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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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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라 불린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이라니, 우리의 과제는?

2015년 7월 세계인의 우려 속에 유네스코 등재
2017년까지 강제노동사실 적시..권고
한일시민단체 등 이행 촉구
당시 비밀 밀실외교 밝혀야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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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당시 군함도 모습,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2015년 6월 28일 개회한 제39차 세계유산 총회에는 뜻밖의 불청객이 있었다. 다름 아닌 100년만의 폭염이다. 작열하는 태양은 아스팔트를 팔팔 끓이고 있었다. 최고기온이 39도라 하니 유네스코 총회가 열리는 본 국제회의센터(WCCB) 앞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참가자들도 그늘에 숨기 바빴다.
 
그러나 총회장에는 또 다른 불청객이 있었다. 바로 일본 메이지 시기 산업시설의 등재 건이다. 아베정부의 우경화에 돛을 달, 이 의제는 그동안 전략적이고 치밀한 준비를 거쳤음에도 막상 총회에서는 핫 이슈였다.
 
총회가 진행된 동안 열기 가득한 아스팔트 위에서 일본 산업시설의 등재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일제피해자단체와 문화유산단체 그리고 교민들이었다. 7월 2일부터 총회장 앞에 자리 잡은 이들은 그늘막 하나 없는 폭염 속에서 “강제노동 인정하지 않은 일본 산업시설 등재반대”를 외치고, 총회 참석자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설명하였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폭염으로 피해자가 발생할 것을 걱정한 경찰이 텐트 설치와 그늘 아래 쉴 것을 허락하였다. 이 캠페인에 7시간을 달려 오신 분과 함부르크에서 교민신문을 보고 휠체어에 의탁한 체, 달려오신 교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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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캠페인 모습, 사진 교포신문

매일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각국의 총회 참석자들의 격려방문과 외신들의 취재가 이뤄졌다. 또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당시 피해 국가들의 반대성명이 이어졌다. 그들은 일본정부가 유산의 전 기간과 전부가 아닌 산업혁명 성과만 발췌, 짜깁기함으로 역사를 은폐,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일본의 의제는 두 번이나 심사 연기되었다.
 
그러나 2015년 7월 5일 오후 4시, 총회에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통상적인 심사 참가 국가들의 보충 토론이나 지정토론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유산등재에 합의’하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미국과 영국 등이 ‘연합군포로의 강제 노역’을 문제 삼으며 등재를 반대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유산등재 심사’가 내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한일 합의’로 일본은 뜻을 이루었다.
 
그날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등재 발표이후 1시간이 지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 덥혔다. 그리고 우뢰와 함께 손톱 크기의 우박이 쏟아졌다. 그날 유리창 파손 등 피해 입은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교민들을 통해 들었다. 아마 억울한 원혼들의 한탄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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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날씨 모습, 등재발표 1시간만에 순식간에 우뢰와 함께 우박이 쏜다졌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그 이후 일본은 권고는 이행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기억을 은폐, 삭제하고 있다. 이에 지난 7월 5일 12개 한일시민단체들은 일본정부에 유네스코의 권고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외교부는 6월 29일,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세계유산등재 후속조치 이행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정부는 일본 산업유산 등재 과정의 전 과정을 숨김없이 밝혀라
 
그러나 진실은 밝혀야 한다. 권고 이행 촉구와 역사적 사실 확인 못지않게 당시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이제는 밝혀야 한다.
 
당시 외교부는 등재 발표 직후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사실’을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외교적인 ‘쾌거’라고 자축했으나, 일본 외무성은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피해자 보상 문제는 이미 ’한일 협정‘에 의해 끝난 문제라고 당당히 발표하였다. 등재 전부터 강제노동 사실을 신청서 본문도 아닌 주석도 아닌 ‘회의 발언문’에 남기겠다는 일본의 전략은 결국 성공했다. 2017년까지 ICOMOS의 이행권고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이 또한 강제성이 없는 권고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형식은 자랑하되 내용은 철저히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일본의 산업유산 등재 과정에서 보여준 외교부의 모습은, 그 정점이었다. 일본이 2013년 잠정목록으로 신청하고, 2015년을 등재 목표 기한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여 2015년 5월 ICOMOS의 권고결정을 받은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유네스코대사는 공석이었다.
 
2015년 6월 22일, 한일협정 50주년 직전에 이루어진 한일외교부장관회담에서의 ‘상호 협력’ 합의, 6월23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 라인의 ‘물밑 조율’ 결과관련 보도가 있었다. 그러면 이미 6월 22일, 23일 물밑 합의하였음에도 외교부장관은 관련 국가를 방문하고, 협력대사를 심사위원국에 파견한 것은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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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3. 경향신문 보도

심지어 총회 현장에 한국 측 위원들은 대부분 불참하고 리포터만 참석, 발표하는 모습이 당시 총회장 영상에 나와 있다. 이를 보면 국민적 기대와 달리 당시 협상단이 얼마나 부실하였는지, 아니 그 이전의 밀실협상으로 들러리 역할만 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더 이상 지난 정부의 외교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비밀주의보다 국민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7-12 10:42   |  수정일 : 2017-07-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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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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