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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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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18)]
1920~30년대 쌀 수출인가? 수탈인가?(3) - 한국사 교과서의 잘못된 통계 자료, 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됐다.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글 |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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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253쪽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는 오른쪽과 같이 쌀 생산량과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을 나타내는 통계 그래프가 실려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되어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고 서술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 그래프에서 노란색 선그래프는 쌀 생산량을, 아래 녹색 막대그래프는 한 해 동안의 1인당 쌀 소비량을 나타낸다. 그래프를 보면 1928년까지 쌀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잘못된 통계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 잘못된 그래프다.
 
이제 이 그래프가 어떻게 잘못 됐는지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한다. 하나의 도표 안에 모든 통계 수치를 제시하면 간명하기는 하나 보기에 다소 부담이 될 수 있어 새로운 수치가 나올 때마다 칸을 메워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위쪽에 노란 점선으로 된 연간 쌀 생산량 그래프다. 이를 연도별 수치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연도
한국사교과서
(단위:)
1920(大正9)
12,708
1921(10)
 
1922(11)
14,324
1923(12)
 
1924(13)
15,174
1925(14)
 
1926(昭和1)
14,773
1927(2)
 
1928(3)
17,298
1929(4)
 
1930(5)
13,511
 
여기서 의아스러운 것은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홀수 연도의 수치는 생략했다는 점이다. 제한된 지면 때문일 것으로 이해는 되나 생략된 상태에서 선으로 이었을 경우 전체 흐름이 왜곡될 수 있다. 통계의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교과서에 짝수 연도로만 표시된 이 통계 자료는 『한국근현대사사전』에 수록된 자료를 轉載(전재)한 것으로 보여 진다. 아래 한국사 교과서 옆에 이를 옮겨 적었다.
 
연도
한국사교과서
(단위:)
근현대사사전
(단위:)
1920(大正9)
12,708
12,708
1921(10)
 
14,882
1922(11)
14,324
14,324
1923(12)
 
15,014
1924(13)
15,174
15,174
1925(14)
 
13,219
1926(昭和1)
14,773
14,773
1927(2)
 
15,300
1928(3)
17,298
17,298
1929(4)
 
13,511
1930(5)
13,511
13,511
 
이 통계 자료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조선총독부, 「조선미곡요람」, 1937’이라고 출처를 명시하였으며, 『근현대사사전』에도 같은 출처가 표시되어 있다. 이를 확인하여 또 그 옆에 옮겨 적었다. 「조선미곡요람」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긴 하나 인터넷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연도
한국사교과서
(단위:)
근현대사사전
(단위:)
조선미곡요람
(‘37,단위:)
1920(大正9)
12,708
12,708
12,708,208
1921(10)
 
14,882
14,882,352
1922(11)
14,324
14,324
14,325,326
1923(12)
 
15,014
15,014,291
1924(13)
15,174
15,174
15,174,645
1925(14)
 
13,219
13,219,322
1926(昭和1)
14,773
14,773
14,773,102
1927(2)
 
15,300
15,300,707
1928(3)
17,298
17,298
17,298,887
1929(4)
 
13,511
13,511,725
1930(5)
13,511
13,511
13,701,746
 
 
천 단위 이하까지 표시된 「조선미곡요람」의 수치는 1930년도를 제외하고 모두 앞의 자료와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1930년도 수치가 「조선미곡요람」에는 ‘13,701,146’인 반면 두 자료에는 모두 ‘13.511’로 되어 있어 서로 다르다. 일단 교과서와 『근현대사사전』의 1930년대 수치가 오류임이 확인됐다. 이를 보면 교과서 집필자는 출전인 「조선미곡요람」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조선미곡요람」의 1930년도 생산량인 ‘13,701,146’이 옳은 것도 아니다. 1930년도는 조선이나 일본 모두 유례없는 풍작으로 ‘풍년기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쌀값이 폭락한 해다. 그런데도 이해 수확량이 전 해인 1929년보다 겨우 21만 섬 증가에 그치고 있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래 두 신문 기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금년도 조선미의 제1회 수확 예상고는 1,635만여 섬이라 한다. 그럼으로 미증유의 대풍으로 일컫든 작년도의 미실수고 1,918만여 섬에 비하면 실로 280만여 섬 즉 1할 4푼 7리의 감소를 보인다. 또 일본의 금년도 제1회 米수확 예상고를 보더라도 5796만여 섬이어서 작년도 실수고 6,687만여 섬에 비하면 890만여 섬, 즉 1할 3푼 3리의 감소이다.(1931. 10. 5. 동아일보 사설)
 
