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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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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을 보면 가슴이 탁 막히는 이유...불평등조약을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합니다.>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필자의 다른 기사

▲ 강화도 조약 / EBSi 캡쳐본
[한국의 ‘억울함’과 일본의 ‘분함(쿠야시사)’의 차이]
 
치외법권(extraterritoriality), 영사재판(capitulation, extraterritorial jurisdiction)이라는 것이 있다. 유럽 제국이 비유럽지역에서 문명형태의 이질성과 법제의 미성숙을 이유로 자국민에 대하여 주재국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다.
 
반제, 반식민주의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不義의 조항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좌파적 시각, 인권적 시각, 국제관계에서 주권평등, 민족자결, 상호주의 등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적 시각 어디에 비추어 보아도 제국주의자들이 잘못한 것이고 반성해야 하는 역사로 인식되니 당연한 노릇이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치외법권, 영사재판을 옹호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알맞다.
나도 치외법권, 영사재판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만약 19세기 유럽 어떤 나라의 극동담당 외교관료였다면 극동 지역의 국가와 국교 수립 조약을 맺을 때 어떤 자세로 임했을까? 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국교를 수립하니 상품과 인간이 국경을 넘어 출입하고 이동하게 된다. 그러한 출입과 이동의 허용 범위와 한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주권의 상징인 과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을 검토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봉착하는 문제가 있다. 자국민 보호 문제이다. 한국 국내에서 항상 외교부 욕할 때 거론되는 단골 메뉴도 “도대체 대한민국의 외교부는 자국민 보호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가 아닌가.
 
자국민 보호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사법권이다. 자국민이 범죄 또는 위법행위의 주체가 되거나 객체가 되었을 때 법적 처리의 문제이다. 유럽국가간에는 사법제도에 대한 상호 양해가 있으니 속지주의가 적용되지만, 비유럽국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근대문명의 상징인 사법제도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를 관철하는 방식이 재판관할권에 있어 속지주의의 예외를 두는 것이다. 치외법권, 영사재판의 적용이다. 물론, 싫다는 상대를 왜 억지로 팔을 비틀어 그따위 발상의 제도를 강요하느냐.. 라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셜 다위니즘과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계몽주의가 별 저항감 없이 통용되던 시대이다. 힘과 이익의 동기는 자연의 법칙으로 치환되고, 불평등은 자국민 보호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중국은 그 팔비틀림을 영국에게 당했고, 일본은 미국에게 당했고, 조선은 일본에게 당했다.
한국의 역사 교육은 이러한 불평등의 강요가 얼마나 천인공노할 짓인지에 맞춰져 있다. 그 상대인 일본의 부정의함과 무도함을 밝히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뭐, 그것은 그것대로 각국의 가치관과 교육관에 따라 그럴 수 있다.
 
같은 꼴을 당한 일본의 교육은 조금 다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구미 열강 세력에 당한 불평등에 대해 분개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교육은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꼴을 당한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고 그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럽으로부터 불평등 조항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가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를 구축하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의 생각과 그러한 생각이 현실화되는 과정이 일본 역사교육에서는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1853년 개국 이래 불평등조약의 개정은 일본 사회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내로라하는 뜻있는 지식인들이 구미로 건너가 그들의 법제를 습득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초빙해 지도를 청하고 국가 지성의 총력을 기울여 국가체제의 근대적 법제화에 매진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880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을 필두로 1889년 헌법, 1896년 민법 등 소위 ‘법전’이라 불리는 6법 체계가 완성되었다.
 
유럽의 제법을 철저히 연구.분석하여 제정한 법률들이다. 유럽국들이 더 이상 일본의 법체계의 이질성, 미성숙성을 이유로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도록 준비를 단단히 한 일본은 당당하게 기존의 불평등조약의 파기.개정을 요구한다.
 
