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항소 이유서”로 본 부석사 고려금동관세음보살

2013년 가처분결정, 2017년 1심 승소 판결에 이어
3월 21일 항소심 재판 시작
불상이 가짜이므로 부석사는 소유권이 없고
일본에 ‘환부’해야 한다는 항소 이유서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 대마도 도요타마마치 향토관에 소개된 복장물,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2017년 1월 26일, 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 재판장(문보경)은 깊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재판에 앞서 한국과 일본 취재진은 1시간여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서산 지역민과 문화재환수단체 관계자들도 재판 시간에 맞춰 속속 도착하였다.
 
이윽고 재판이 시작되고 더 이상 변론이 없음을 확인한 재판장은 선고를 시작하였다.
 
 
피고는 원고에게 부석사금동관음보살상을 인도하라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판결의 이유로 재판부는 “부석사는 677년 창건된 후 조선 초기 중건하여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도비산에 소재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서 금동관음보살상은 부석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과거에 “증여나 매매 등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대마도 관음사에 운반”되었음으로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것이다. 또한 ‘불상이 문화재이고 훼손 가눙성’ 등을 들어 가집행을 막은 검찰 측에 이유 없음으로 최종 판결전이라도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가집행을 결정하였다.
 
서산지역민과 부석사 신도들의 기쁨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때마침 설날을 맞이하여 지역에서 축제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기쁨도 잠시 선고 당일 오후 검찰 측에서 즉시 항소함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가집행조차 가처분신청을 하였다는 소식에 650여년 만에 ‘귀향’의 꿈을 꾸던 관세음보살과 지역민들의 꿈은 창고 속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되었다.
 
 
검찰의 항소장은 ‘가짜 논쟁’으로 시작
 
검찰의 항소이유서 시작은 불상 결연문이 진짜인지 여부를 따지자고 하고 있다. 즉 복장물에서 발견한 ’결연문‘에 의해 1330년 고려 서주 부석사에서 제작한 불상이라고 함으로 ’결연문‘이 진품인지 여부를 ”탄소연대측정” 등의 방법으로 확인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복장물이 발견된 사실도 미심쩍음으로 이를 근거로 "고려 부석사 불상"이라고 신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로 2014년 문화재청이 조사한 “불상재감정 조사보고서”에 “불상의 결연문이 위작"이라고주장하는 당시 문모 조사위원의 의견을 첨부하였다.
 
 
그럼 탄소연대 측정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결연문 등 복장물은 지금 대마도 도요타마마치 향토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과연 일본 측이 탄소연대 측정을 허락할 것인지 여부부터 따져보고 한 주장인지 의심스럽다. 또한 “불상재감정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불상의 탄화유기물로 측정한 미국 베타연구소의 탄소연대측정을 통해 1156년에서 1260년의 절대연대 측정값이 나온다고 보고하고 있다. 위의 조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타와 공주대가 실시, 보고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결연문에 대한 여러 사례를 들어 대다수의 조사위원들이 “1330년 고려 서주 부석사에서 조성한 관음상”이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항소장에는 다시 '가짜 논쟁'을 시작하는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조사보고서는 대전지방검찰청이 문화재청에 의뢰하여 ‘불상의 환부’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다. 조사보고서에는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조성한 신라불상으로 왜구의 약탈에 의한 국외반출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지었지만, 부석사관음상의 경우 제작자, 제작 장소, 시기, 반출경위 등이 기록을 통해 확인될 수 있음으로 왜구에 의한 약탈 가능성이 높다 하였다.
 
그럼에도 항소이유의 첫 번째가 ‘가짜’여부 판단이라는 점은 스스로 발등을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항소 이유대로 가짜로 기록된 결연문에 의해 불상이 가짜라 판정나면, 일본이 문화재로 지정한 모든 사실이 허위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인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1973년 나카사끼 현 교육위원회가 서산 부석사불상을 영주 부석사 불상으로 오인하고 세운 표지석의 설치 이유와 지정당시의 기록물 등을 공개하여 취득사실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또한 서주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로서 “제작 당시 존재하였는지, 소유자로서 합당한 지, 동일한 권리주체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1330년 불상을 제작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당시의 부석사의 현재까지 존속하면서 시주자 32인으로 부터 불상의 권리의 인정받았는지 여부가 밝혀져야 부석사가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억지에 가까운 주장이지만 이에 대한 근거와 사실들은 다음에 밝히기로 하고 다만, 문화유산을 보존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둔다.
 
본문이미지
1973년 대마도 관음사에 세운 표지석,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본문이미지
2000년 대마도 관음사에 세운 표지석,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21 09:40   |  수정일 : 2017-03-21 09:50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