증수 백구십만 섬 - 조선미 위기 재현출
조선미의 금년도 제1회 수확 예상량은 18,254,898 섬으로 발표되었다. 작년도 實收量(실수량)에 비하야 1할 1푼의 증수이며 과거 7년간의 최풍, 최흉년을 제한 5개년 산술 평균 수확량 1,570만 섬에 비하면 실로 1할 6푼 强의 증수이어서 이 숫자를 그대로 믿는다고 하면 소화5년(1930)의 1,918만 섬을 내놓고는 다시없는 풍작이다.(1933. 10. 1. 동아일보 기사)
 
두 신문 기사에서는 1930년도의 조선 쌀 생산량을 ‘미증유의 풍작’, ‘다시없는 풍작’이라는 표현과 함께 ‘1,918만 섬’으로 적고 있다. 또 1931년 2월 11자 신문을 확인해 보니 ‘昨年朝鮮米實收, 千九百十八萬石’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전년도인 1930년의 생산량을 ‘19,183,135섬’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수치는 두 달 후인 4월 16일 총독부에서 ‘19,180,677섬’으로 정정 발표하였다. 결국, 1930년도 쌀 생산량은 ‘19,180,677섬’이 확정된 수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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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신문에서는 1930년도 쌀 생산량을 보도하면서 1926년부터 1930년까지 5개년 간의 쌀 생산량도 함께 제시하였다. 이를 아래의 「조선미곡요람」 옆에 옮겨 적었다.
 
연도
한국사교과서
(단위:)
근현대사사전
(단위:)
조선미곡요람
(‘37,단위:)
동아일보
(‘31.2.11)
1920(大正9)
12,708
12,708
12,708,208
 
1921(10)
 
14,882
14,882,352
 
1922(11)
14,324
14,324
14,325,326
 
1923(12)
 
15,014
15,014,291
 
1924(13)
15,174
15,174
15,174,645
 
1925(14)
 
13,219
13,219,322
 
1926(昭和1)
14,773
14,773
14,773,102
15,300,707
1927(2)
 
15,300
15,300,707
17,298,887
1928(3)
17,298
17,298
17,298,887
13,511,725
1929(4)
 
13,511
13,511,725
13,701,746
1930(5)
13,511
13,511
13,701,746
19,180,677
 
 
옮겨 적은 5개년의 수치를 「조선미곡요람」과 비교해보니 같은 수치가 한 칸씩 위로 밀려있다. 확인이 필요하여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중 1934년 일본 農林省(농림성) 米穀局(미곡국)에서 간행한 『米穀要覽(미곡요람)』(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1912년부터 1933년까지의 쌀 생산량 자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가 바로 그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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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穀要覽』 농림성 미곡국 발행, 1934

이 자료에 제시된 수치와 앞의 동아일보 기사에 보도된 5개년의 수치를 비교해보니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단 『미곡요람』의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자료를 더 검색한 결과 1934년 4월 3일자 동아일보에 ‘조선 累年 米收穫高表(누년미수확고표)’라는 자료가 있어 대조해보니 역시 『미곡요람』과 일치한다. 이어 조선총독부에서 매년 발표한 전년도 조선 쌀의 실제 수확고를 일일이 찾아 대조하고,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조선총독부 官報(관보)를 검토한 결과 농림성 미곡국의 『미곡요람』이 정확한 통계 자료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를 마지막 칸에 옮겨 전체 표를 완성하였다.
 
연도
한국사교과서
(단위:)
근현대사사전
(단위:)
조선미곡요람
(‘37,단위:)
동아일보
(‘31.2.11)
미곡요람
(‘34)
1920(大正9)
12,708
12,708
12,708,208
 
14,882,352
1921(10)
 
14,882
14,882,352
 
14,325,326
1922(11)
14,324
14,324
14,325,326
 
15,014,291
1923(12)
 
15,014
15,014,291
 
15,174,645
1924(13)
15,174
15,174
15,174,645
 
13,219,322
1925(14)
 
13,219
13,219,322
 
14,773,102
1926(昭和1)
14,773
14,773
14,773,102
15,300,707
15,300,707
1927(2)
 
15,300
15,300,707
17,298,887
17,298,887
1928(3)
17,298
17,298
17,298,887
13,511,725
13,511,725
1929(4)
 
13,511
13,511,725
13,701,746
13,701,746
1930(5)
13,511
13,511
13,701,746
19,180,677
19,180,677
 
