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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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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28)]
고종의 사라진 10년과 흥선 대원군(1)- 고종은 사라지고 흥선 대원군만 보이는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글 |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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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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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고종을 검색하면 ‘고종은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지만, 흥선 대원군으로 국정을 총람, 대신 섭정하게 하였다.’고 하여 흥선 대원군이 섭정(攝政)을 함으로써 고종은 모든 통치 행위를 수행하지 못하다가 1873년 친정(親政)을 선포하여 통치 대권을 장악한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서술이다. 흥선 대원군은 섭정을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친정을 선포한 것도 1873년이 아닌 1866년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서술은 교과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시작과 함께 다음과 같은 거창한 제목 아래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흥선 대원군의 업적을 서술하였다.
 
출판사
단원 제목
면 수
교학사
흥선 대원군의 집권과 왕권 강화 정책
5
금성출판사
흥선 대원군, 서양 열강에 맞서다.
5
동아출판
흥선 대원군, 조선을 다시 정비하다.
4
리베르스쿨
흥선 대원군의 통치 체제 재정비
5
미래엔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4
비상교육
흥선 대원군이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다.
6
지학사
통치 체제의 재정비
7
천재교육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7
 
이를 종합하면 ‘흥선 대원군은 집권 후 조선을 다시 정비하고, 서양 열강에 맞서 싸우는가 하면 통치 체제를 정비하는 등의 개혁 정치를 시행하였다.’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세계를 열 것 같은 희망찬 제목이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통치 행위는 최고의 권력자인 국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흥선 대원군은 국왕인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국왕이 아니다. 국왕을 능가하는 힘을 가졌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힘은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부여된 것인가? 교과서에는 흥선 대원군의 등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교학사
집권하다. 섭정하다. 정권을 잡다.
금성출판사
집권하다. 실권을 장악하다.
동아출판
정권을 잡다.
리베르스쿨
실권을 잡다.
미래엔
권력을 잡다.
비상교육
집권하다.
지학사
실권을 장악하다.
천재교육
실권을 장악하다. 집권하다.
 
교과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집권(執權:정권을 잡다), 섭정(攝政), 실권(實權) 장악으로 요약된다. 이 중 섭정은 ‘국왕을 대리해서 국가의 통치권을 맡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뜻으로 정당하게 부여된 통치 행위이다. 고종의 즉위와 함께 대왕대비 조씨(趙氏)에게 부여된 수렴청정이 이에 해당된다.
 
당시 예조(禮曹)에서는 수렴청정의 절차를 기록한 「수렴동청정절목(垂簾同聽政節目」을 올려 이를 공식화 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 등 어떠한 사료(史料)에도 흥선 대원군이 섭정했다는 기록은 없다.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행하고 있는 마당에 대원군이 섭정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고종 즉위와 함께 시작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은 2년이 갓 넘은 1866년 2월 13일 대왕대비가 철렴(撤簾:수렴청정을 거둠)을 선언하고 대소의 공사(公事)를 고종이 직접 총괄하도록 전교(傳敎)함으로써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공식적 최고 통치 기구는 국왕인 고종이 유일하다.
 
집권(執權)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집권은 ‘권력을 잡다’, ‘정권을 잡다’라는 뜻으로 풀이가 되나 이는 최고 권력 즉,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잡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물론 합법적 위치에서 행하는 통치 행위이다. 때문에 합법적 통치 기구인 고종과 대왕대비 외에 다시 흥선 대원군이 집권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과서에는 없으나 『신편한국사』를 비롯한 다수의 학술서에는 비슷한 용어로 집정(執政)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나, 이는 집권이라는 용어가 사실 관계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유사(類似) 용어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권(實權) 장악’이다. 실권(實權)이란 단어에는 ‘정당하게 부여되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나 권세’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권리나 권세가 정당하게 부여되었다면 굳이 실권이라는 용어를 쓸 이유가 없다. 부여된 권리를 그대로 행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흥선 대원군은 합법적 통치 기구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국왕을 대신해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어떠한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바도 없다. 그래서 ‘실권 장악’이라는 표현은 흥선 대원군에게 가장 부합하는 용어가 된다. 이를 정리하면, 흥선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의 힘을 배경으로 불법・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권을 장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 교과서는 합법적 통치기구인 고종은 뒷전으로 밀쳐두고 불법・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흥선 대원군을 마치 합법적 최고 통치권자이자 조선을 재정비할 개혁적 정치가인 양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 기간이 1863년부터 1873년까지이니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다. 10년 동안 우리 역사에서 고종은 보이지 않고 흥선 대원군만 살아 움직이고 있다.
 
