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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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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하는가?...집안에서 쫓겨난 뒤 장원급제, 대제학에 오른 김안국 이야기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 중국 화가 마경운의 〈백락마상도(伯樂馬上圖)〉.
백두용(白斗鏞)이 편찬한 《동상기찬(東廂記纂)》에는 김안국(金安國)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은 성종, 중종 때의 인물이다. 이 〈김안국전〉은 허구가 가미된 픽션이다. 실존인물 김안국의 아버지는 참봉 김연(金璉)이며, 그의 동생도 김정국(金正國)이란 것을 안다면, 이 이야기가 모두 지어냈음을 알 수 있다.
 
  김안국의 아버지는 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김숙이었다. 판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자리지만, 대제학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 아니면 앉을 수 없는 청직(淸職)이다. 김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위로 3대 모두가 대제학을 지냈으니, 이 가문의 명망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이런 명문가의 주인인 김숙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의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듬직해 김숙은 너무나 기뻤다. 용이 용을 낳은 격이었다.
 
  “진정 우리 집안의 자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린 아들이 맹탕인 거였다. “하늘 천 따 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거였다. 무슨 대단하고 어려운 것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작부터 콱 막히니 아버지 김숙은 뜨악했다. ‘아니 이렇게 총명하게 생겼는데 어찌 이러는 건가? 너무 어려 그런가?’
 
  김숙은 몇 년을 기다렸지만 웬걸, 여전히 하늘 천, 따 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밤낮으로 가르치고 틈만 나면 꾸짖고 깨치게 하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 김안국의 나이가 열네 살이 되었다. 아버지는 막막했다. 이젠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의 문제였다.
 
  ‘세상에 어찌 저런 놈이 있을까? 저놈 때문에 조상님 얼굴에 똥칠을 하고 우리 가문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겠구나.’ 안국의 동생 안세는 비록 용모는 그보다는 처지지만 재주와 영리함은 나았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은….’ 김숙은 머리가 지끈지끈 터질 듯이 아파 왔다. 차라리 한미한 집안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체념하겠지만, 명문가에선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안국의 은밀한 속사정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필적.
  연일 골치를 썩는 김숙에게 어느 날, 사촌 동생 김청이 안동 지방 통판(通判)으로 가게 되었다며 인사를 왔다. 김숙은 김청에게 아들 김안국을 딸려 보내며, 종적이 탄로 나지 않게 영영 안동 지방 사람으로 만들어 거기서 살게 하라고 당부했다.
 
  “형님, 글을 모른다고 자식을 쫓아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안국의 용모가 비범하니 집안을 돌보고 조상님 제사를 받드는 일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청은 아들을 의절해서 버리려는 사촌 형 김숙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김숙은 단호했다. 떠나는 김안국에게 차갑게 말했다.
 
  “이제부터 난 너를 아들로 여기지 않겠다. 너도 나를 아비로 여기지 마라. 그리고 다시는 서울에 오지 마라. 만약 오면 죽여 버리겠다.” 김청은 어쩔 수 없이 조카 김안국을 데리고 안동으로 내려갔다.
 
  김청이 안국을 보니 비범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촌 형의 처사가 과도해 보였다. 그래서 자신이 그에게 글을 가르쳐 보았다. 하지만 이 갑갑한 자식은 정말 철벽이었다. 비로소 사촌 형의 마음이 이해됐다.
 
  “넌 대체 왜 이리 글공부를 못하느냐?”
 
  “저는 어려서부터 심심풀이 잡담을 들으면 정신이 저절로 맑아져 밤낮으로 이야기를 들어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자만 보면 해득(解得)도 못할 뿐만 아니라 글자라는 말만 들어도 정신이 저절로 흐릿해지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옵니다. 숙부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달게 죽겠지만, 글공부는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결국 김청도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서 사촌 형 김숙의 말대로 그를 안동 지방의 평범한 향반(鄕班)으로 살게 하려고 사람을 물색했다. 안동 지방의 좌수(座首) 이유신은 집안도 넉넉한 데다 딸이 있단 소리를 들었다. 좌수는 지방 양반들의 우두머리로 세력이 막강한 데다가 선비의 고향인 안동 지방 좌수이니 이유신 정도면 적당해 보였다. 그를 불러 김안국과의 혼사를 말했다.
 