이제 정확한 통계 자료인 『미곡요람』을 기준으로 나머지 자료를 살펴보면, 먼저 「조선미곡요람」은 모두 한 칸씩 미뤄서 적은 잘못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시험 보는 학생이 문제지에 표시한 답을 답안지로 옮기면서 한 칸씩 미뤄 쓴 것과 같다. 이렇게 잘못된 「조선미곡요람」의 통계 자료를 『근현대사사전』은 천 단위 이하를 切捨(절사)하여 전재하면서 1930년도 수치의 오류까지 추가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사전』의 잘못된 통계 자료를 인용하면서 홀수 해를 생략한 체 선그래프로 표시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가 아래 그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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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를 보면 1928년까지는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통계를 근거로 작성된 잘못된 그래프다. 이 그래프가 실상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똑같이 홀수 연도를 생략한 『미곡요람』의 그래프와 비교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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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요람』의 통계를 표시하는 붉은색 선그래프를 보고 ‘생산량이 차츰 늘어났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에는 홀수 연도의 생략 없이 온전한 『미곡요람』의 통계 그래프를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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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에서는 1927년과 1930년을 제외하면 생산량의 증가세를 발견할 수 없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교과서에서는 잘못된 통계 자료와 왜곡된 그래프를 제시하며 ‘쌀 생산량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서술하고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다음은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량이다. 1930년도는 미증유의 대풍년이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당시에는 조선뿐 아니라 일본도 대풍작이어서 대일 수출량은 줄어들고 덩달아 쌀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에게는 고통스러운 해였다. 특이한 것은 쌀값이 폭락하여 좁쌀 값에 근접하게 되자 조를 常食(상식)으로 하던 계층 중의 일부와 밀가루를 주로 먹던 중국인들이 쌀을 소비하면서 쌀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나 그 전해인 1929년보다 대략 50% 정도 증가하였다. 그런데 『근현대사사전』과 교과서에는 그 전 해와 똑같은 0.45의 최저 수치로 표시하였다. 이는 잘못이다.
 
1932년 1월 24일 동아일보의 ‘조선농촌경제와 米價 추세의 전망(二)’ 제하의 기사에 1인당 쌀 소비량도 제시되어 있다. 이를 『근현대사사전』에 수록된 자료와 비교해보면 1930년도 분만 잘못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연도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교과서
0.63
 
0.63
 
0.60
 
0.53
 
0.54
 
0.45
동아일보
0.630
0.673
0.635
0.651
0.605
0.528
0.533
0.525
0.541
0.452
0.677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교과서에서는 짝수 연도만 제시하여 사실을 왜곡하였다. 두 자료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본문이미지

본문이미지

위 그래프는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며, 아래는 1930년도의 올바른 수치와 함께 연도 생략 없이 표시된 그래프다. 이를 보면 교과서 그래프는 차츰 줄어드는 추세가 분명하나 아래 그래프는 꼭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사 교과서에서 산미 증식 계획과 관련하여 제시된 통계 그래프는 잘못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잘못된 그래프다. 이렇게 잘못된 통계 자료는 아래와 같이 수학능력시험 한국사 문제에도 출제되었다.
 
본문이미지
둘 다 산미 증식 계획 기간 중 국내 쌀 생산량을 제시하였으나 아래 표와 같이 같은 해의 생산량이 서로 다르다. 물론 정답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나 2016학년도 문제는 교과서에도 수록된 「조선미곡요람」의 잘못된 수치이며, 2014학년도 문제는 『미곡요람』의 정확한 수치이다. 교과서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을 경우 자칫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연도
1920
1922
1924
1926
1928
1930
1931
 
2016
12,708
 
15,174
 
17,298
 
 
조선미곡요람(‘37)
2014
1,488
1,501
1,322
1,530
1,351
1,918
1,587
미곡요람(‘34)
 
교과서의 잘못된 통계 자료는 현행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처음 수록된 것이 아니다. 2002년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국정 국사 교과서에 도표로 수록된 이후 검정 교과서에는 그래프로 수록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전체로 보면 16년째가 되는 셈이다.
 
혹자는 조선총독부 자료가 오류이기 때문에 동일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교과서 집필자는 조선총독부의 자료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며, 이를 근거로 한 『한국근현대사사전』의 오류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옮겨 실었다. 더구나, 리베르스쿨 교과서를 제외한 7종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는 모두 근현대사 전공자다. 근현대사 전공자이니만큼 1930년도가 미증유의 풍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당연히 이전 해와 변화가 거의 없는 1930년도 쌀 생산량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잘못된 통계 자료는 수정되지 않고 지금껏 수많은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이런 교과서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6-19 18:01   |  수정일 : 2017-11-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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