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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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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 해외 문화재 환수 관련 공약이 전혀 없다 !

지역공동체의 기억이 저장된 문화유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활동 높아져
일제강점기 불법징발당하고..중앙정부가 부당 수집한 유산의 회복
지방분권과 지역문화발전에 기여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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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화첩, 2005년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영구임대형식으로 반환. 80년만에 귀환하였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 중 문화재환수는 필수
 
 제19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다. 저마다 공약을 발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 문화유산의 회복이라는 과제에 있어 아직까지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아도 이에 대한 발표는 없다. 해방이후 역대정부는 문화재의 반환이라는 결과를 국민 앞에 내 놓았다.
 
 대표적인 사례만 살펴보자. 이승만 정부는 54년 미국 국무부로부터 삼인검(三寅劍)를 돌려받았다. 박정희정부는 65년 한일문화재협정으로 전적류, 고고미술품 등 1,326점을 인도(引渡)받았다. 전두환 정부는 85년 대한제국시기 의사인 알렌박사가 남긴 사진첩을 기증받았다. 91년 노태우 정부는 일본에 있는 영친왕비 복식을 일본 정부와 협상 끝에 환수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프랑스와 고속철도도입건과 연계하여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교장각의궤의 반환을 시도, 미테랑 대통령 방한 때 휘경원원소도감을 반환받았지만 전부가 귀환하기까지 18년이 더 걸렸다. 이 시기 조선총독 데라우찌가 대여해간 문고의 일부가 경남대에 인도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고려동종과 오층석탑 등을 재일교포 등으로부터 기증 받아 국립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야스쿠니신사에서 학대당하던 북관대첩비를 100년 만에 귀환하였고 겸재정선화첩과 조선왕조실록 47책을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환수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가 추진하던 조선왕실도서를 프랑스와 일본으로 돌려받음으로 해방이후 양적으로 보면 최대의 결실을 맺었지만, 외규장각의궤는 5년씩 갱신임대조건에 합의함으로 명백한 약탈 사실을 세탁하여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오마바대통령이 방한한 2014년 대한제국 국새 등 9점을 돌려받았지만, 이것은 미국주도의 문화재반환을 실행한 결과이다. 미국은 1998년 워싱턴 회의를 통해 소장품의 기원내력(provenance)를 실천해야 한다고 결정하였고 취득과정에서 불법이 인정된 것은 물론 기원국으로 반환하는 것이 정의(justice)의 실현이라 보았다.
 
   2012년 처음으로 국외문화재의 환수를 전담할 정부기구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되었지만, 재단의 역할은 미미하였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재단이 환수한 문화재는 곽분양행락도 1점, 칠성도 3점, 지장시왕도 1점 등 5건 7점에 불과하였고 방식은 경매에 나온 것을 당사자를 앞세워 구매한 것이다. 이는 취득경위 등 과거 내력조사가 무시됨으로 '역사 세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2013~2016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환수 결과 
 
구분
문화재명
환수방식
금 액
현 소장처
2013
석가삼존도 1
기증
200,000 달러
(라이엇게임즈코리아 후원금)
국립중앙박물관
2014
곽분양행락도 1
경매
60,000 달러
(문화재청 긴급매입비)
국립고궁박물관
2015
칠성도 3
경매
78,500 스위스프랑
(범어사 예산부담)
범어사
팔금강도 1
경매
구입비용 비공개
(직지사 예산부담)
직지성보박물관
2016
지장시왕도 1
경매
구입비용 비공개
(조계종 예산부담)
불교중앙박물관
                       
 
지역주민들의 문화유산회복 높아지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문화유산이 수없이 많다. 이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2015년 문화재보호법의 개정으로 지방정부도 문화재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섬으로 향후 국내외 소장기관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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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이게 최선입니까. 완주 봉림사에 소재하던 것을 일제강점기 농장주 시마타니 야소야가 일본으로 반출하지 못하고 농장터에 남겨두었다. 농장은 현재 발산 초등학교로 변했고, 석탑과 석조물들은 학교 뒷편 습기 가득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현재 국외반출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활동하는 광역단체는 서울시 , 경기도, 충청남도가 조례 제정을 통해 근거를 마련하였고, 2016년 11월 영호남 기초단체 16곳이 고대 가야문화권을 되찾기 위해 단체장들이 모인바 있다.
 
또한 경남 진주, 경기 이천, 경남 양산, 강원 속초 등이 국외반출문화재의 환수 활동을 하고 있고, 강원 원주, 경북 안동, 충남 아산, 경남 김해, 충남 서산 등은 국내 소재 문화재의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차기 정부는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한다. 특히 국외소재문화재의 경우 출처조사의 어려움과 소장기관과의 오랜 협상을 지원해야 할 국외소재문화재단의 역할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환수보다는 현지 활용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재단설립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아울러 국립박물관 등이 일제강점기에 징발당한 유물을 인계받고, 폐사지, 매장지 출토과정에서 수집한 유물의 원상회복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문화유산회복위원회>를 설치.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유물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기억의 공유가 역사이고, 역사는 유산을 통해 증거 된다
 
 지난 3월 21일 대전고법 부석사관음상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부석사 측에 대략 16가지, A4 두 장에 빼곡히 정리된 석명 요청을 하였다. 핵심은 부석사가 관음상 조성 당시인 1330년 서주에 소재한 부석사로서 불상의 소유자로 당사자 권리가 있는가와 관음상에서 나온 결연문이 진짜인가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에 부석사와 봉안위는 각종 사료(史料) 등 증거자료를 준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나서서 부석사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불상이 가짜가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대다수의 지역주민들은 어이없어 한다. 신라 문무왕때 창건한 부석사는 오랜 세월을 거쳐 지역민과 함께하였다. 그런 이유로 옛부터  현재까지 지역이름이 부석면이다. 창건설화의 증표인 검은 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매년 검은 여 축제를 열어 조상에 감사하고, 공동체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석명요청에는 부석사가 창건이후 폐사 등을 당해 현 사찰과 동일한 지 여부를 밝히라는 내용도 있다. 고려 말 왜구들의 빈번한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 일시적으로 폐사가 되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초 무학 대사에 의해 중창 불사한 기록이 남아 있는 상량문과 부도탑 등으로 보아 역사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관련한 판결이 있다. 2006년 양주 회암사지 출토유물 소송과 관련하여 당시 의정부지법은 “절이 소실돼 사라지거나 규모가 줄었어도 재건돼 승려들이 활동한다면 현 회암사와 옛 회암사의 동일성이 인정된다”며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역시 현 회암사 소유로 봐야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최근 대선후보가 일본군 성노예피해자(군위안부)의 합의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없을 때 생긴 일’이라 하여 역사의식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엄연히 임시정부가 있고, 피해를 당한 국민이 있음에도 정부가 없다는 사고는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문화유산의 회복이야말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증표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4-17 08:53   |  수정일 : 2017-04-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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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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