  “판서로 계신 우리 사촌 형님의 첫째 아들이오.” 이유신이 들으니 이건 이해가 안 되는 소리였다. 안동 좌수라고는 하나 결국 향반일 뿐이었다. 그런데 고관대작의, 그것도 첫째 아들이라면 가문을 이을 인재인데, 자신처럼 한미한 집안과 성혼을 하겠다니, 말이 안 되었다. 무슨 야료가 있어 보였다. ‘첩에게서 난 서자(庶子)가 아닐까?’ 주변을 탐문해 보니 아니었다. 처에게서 난 적장자(嫡長子)가 분명했다. ‘그럼 병신일 게로군. 소경 아니면 벙어리?’
 
  김청의 주선으로 직접 김안국을 만나보니, 병신은 무슨 소리, 훤칠한 키에 그린 듯한 눈썹, 맑고 시원시원한 음성, 그야말로 손꼽히는 꽃미남 상남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었다. 요즘 상황에 빗대면, 세계적인 재벌 집안의 첫째 아들이 시골의 그럭저럭 유복한 슈퍼마켓 딸과 결혼하겠다고 나선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왜 의심이 되지 않겠는가.
 
  ‘혹시… 고자(鼓子)여서…?’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이유신의 속마음을 알아챈 김청이 김안국에게 바지를 벗어 보이게 했다. 살펴보니 세상에 실한 것이 고자도 아니었다. 이쯤 되니 이유신은 도깨비에 홀린 듯했다. 결국 김청이 이유신에게 속사정을 말했고, 그러자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지방 향반으로 대제학의 아들과 결혼하면 됐지. 무슨 문장을 잘해서 벼슬하기를 바라겠는가. 비록 쫓겨난 신세이나 내가 거둬 보살펴주면 우리 집안에 해될 건 없다.’ 그렇게 김안국은 안동 지방 향반 이유신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숙부인 김청은 벼슬에서 놓여 서울로 올라갔다. 김청이 사촌 형 김숙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아버지 김숙은 잘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골치 아픈 혹을 훅 떼어낸 거였다.
 
 
  “우리, 옛날이야기나 하며 놀아요”
 
김안국과 이언적이 함께 제향된 경북 의성군의 빙계서원. 1576년(선조 9년)에 장천(長川)이라고 사액됐다가, 1600년(선조 33년) 이건(移建)하면서 빙계서원으로 개칭했다.
  한편, 안국은 처가에 얹혀 데릴사위로 살게 되었다. 장인 이유신은 들은 바가 있으니 그를 가르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데릴사위인 데다가 곁방살이를 하는 김안국은 한마디로 천덕꾸러기 식충이였다. 그도 바보가 아니니 제 상황과 처지를 잘 알았다. 아예 맹탕이니 사람들을 만나 할 말도 없고 교유할 건더기도 없었다. 노비나 상민들의 눈길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고 그저 밥만 축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부인이었다. 옛날 성혼이 그렇듯이, 그녀는 아버지가 결정한 대로 그냥 따라 결혼했기에 남편의 은밀한 속사정은 전혀 몰랐다.
 
  “대장부께서 어찌 방 안에서 꼼짝을 안 하십니까? 입신양명하고 부모를 영예롭게 하는 데 글공부만 한 것이 없는데 어찌 공부를 안 하십니까?”
 
  김안국이 미간을 찌푸리며 제 속사정을 설명했다. 글공부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터질 듯이 지끈거린단 말도, 그리고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부인은 친정아버지나 오라버니가 글재주가 있으니 같이 공부하라 권유했다가, 크게 한소리 면박만 당했다.
 
  부인 생각에 지금 이 상황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이 이렇게 지내는 것 자체가 한스럽게 여겨졌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거였다. 본래 그녀도 유복한 향반 집안의 딸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남몰래 글을 읽었고 또한 총명했다. 보다 못한 부인이 한 가지 방법을 냈다.
 
  “저희 옛날이야기나 하며 놀아요.”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듯 풀어서 들려주었다. 본래 안국은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데다 한 번 들으면 절대 까먹지도 않았다. 재미있게 듣는 것은 물론이고 들은 이야기를 말해보라 하자 줄줄줄 한 대목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너무 기뻤다.
 
