 자리는 비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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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고종황제의 흉배
 
 
조선 왕실의 유물의 반환은 국가의 상징성 담겨 있어
해방이후 지속적인 반환 이뤄져
 
◈ 최근 조선왕실과 대한황실의 유물 환수 현황
 
2017년 美 문정왕후, 헌종어보 / 미국정부 압수 후 반환
2016년 日 문화학원 복식박물관 덕혜옹주 복식 7점 / 기증 반환
2015년 美 시애틀 박물관 덕종어보 / 소장자 기증
2014년 美 조선왕실 국새 등 9점 / 미국정부 압수 후 반환
2013년 美 호조태환권 / 미국정부 압수 후 반환
2011년 日 궁내청 소장 조선왕조도서 1,205책 / 협정으로 반환
2011년 프 외규장각 의궤 297책 / 임대 형식으로 귀환
2006년 日 도쿄대 소장 조선왕조실록 47책 / 기증형식으로 반환
1995년 日 경복궁 자선당 유구 / 기증 형식으로 반환
1991년 日 영친왕비 복식 295점 / 양도협정으로 반환
1987년 美 명성황후 어보 / 조창수 선생의 모금으로 반환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해방이후 교민들의 실태 조사와 반환 노력이 있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큐레이터로 한국문화재 조사는 물론 반환을 위해 발로 뛴 조창수 선생이나 프랑스 국립도서관 중국서고에 잠들어 있던 외규장각의궤를 발견, 발표한 박병선 선생 등의 노력이 국민여론을 일으키고 정부의 협상을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또한 한·일 정부가 주요 시기마다 벌인 외교협상도 65년 한일협정으로 문화재반환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를 설득, 결국 개별 협정을 체결하여 환수한 바도 있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문화재 반환으로 국제사회가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기회요인이다. 문화재 반환은 과거 불행한 역사의 청산이라는 관점과 이를 회복하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취득사유 소명의 책임이 소장자에게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으며 박물관의 윤리적 규정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반환한 일련의 유물은 국제사회의 원칙을 실천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더구나 21세기에 들어와 “유통경로의 적법성 여부를 떠나 기원국으로 반환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점”은 바로 문화재 가치의 재발견 때문이다. “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는 원칙이야 말로 그동안 재물적 이익의 수단이나 지배의 상징으로 보았던 낡은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구한말 수집가들에 의해 반출당한 유물의 회복을 이룰 수 있는 적기(適期)이다. 더구나 소장자들의 세대교체는 중요한 변화로 이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조선왕실의 문화유산을 보전할 우선적 책임이 있는 대한황실문화원의 조선왕실·대한황실 문화유산 회복운동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유물의 전수조사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원만한 성취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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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왕실 유물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8-09 09:20   |  수정일 : 2017-08-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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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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