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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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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모던 뉘우스 - 머리 깎고 양복 입으며 축음기를 듣지만...

⊙ 조선옷, 다듬이질과 재봉하며 옷에 시간과 노력 바쳐
⊙ 양복, 노동하거나 사무보는 데 조선옷보다 편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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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문인의 모습. 양복과 두루마기, 한복을 고루 입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광수, 이선희, 모윤숙, 최정희, 김동환.
한국근대의 의식주 변화는 단발령(1895) 이후 급격히 진행된다. 조선조 말기의 외인(外人)의 눈에 비친 변발의 이전과 이후 모습은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의 《조선교회사서론》(1874)과 러시아 대장성이 조사한 《한국지(韓國誌)》(1905)에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의복 역시 마찬가지다. 양복이 개화의 상징이 됐으며 한복은 구시대의 상징으로 변모됐다. 양복과 한복을 바라보는 당대 지식인의 시선 변화는 이갑수(李甲秀·1899~1973)의 〈양복과 조선복의 장단점〉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 글은 1932년 잡지 《실생활》 9월호에 실렸다.
 
  이갑수는 경성의대를 졸업하고 한국인 중 처음으로 1924년 독일 베를린대에서 내과 의술을 배워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이 글에서 ‘조선옷은 옷됨이 너그러워 자유스럽지만 집무에 불편하고 옷감에 돈이 더 든다’고 꼬집는다.
 
1930년대 중반 일간지에 실린 미국산 중고 양복 판매 광고. (출처=www.theartist.co.kr)
  1932년 잡지 《동광》 8월호에 실린 경성제대병원 김성진(金晟眞·1905~ 1991)의 〈우리 가정의 위생적 생활개선〉에서도 의복 문제가 거론된다.
 
  그는 ‘다듬이질을 하거나 방망이질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옷이 상하기 때문이다. 김성진은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 학장, 보건사회부 장관, 국회의원, 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현대어 표기로 고치되 원문을 살려 옮겨 적는다.
 

  양복과 조선복의 장단점
  독일의학박사 이갑수
 
1932년 잡지 《실생활》 9월호에 실린 이갑수의 〈양복과 조선복의 장단점〉.
  조선옷의 장점을 말하면 나의 사견으로는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로 조선옷의 장점이란 것을 말하면 조선옷은 위생상 대단히 좋다. 옷이 너그러워서 몸을 구속하는 데가 없이 혈액의 순환이 잘되며 옷이 널찍널찍해서 공기가 잘 통하고 해서 위생상으로는 조선옷이 퍽 좋다. 그러나 여자의 옷만은 여러 가지 점으로 불위생이다. 그리고 조선옷은 또 다른 나라 옷보다 입고 있는 외양이 우아하고 위의(威儀)가 있다. 이런 것들이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단점으로는,
 
  (가) 조선옷은 옷됨이 너그럽게 되어 몸 놀리기가 자유스럽고 편해서 안일(安逸)한 만큼 입는 사람에게 자연히 나타(懶惰)한 기분을 갖게 한다. 기거(起居)동작이 편하기 때문에 조선옷을 입고서는 어디든지 오래 앉아 있게 되며 드러눕거나 하는 등 맘대로 뒹굴게 되어 빨빨한 기운이 저절로 죽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옷간 기거동작이 느려지며 게을러지게 한다.
 
  (나) 경제상으로 보아 조선옷은 단점이 많다. 옷감에 돈이 더 든대서 불경제라는 것이 아니다. 조선옷은 옷이 쉬 더럽기 때문에 여러 번 빨게 되는데 옷을 빨 때에 옷이 해지는 것은 둘째 문제로 하고 다듬이질을 하며 옷을 다시 재봉하며 하는 동안 여자는 아주 옷에만 시간과 노력을 바치게 된다. 여자가 이렇게 옷에만 힘을 쓰게 되는 고로 다른 일에는 돌아볼 여가가 없게 된다.
 
  그리고 옷을 자주 빨아 입으려면 금전의 소모도 불소(不少)하다. 조선옷은 또 의복감 거기에 결점이 있어서 그런지 며칠이 못 되어 후줄그레지며 비 같은 것을 맞으면 두 번 다시 그대로 입을 수 없게 되는 등 경제적으로 단점이 많다.
 
1930년대 일본 도시샤 여자전문학교 학생들. 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이다.
이들은 유학 중에도 여전히 한복을 입었다.
  (다) 조선옷은 또 집무하는 데 불편하다. 노동을 하거나 사무를 보고 하는 데는 지금의 조선옷은 양복보다는 불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바일 것이다.
 
  양복에 대해서 말하면 그 장점은 조선복을 입으면 기분이 나(懶)해지는 점과는 반대로 양복을 입으면 용기가 나는 듯하며 근(勤)한 기분 즉, 발발(潑潑)해지는 듯하며 민활(敏活)해지는 것이다. 양복의 옷됨이 가뜬하고 또 조선옷처럼 거추장스럽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몸의 동작이 빨랑빨랑해지며 늘 동작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저절로 심신이 느릿느릿해지지 않게 되고 근하게 되며 힘을 내게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경제를 해입으면 경제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복은 그다지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비교적 조선옷보다는 비위생적이다. 팽팽하고 쫄리는 데가 있고 또 내의가 몸에 꼭 붙어 있고 너그럽지 못해서 혈액의 순환에나 공기의 유통, 광선의 흡수 등이 덜되기 때문에 위생상 좋지 못하다.
 