  ‘서방님은 탁월한 재주가 있었구나. 그 재주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내 반드시 서방님의 총명함을 드러내겠다.’ 그러고는 《사기(史記)》를 비롯한 제자백가와 경서, 인물전 등등 수많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로 들려줬고, 김안국은 그것을 몽땅 다 외워 버렸다. 비로소 어느 날 안국이 궁금함을 물었다.
 
  “아니 부인이 매일 들려준 이야기는 다 어디서 난 거요?”
 
  “그것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 글이라는 거예요.”
 
  “글?”
 
  “네.”
 
  “정말 글이란 것이 그토록 재미있는 거란 말이오? 그렇다면 내가 머리 아파할 일이 없지 않소. 내 오늘부터 글공부를 해보겠소.” 그렇게 해서 김안국은 글자를 배웠고 아내가 짚어주는 대로 〈사략(史略)〉의 구절구절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본래 영특한 데다 명민한 안국은 비로소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스스로 해득하고 깨치는 재미가 무궁무진했다.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날마다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며 아내에게 글 쓰는 법과 문장 짓는 법까지 배웠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비로소 안국이 의관을 정제하고 곁방에서 나와 사랑채로 갔다. 장인과 처남들이 깜짝 놀랐다. 10년 동안 한 번도 내왕하지 않아 보지 못했던 그가 나타난 데다, 그의 도도한 언술과 문장을 보고 듣고 경악했다. 장인이 놀라 딸에게 달려가 전후 사정을 들었다.
 
  차츰 안국의 문장과 재주가 날로 발전하여 안동 지방에서 감히 겨룰 자가 없게 되었고, 급기야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10년 전 “다시 네놈을 보게 되면 죽여 버리겠다”는 서슬 퍼런 음성이 생생했기에 안국은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을 길러주었던 유모 집에 숨어 지냈다. 몰래 모친과 동생은 만났지만 아버지 앞에는 끝내 나타나지 못했다.
 
  그렇게 과거를 치렀고 장원급제를 했다. 시험지에 ‘김숙의 아들 김안국’이라고 썼으니, 고시관들이 모두 다 김숙의 집에 몰려와서 큰 목소리로 “오늘 과거에서 급제한 김안국은 나오시오”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분노가 폭발했다.
 
  죽은 듯이 지내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아들놈이 올라온 것도 그렇지만, 분명 맹탕인 놈이 과거에 급제했다면 비리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완전히 가문을 결딴낼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김숙은 수소문해서 김안국을 잡아오라 했다. 그렇게 유모 집에서 끌려온 김안국을 하인들을 시켜 몽둥이로 때려죽이려 했다.
 
  고시관이 겨우 뜯어말리며, 정말 김안국이 지은 것이 맞다는 것을 누차 설명하며 확인시킨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 김숙이 깨닫게 되었다. “하늘 천 따 지”도 떼지 못하던 김안국이 당대의 명문장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하하,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참으로 놀랍구나. 우리 선조님의 혁혁한 명성이 이제야 떨치게 되었구나.” 그렇게 해서 김안국은 관직에 나가게 되었고, 한림으로 시작해서 대제학에 이르게 되었다.
 
 
  눈먼 조련사들
 
김안국이 지은 15권 7책의 《모재집(慕齋集)》.
  당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마설(馬說)》은 유명한 이야기다. 세상에 백락(佰樂)이 있어야만 천리마(千里馬)가 있는 법이다[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비록 좋은 명마(名馬)가 있어도 단지 어리석은 노예의 손에 잡혀 모욕을 당하면 마구간에서 보통 말들과 나란히 있다 죽는다. 천리마라는 평판을 들을 수 없다.
 
  때때로 천리마는 한 끼에 한 섬의 곡식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하지만 말 먹이는 자가 그것을 몰라 제 맘대로 먹인다. 그러니 천 리를 달릴 능력이 있어도 배가 차지 않으니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재능이 탁월하지만 밖으로 드러날 수가 없고, 보통 말들과 같이 되려 해도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하루에 천 리를 달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명마를 부리되 도리에 맞게 하지 않고, 여물을 먹이되 그 분량에 맞게 먹이지 못하니, 명마가 울어 뜻을 표하지만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채찍을 들고 달려들며 으르렁거린다.
 
