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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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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17)]
1920~30년대 쌀 수출인가? 수탈인가?(2) - 한국사 교과서의 중구난방 단어 사용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글 |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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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우리나라 2천만 인구의 80%는 농민이며 조선 경제의 유일한 수입원은 이들이 생산한 쌀이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20년 산미 증식 계획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대일 쌀 수출은 산미 증식 계획 이후 그 증가세가 뚜렷해진다.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조선미가 일본 쌀값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자 일본에서는 조선미 유입을 통제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게 된다. 이에 조선에서는 일본의 조선미 통제 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와 함께 미곡상인들을 중심으로 적극적 대처에 나서게 되는데 아래는 그와 관련된 당시의 신문 기사다.
 
일본서는 조선 쌀 移入을 제한하기 위하야 조선 쌀에 관세를 과하든지 월별로 법률로 이입을 제한하든지 최고 이입 액을 제한하여야 되겠다는 설이 있었으므로 조선 측에서는 그 완화에 노력하는 동시에 농업 창고와 상업 창고를 설립하여 경제작용으로 대일 移出을 제한해 왔다. 그러했지마는 최근 일본 농촌의 窮弊(궁폐)가 더욱 심해가매 그 대책의 일종으로 조선미 이입을 단순한 경제문제로만 아니라 사회문제로 생각하게 되어 경제작용 외에 강대한 힘으로 조선미를 압박하자는 설이 농림성을 비롯하여 일본적 여론으로 대두하였으므로, 조선 미곡 관계 업자를 비롯하여 재계관계자며 총독부에서까지 여론과 같이 극단의 조선미 이입 제한은 조선의 사활문제라고 하야 13일 오후 3시부터 총독부에 정무총감 식산국장 외 유력한 인사 13명이 모여 대책을 협의한 결과 순 민간 기관으로 ‘선미옹호기성회’를 조직하고 총독부를 편달하는 한편으로 조선미 옹호에 활동하게 되었다.(1932. 7. 15. 동아일보)
 
일본의 조선미 이입 통제정책은 일본으로 수입되는 조선미를 막아서 자국 내 농민과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일부 교과서의 표현처럼 일본이 수탈이나 약탈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 쌀을 강제로 빼앗아갔다면 굳이 조선미 수입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또, 조선은 일본의 수입 제한에 대응하여 연일 ‘조선미 통제 반대’를 주장하는 신문 사설을 실을 이유도 없고, ‘선미옹호기성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여 수입 제한에 대응할 이유도 없다.
 
1920~30년대에 조선이 무역으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은 쌀로, 그 쌀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었다. 그러한 대일 쌀 수출은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조선과 일본의 쌀 가격은 당시 신문에 거의 매일 게재되어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현행 교과서에는 일본이 우리 쌀을 수탈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에 의해 생산된 쌀은 일본이 수탈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1920~30년대 신문을 잠시만 확인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아래는 산미 증식 계획에 대한 리베르스쿨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다.
 
일제는 부족한 쌀을 우리나라에서 약탈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을 시행하였다. 이 기간에 많은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이 계획의 진행 과정에서 농민들은 고율의 소작료뿐 아니라 수리 조합비, 비료 대금, 토지 개량비 등 쌀 증산 비용까지 부담하는 이중적 수탈에 시달렸다. 산미증식계획은 1930년대 들어 일본의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지주들이 우리나라 쌀의 수입을 반대하여 1934년에 중단되었다.(리베르스쿨, 279)
 
이를 보면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약탈, 반출, 수입, 수탈 등 네 가지 용어를 사용했다. 반출의 주체는 조선인 반면 약탈・수입・수탈의 주체는 일본으로, 조선에서 반출했으면 일본에서는 반입을 해야 하고, 일본이 수입을 했으면 조선에서는 수출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수입도 하고 수탈도 하고 약탈까지 했다고 쓰고 있다. 수탈은 ‘강제로 빼앗음’이란 뜻이고, 약탈은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이란 뜻이다. 명색이 교과서인데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이렇듯 극명한 차이가 나는 단어를 쓰고 있다. 집필자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서술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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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르스쿨 한국사 교과서 253쪽

리베르스쿨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자는 고교 교사 3명, 중학교 교사 1명, 그리고 영어과 출신 회사 대표 1명을 포함하여 모두 역사 비전문가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가가 한 명도 없이 교과서를 집필했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본 단원 ‘일제강점과 민족운동의 전개’는 영어과 출신의 회사 대표가 단독으로 집필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교과서를 기대할 수 없는 집필진 구성이다. 아래의 나머지 교과서의 서술도 큰 차이가 없다.
 