  양복, 조선복의 장단점은 대개 위에 말한 것과 같은데 우리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의복을 입을 것인가? 양복으로 지낼 것인지 조선옷을 입을 것인지 이중으로 입을 것인지 이에 대하야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역사가 있고 우리 문화의 산물인 우리 옷을 버릴 수 없으며 또 그대로 입기도 무엇하니까 이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불만이 없도록 하기 위하야 다듬이질이나 세탁할 적마다 선봉(綫縫)하는 것이나 백색이나를 폐지해서 손이 덜 걸리게 할 것이고 기분이 나(懶)하여지지 않도록 정도까지 옷의 양식을 고치어 집무에 불편이 없도록 옷의 광장(廣長)을 줄이고 옷고름을 폐지하며 옷의 제도를 고치고 양복의 내의와 같이 속옷을 입고 지내며 적어도 2~3개월간은 계속해 입도록만 개량한다면 우리 조선옷은 어떠한 나라 옷보다도 가장 좋을 것이다.
 
  (출처=1932년 《실생활》 9월호, p19~20)
 

  우리 가정의 위생적 생활개선
  경성제대병원 김성진
 
  남편이 밖으로 나가는 원인
 
1932년 잡지 《동광》 8월호에 실린 김성진의 〈우리 가정의 위생적 생활개선〉.
  대단히 덥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생활을 좀 더 행복스럽게, 좀 더 건전하게 하는 문제에 대하야 잠시 생각하야 보고저 합니다.
 
  19세기 말부터 지속하야온 물질문명은 20세기에 이르러 ○○(판독불가-편집자註)한 발달을 보이어 우리 생활에 많은 이복(利福)을 주었습니다. 항공, 무선전화의 실용화는 세계를 비상히 축소하였으며 기계과학의 응용으로 사회생활을 간편, 단순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조선에도 이 문명의 서광이 비치어서 일찍이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었으며 축음기를 듣고 발성영화를 보러 다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소위 문화생활을 한다는 현대인의 가정에 들어가서 그의 내면생활을 살피어 볼 때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불합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가정을 상상하야 보시오.
 
  그는 맥고(麥藁)모자가 찌그러지지 아니 하도록 조심스럽게 얕은 문을 움츠리고 들어옵니다. 몰취미인 가정에는 장독, 장작 등이 놓여 있고 좁은 마루에는 밥상, 화로, 도마, 식기 등이 꼭 차서 구두끈을 끄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녁 준비에 골몰한 주부의 종 다듬질을 보십시오. 방으로 마루로 뜰로 장광으로 부엌으로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야 참으로 불이 날 것 같습니다. 어둠침침한 방 안은 어떻습니까! 파리의 떼가 천진스럽게 자고 있는 어린 아손(兒孫)의 얼골에 진을 치고 방구석에 놓이어 있는 변기로는 악취가 발산합니다. 빈대피로 서책을 친 벽에는 입던 옷, 입는 옷, 입을 옷이 무질서하게 걸리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가정에는 아무 취미도 오락도 없어 그에게는 이곳은 밥을 먹여 주는 집, 그리고 잠을 재워 주는 집임을 인식할 뿐입니다.
 
  이 사실은 마침내 저녁 후에 똑같은 환경에 있어 그를 방문한 그의 우인(友人)과 함께 그가 가정에 있어 얻지 못한 위안을 주류나 도박장에 구하려고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의 예일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과도기에 있는 급조문맹인의 가정에는 왕왕이 이러한 기형적 문화생활이 현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생활개선의 의미가 있으니 근일 신문, 잡지에, 혹은 의연회(議演會)에서, 이 문제가 중시되는 소이(所以)라고 생각합니다. 대저 생활개선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은 어려운 것입니다. 즉 우리의 가정에는 수백 년 인습에 의한 습관이 있고 또 이것을 고수하고저 하는 노인이 계십니다. 또 한 가지 어려운 문제는 살림이 곤궁한 것이지마는 이러한 주위사정에 속박되어 졸연히 개혁은 되지 않습니다. 점진적으로 한 가지씩 한 가지씩 개선하야 가는 동안에 우리의 이상에 가깝도록 힘쓰는 것이 생활개선 운동의 실행방법일 것입니다.(중략)
 
 
  의복-백의(白衣)를 입을까 색의(色衣)를 입을까
 
  다음은 우리의 입는 의복에 대하야 생각하야 보겠습니다. 조선인은 백의민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의복을 입어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모이신 여러분의 옷도 대부분이 흰옷입니다.
 
  근래에 와서 백의는 너무나 단순한 취미이며 또 쉬이 더러워지니까 자주 세탁을 요하야 경제이니 색의로 개량하자는 운동이 성행합니다.
 
  대저 의복은 신체의 보호와 외계온도에 관한 조절이 목적이고 경편(輕便)과 청결이 생명이니까 이 점만 만족한다면 백의이고 색의이고 무관할 것입니다.
 
  백의가 자주 세탁을 요(要)하야 불경제라고 색의를 하여 입고 1~2년 그대로 입고 지낸다 하면 위생에 괴로웁게 되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불경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요는 세탁법을 개선하야 방망이로 두드리거나 다듬이질을 하는 것을 철폐하야 의복의 손상을 아니 하도록 하는 것이 백의를 색의로 개량하는 것보다 선무일 줄 압니다.
 
  (출처=1932년 《동광》 8월호, p63~69)⊙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8 09:35   |  수정일 : 2017-05-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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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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