  “세상에 제대로 된 말 하나 없어.” 아하, 세상에 정말로 좋은 말이 없는 것일까, 좋은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설(說)’이란 본래 풀어 설명하는 한문 양식이고, 한유처럼 탁월한 문장가의 설명에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 글의 핵심이 세상에는 진(秦) 목공(穆公) 때 손양[孫陽: 字가 佰樂]처럼 탁월한 인물이 없는 거지, 천리마가 될 만한 명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만 알면 된다. 언제나 문제는 눈먼 조련사들의 어리석은 짓거리다.
 
  김안국은 천리마가 될 만한 명마였다. 그의 자질은 탁월했다. 하지만 능력이 발현되지 못했다. 그를 가르치려 한 사람이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타까워했고, 괴로워했으며 때론 스스로 미칠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아버지 김숙이 그렇다. 인내심도 있었다. 그를 자그마치 14년 동안 가르치려 했으니 말이다.
 
  숙부 김청도 가르치려 했다. 아버지 김숙보다 나았던 점은 그가 비로소 김안국의 속내를 들었다는 거다. 명마가 히히힝 거리며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던 거다. 사실 김안국은 처음부터 그랬다. 누구를 만나든 ‘이야기는 저절로 술술 다 외워지지만 글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터질 듯하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아버지 김숙은 그 명마의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채찍질을 하며 끌고 가려 했을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 말인 안국의 동생만도 못한 얼간이 무지렁이가 되었던 거다. 그런데 숙부 김청은 명마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울음을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울음소리에 “어휴, 형님이 널 버린 이유가 있구나”라고 탄식했던 거다.
 
  장인 이유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처음부터 단정하고 무시했다. 그냥 곁방살이하는 데릴사위 식충이로 여기고 10년을 방치했다. 그를 탓할 것은 아니다. 혹시 명마를 천리마로 키워낸 영광이 돌아온다면 그 어떤 부스러기도 그의 것이 될 것은 없다.
 
 
  곁문으로 들어가 대문을 여는 지혜
 
  부인은 달랐다. 그녀는 배고픈 명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의 뜻을 헤아렸다. 《동상기찬》의 편찬자 백두용이 〈김안국전〉을 논평하면서 그의 상태를 이렇게 비유했다.
 
  “큰 집의 대문이 있고 옆에 작은 곁문이 있다. 대문은 꽉 잠겨 있고 곁문은 활짝 열려 있다. 사람들이 대문을 열려고 하루종일 매달려 두드리고 때리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문을 노크해 보고 잠긴 걸 알고는 문득 옆에 열려 있는 곁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대문의 빗장을 풀고 열었다.”
 
  부인이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김안국전〉의 편찬자 백두용이 “세상에 곁문으로 들어가 대문을 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 쓸쓸한 논평은 곧 한유가 “세상에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백락이 없는 것인가?”라는 탄식과 같은 말이다.
 
  어떻게 부인은 할 수 있었을까? 그건 그녀의 목적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숙은 아들의 행복보다는 가문의 명예와 위신이 먼저였고, 숙부 김청은 조카 김안국의 인생보다는 의아함과 안타까움이 앞섰다. 장인 이유신은 권세가의 자제를 얻은 것으로 만족했을 따름이다.
 
  그 누구도 김안국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의 행복이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명마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들을 수 없었던 거다. 단지 부인만이 김안국을 김안국으로 받아줬다. 명마인지 보통 말인지 아니면 정말 졸렬한 말인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그를 받아주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차이를 갈랐다. 어쩌면 백락이 백락인 이유가 이것일 것 같다. 말을 사랑하지 않는 조련사는 천지가 개벽해도 백락이 될 수 없는 이유 말이다.
 
  ‘사람은 변하는가?’를 두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생래적 유전자와 획득적 경험이 반반 확률로 끼어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단,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만 변한다. 그것이 어쩌면 유전자를 뛰어넘어 인간이 발전해 온 역사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교육은, 가르침은, 부모의 훈계는, 사회의 목탁과 경종은 선천적 결정을 뒤흔들기에 가당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꾸준히 지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 사랑의 시선으로 말이다. 김안국의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꼭 그래야 한다.
 
  변한다는 것은 변하기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고 흥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속 시원히 단칼에 결판내고 떨쳐 버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기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명마를 천리마로 만드는 비결이고 곁문으로 들어가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지혜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5-18 10:53   |  수정일 : 2017-05-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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