교학사
당파지역신분을 넘어서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여 지배층의 인적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금성출판사
이에 그동안 권력을 독점하였던 안동 김씨를 밀어내고 다양한 세력을 고루 등용하였다.
리베르스쿨
그는 먼저 그동안 외척으로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 세력을 정계에서 몰아내고, 당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였다.
미래엔
이를 위해 세도 정치를 펴던 안동 김씨 일족을 쫓아내고 당파지역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였다.
비상교육
우선 세도 정치를 펴던 안동 김씨 일족을 몰아내고 당파, 지역,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였다.
지학사
흥선 대원군은 당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천재교육
흥선 대원군은 우선 세도정치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노론 외척 세도 가문의 중심인물들을 권력에서 밀어냈으며, 당파와 관계없이 다양한 정치 세력을 능력에 따라 고루 등용하였다.
 
이는 흥선 대원군의 인재 등용에 관한 서술로 교과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흥선 대원군이 안동 김씨 일족을 몰아내고 나서 당파・지역・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세력을 고루 등용하였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세도 정치를 펴던 안동 김씨를 몰아낸 자리에 당파뿐만 아니라 지역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였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재 등용은 민주주의 국가인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먼저 흥선 대원군은 인재 즉, 관리를 등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삼정승(三政丞) 이하 고위 관료를 임명하는 일은 공식적 통치 기구인 국왕의 일이지 국왕의 사친(私親)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관료를 임명하면 ‘施命之寶(시명지보)’라는 어보(御寶)가 찍힌 교지(敎旨)를 내리게 되는데, 그 어보의 주체는 국왕이다. 물론, 흥선 대원군이 실권을 이용하여 자기 사람을 심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인재 등용이 아니라 불법・부당한 압력에 의한 인사 전횡(專橫)이지 등용이라 할 수 없다. 지금 같으면 중대한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
 
흥선 대원군이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지 여부(與否)를 떠나 고종 즉위 후 안동 김씨를 몰아내고 다양한 세력을 등용하였다는 교과서의 서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편한국사』 37권 「대원군의 내정 개혁」에는 대원군의 인재 등용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먼저, 안동 김씨를 몰아냈다는 부분과 관련한 서술에서는 ‘대원군 집정기에 안동 김씨 세력이 고위 관료층 내에서 점하는 비중은 그 이전에 비교하면 다소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강력한 지배집단의 일원으로 존속하고 있었다.’고 서술하는가 하면, ‘대원군은 안동 김씨를 포함한 기존 세력을 제거하기는커녕 이들과 연합하여 왕조체제를 재건하려 하였던 것이다.’고 하였다.
 
당파・지역・신분을 넘어서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였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도 ‘대원군의 인사정책이 비록 세도 정치 시기에 볼 수 없었던 몇몇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인 현상일 뿐으로 본질적으로는 종래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국 대원군 집정기의 인사정책의 본질은 외척 벌열의 세도정치 시기의 그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니, 흥선 대원군이 인재를 등용하였다는 것, 안동김씨를 몰아냈다는 것, 당파・지역・신분을 초월한 인재를 등용하였다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사실 관계에 부합하는 것이 없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다루게 될 흥선 대원군에 대한 교과서 서술이 다 이런 식이다. 우리 교과서는 불법・부당한 권력 남용(濫用)을 마치 정당하고 합법적인 통치 행위인 양 서술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교과서를 통해 불법과 비리를 시나브로 익히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8-08 10:44   |  수정일 : 2017-08-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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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학사/석사/박사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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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 2017-08-16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2
그럼 10대였던 고종이 외침과 변란이 크던 당시 국정을 실제 다스렸단 말인가요? 또 왜 다수의 정사 야사는 대원군이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을까요?
      답글보이기  혹시  ( 2017-08-16 )  찬성 : 1 반대 : 1
흥선 대원군이 실권을 가지고 있덨다고 평가하는 정사(正史)를 제시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이대식  ( 2017-08-0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이글이  ( 2017-08-0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2
사실이던 그 반대이던간에, 소위 역사로 밥먹고 사는 다른 사람들은 아가리에 무슨 재갈을 먹였기에 아무말도 없는가? 찬론이던 반론이던간에 이곳같은 공론의 운동장에서 맞부딛쳐서 결론을 내야 함이 특히 역사로 밥먹고 사는 것들의 제1 책무 아닌가? 1개의 역사에 2개의 존재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10새들아!
      답글보이기  박근혜  ( 2017-09-14 )  찬성 : 0 반대 : 1
하나 예를 들자. 박근혜 통치기에 최순실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고 모든 정령은 박근혜 이름으로 반포되지. 그러면 최순실을 현장 실무자로 봐야 하냐? 생각좀 하고 살자. 조선일보야.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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