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억울하다'는 말...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는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필자의 다른 기사

▲ / photo by 조선DB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억울하다’는 말은 한자이다.
‘抑鬱’이라고 쓴다.
일본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한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본어의 ‘억울’은 정신병리학상의 용어로 심하게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deep depression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의미적으로 한국어의 ‘억울하다’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없다.
억울하다는 사전적 정의는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인데, 한일사전을 검색하면 ‘悔しい(쿠야시이)’가 가장 빈번하게 대응어로 나온다. 하지만, 두 단어는 맥락과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반해, 일본어의 쿠야시이는 ‘자기가 마음먹은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기에게 해꼬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 그럴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지만, ‘쿠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를 책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하게 느끼는 사람은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쿠야시이하게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은 ‘한(恨)’으로 이어진다. 한국인에게 恨은 복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 삭혀야 하는 속절없는 체념과 가련함의 마음을 내포한다. 일본의 쿠야시이도 恨으로 연결되지만 일본인의 恨은 앙심에 가까운 독한 마음으로, 자기를 바꿔 자기를 분하게 만든 상대에게 설욕(仕返し)을 하겠다는 결의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국의 억울하다에 비해 일본의 쿠야시이가 더 강렬한 심리적 에너지장(場)을 형성하고 현실의 변화가 수반될 가능성이 높은 표현이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한국과 일본간에는 그러한 문화와 역사와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16 14:53   |  수정일 : 2017-03-16 15:0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1996년 제 3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근무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과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2012년 일식 우동에 반해 외무부를 퇴직하고 현재 기리야마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