1892년 포르투갈의 영사재판권이 폐지되었으며, 완고하게 불평등조약을 고수하던 영국을 1894년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화로 강하게 몰아붙여 기존의 불평등조약을 최초로 개정한 일영통상항해조약(日英通商航海条約)을 체결함으로써 재판관할에 있어서의 주권을 회복하였다. (영국이 인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불평등 조약을 강요당한 분함(쿠야시사)을 해소하고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겠다는 집념이 기어코 불평등 조약의 폐기를 이끌어냈고, 그러한 굴욕의 경험과 분함이 오히려 조기 근대화의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래서, 아래 기사를 읽으면 가슴이 탁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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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조선PUB에 기고한 글

다음으로, 설민석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죄를 지으면 우리의 법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본법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조항을 치외 법권이라 소개하면서, 이 조항 때문에 1895년에 발생한 민비(1897년 명성 황후로 추존) 시해 사건의 범인들을 우리 법으로 처단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치외 법권에 대해서는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에도 아래와 같이 조일 수호 조규 제10관을 치외 법권 또는 영사 재판권을 허용한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국 인민이 조선 항구에서 죄를 지었거나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판한다.(금성출판 229)
 
이 문장만 두고 보면 마치 일본인의 범죄를 우리가 처벌할 수 없는 치외 법권 조항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가 간의 조약이든 개인 간의 계약이든 반드시 해당 조항의 전체를 살펴봐야 본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아래는 제10관 전체를 번역한 것이다.
 
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만약 그 범죄가 조선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일본국의 심리 판단에 맡기고, 만약 조선국 인민의 범죄가 일본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조선국 관리에게 귀속하여 조사 판결하되 각각 자기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덮어주거나 치우쳐 숨김이 없이 공평하고 온당함을 밝히는 일에 힘써야 한다.<第十款, 日本國人民在朝鮮國指定各口, 如其犯罪, 交涉朝鮮國人民, 皆歸日本國審斷, 如朝鮮國人民犯罪, 交涉日本國人民, 均歸朝鮮官査辨, 各據其國律訊斷, 毫無回護袒庇, 務昭公平允當.>
 
이 조관의 내용은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국 관리가,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국 관리가 판결한다는 것으로 이를 치외 법권 또는 영사 재판권을 허용한 조항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에는 조선국 범죄자의 처벌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사 재판권의 경우 조일 수호 조규에는 영사(領事)에 대한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는 어느 나라 영사도 부임한 적이 없다.
 
우리 기록에 국제법상 영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 4월 체결된 조미 조약이며, 우리나라에 부임한 최초의 영사는 조미 조약 이후 1882년 8월에 부임한 일본 영사 마에다 겐기치이다. 따라서, 제10관은 치외법권(영사재판권)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 양국 범죄자의 재판 관할권을 규정한 조관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어, 설민석은 민비 시해범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우리가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조관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해당 조관에는 ‘조선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라는 전제가 있다. 당연히 개항장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국한되며 궁궐에서 벌어진 민비 시해 사건과는 무관하다. 더구나 당시에는 시해범이 누군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누가 재판할 것인지를 논할 계제도 아니었다. 처음 일본 측은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차츰 미우라 공사가 주축이 되고 일본 관리들이 가담하여 일으킨 사건임을 인정하면서 바로 그들에게 퇴한령(退韓令)을 내려 본국으로 소환해 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소환 과정이 조일 수호 조규를 근거로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17 14:30   |  수정일 : 2017-03-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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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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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 2017-03-20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
보수후보를 단일화해서 병든 대한민국을 기사회생 시켜야만 합니다.
장순길  ( 2017-03-19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11
설민석을 탓하기 전에 현행 국사교과서 8종을 탓하고 개정을 주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설민석에게 가슴이 탁 막히는 이상한 구조를 하고 있는지요?
      답글보이기  오태영  ( 2017-03-23 )  찬성 : 0 반대 : 0
중국사람들은 없는것도 꾸며서 대외적으로 한목소리로 우기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왜 오징어포 처럼 찢어지는걸 좋아할까? 그러면 더 쫄깃하고 맛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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