교학사
그러나 일제는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 갔다. 반출로 지주의 경제력은 더욱 커졌으나, 농민들의 처지는 어려워졌다. <>일제 수탈(244)
금성출판사
그러나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더 많은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297)
동아출판
일제는 조선에서 쌀을 더 생산하여 일본으로 가져갈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쌀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훨씬 많은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반면 지주들은 쌀을 판매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
<> 쌀 생산량과 일본으로의 유출(217)
미래엔
그럼에도 쌀 반출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일본의 식량 사정은 개선되었지만 국내 식량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
<> 미곡 증산과 일제의 수탈(246)
비상교육
그리고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자주의 경제력은 커졌지만, 지주가 쌀 증산에 드는 비용을 소작농에게 전가하여 농민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 쌀 생산량과 일본으로의 유출(278)
지학사
쌀 생산을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정책이었다.
일제는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쌀을 가져갔다.
<> 쌀 생산량과 반출(286)
천재교육
이에 일제는 조선에서 쌀의 생산을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산미 증식 계획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으로 반출되는 쌀의 양이 계속 늘어났으며 조선의 인구도 날로 증가하여,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산미 증식계획은 추진 과정에서 토지 회사나 지주들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상기 7개 교과서도 리베르스쿨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여러 단어를 사용했다. 이 정도면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라 용어 사용의 다양성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는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로 언론이나 신문 기사에서 ‘수출’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늘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런데, 그의 주장과 달리 교과서에는 ‘수탈’로 되어 있다. 권희영 교수의 뜻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집필자의 뜻과 상관없이 임의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대표 집필자의 주장과 다르게 서술된 교학사 교과서와 비전문가가 쓴 리베르스쿨 교과서를 제외하면 수탈이라고 쓴 교과서는 미래엔 밖에 없다. 미래엔 교과서의 집필자가 산미 증식 계획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수탈’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수탈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동아출판의 판매라는 용어는 딱히 틀린 표현이라 할 수는 없으나, 국가 간의 무역에 사용할 단어는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사용한 ‘반출’이라는 단어다. 이는 말 그대로 ‘운반하여 보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반출을 위해서는 사전 조치인 대가 지불 등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쌀 뿐만 아니라 모든 수출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실어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반출이라는 단어에는 수출이란 전제가 붙는다. 이는 곧 표현만 달리 했을 뿐 수출이라는 용어와 동의어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수출이 아닌 반출로 썼을까? 혹시라도 수출이란 용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부담감 때문은 아닐까? 만에 하나 그러한 이유로 수출이 아닌 반출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자의 양심과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모든 교과서에 동일하게 서술된 내용이다.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일제는 증산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로 말미암아 국내 식량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생산되는 조, 수수, 콩 등 값싼 잡곡을 들여와 생계를 유지하였다.(리베르스쿨, 279)
 
앞부분에서 ‘증산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하여 마치 부당하게 빼앗긴 것처럼 서술하였으나, 일본은 산미 증식 계획으로 증산된 쌀을 시장 원리에 따라 수입한 것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어서, ‘국내 식량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값싼 잡곡을 들여와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였으나 이도 잘못된 서술이다. 조선인의 主食(주식)은 쌀이지만 80%에 이르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조[粟]를 常食(상식)으로 하였다. 이는 쌀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조밥이 맛이 있어서도 아니다. 조선의 농민들이 쌀밥 대신 조밥을 먹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경제적 궁핍’이다.
 
조선 농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작인은 추수 후 고율의 소작료를 납부하고 빚을 청산하고 나면 실제로 다른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 조보다 몇 배나 비싼 쌀을 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가령 쌀값이 대략 한 말에 3원이고 조가 1원일 경우에는 쌀을 팔아서 조를 3말이나 살 수 있다. 결국 쌀밥을 먹고 안 먹고는 구매력의 문제이지 일본 수출로 인한 쌀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1930년 조선과 일본의 대풍작으로 쌀값이 폭락하여 조값에 근접하게 되자 쌀 소비량이 50% 정도 증가한 경우가 있다. 아래의 신문 기사는 당시 우리 농민의 어려운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 농민도 쌀밥을 먹고 싶어 하나 조밥을 먹게 되며, 조밥이나마 구하나 얻지 못하는 빈약한 구매력의 소지자이다. 과거 2~3년간 수재와 한재로 흉작의 비참함을 당하다가 금년엔 3백여만 섬이 증가되었으나 도리어 미증유의 미가 폭락으로 구매력의 증대는 고사하고 일반 농민은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하며 일본시장은 조선미의 배척을 결의하지 않았는가. 불과 3백여만 섬 증가도 소비하기 불능한 일본시장을 상대로 한 8백 2십만 섬의 산미증식안의 前途(전도)는 이미 운명을 缺(결)한 것이 아니냐.(1930.10. 25. 동아일보 사설)
 
1920~30년대 일본은 조선에서 산미 증식 계획의 추진으로 상당한 양의 쌀을 증산하였으며 이렇게 증산된 쌀의 많은 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이를 두고 일본이 우리 농민들을 수탈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당시의 수탈과 착취는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물론 조선 소작인을 가혹하게 착취한 지주에 동척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수탈과 착취는 그것대로 연구하여 서술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그들의 착취 행위를 시장 원리에 의해 진행된 수출에 전가하여 ‘수탈’ 당했다고 하는 것은 올바를 역사 서술이라 할 수 없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6-16 10:17   |  수정일 : 2017-06-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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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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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 2017-06-16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정말 명쾌한 비판이네요. 사실 학자 수준의 전문성이 없더라도, 성인이라면 쉽게 판명할 수 있는 일을, 왜곡하거나 날조해서 교과서에 싣는다는 현실이 참 암울하게 느껴지네요. 또 왜곡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면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되는데, 저렇게 여러 용어들을 혼동시켜서 주장을 애매모호하게 하는 것도 참 안타깝네요. 아마도 용어혼동을 감수해서라도 '일본은 나빴다'라는 함의만 전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또 한자교육이 부실해서 생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용어혼동문제가 교과서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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