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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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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같은 스타 강사에 의해 멍드는 우리 역사

-설민석의 역사 강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류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학사/석사/박사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글 |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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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vN '어쩌다 어른' 방송화면
한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어쩌다 어른’ 중 설민석의 역사 강연을 보다가 짧은 강연에 드러난 적지 않은 오류에 자칫 다수의 시청자가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오해할 수 있으리라는 염려에서 이 글을 쓴다. 해당 방송은 OtvN(2016. 6. 16)에서 방영된 ‘어쩌다 어른 38화’로 대부분의 시간을 세종대왕 이야기로 채우다가 마지막에 약 8분 동안 ‘염치(廉恥)’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인물로 최익현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런데 그 8분 동안의 강연이 대부분 역사적 사실과 다르거나 전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사실 관계에서 명백하게 오류를 범한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설민석은 어른은 적어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면서 ‘염치’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풀이하였다. 일견 맞는 것 같지만 염치는 ‘강직(剛直)한 마음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두 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흔히 예의와 염치 두 단어로 곧잘 쓰이고 있으나 본래는 예(禮)·의(義)·염(廉)·치(恥)가 각각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관자(管子)』에 국가를 다스리는 중요한 네 가지 요소, 즉 사유(四維)로 소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염(廉)은 불의(不義)를 보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강직(剛直)한 마음을, 치(恥)는 잘못을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염치를 치(恥)의 뜻에 한정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풀이한 것은 잘못이다.
 
다음으로, 설민석은 ‘강화도 조약의 내용을 보면 말도 안 된다’고 운을 떼면서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강화도 조약을 맺으러 간 사람의 첫 마디가 ‘문호 개방 하려고 도장을 갖고 왔는데, 조약이 뭐요?’, ‘오늘날 외교부에서 나간 사람이 한 소리에요’라며 당시 우리 협상 대표를 형편없는 인물로 비하하였다.

당시 조선국 대표는 접견 대관(接見大官) 신헌(申櫶)이었다. 어려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수학하고 개화파 인물인 강위, 박규수 등과도 폭넓게 교유한 그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유산 필기(酉山筆記)』라는 역사지리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전형적 무관 가문 출신이지만 유학에 조예가 깊어 유장(儒將)이라 불릴 정도로 학문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1876년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은 속칭)에는 접견대관으로 협상을 책임졌으며, 1882년 조미 조약에는 전권 대관(全權大官)으로 조약 체결을 담당하였다. 2월 2일에 있었던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 과정을 보더라도 체결 직전인 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일본국 대표 구로다와 협상을 진행한다. 3일 동안의 협상 과정에서 신헌은 일본 측 대표에게 전혀 비굴하거나 물러섬이 없이 당당하게 임하였음은 고종실록에 실린 문답구어(問答句語)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특히 일본국 대표 구로다가 현재적 용어로 유감(遺憾)에 준하는 ‘회오(悔悟:뉘우침)’의 인정을 세 번이나 요구하였음에도 끝내 거절한 바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연구 검토와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가가 함부로 비하해도 될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설민석이 말한 ‘조약이란 게 뭐요?’라는 대화는 ‘만나자 마자’가 아니라 협상 이틀째인 18일 대화에 나온다. 이 때 구로다는 13개 조항의 조약 책자를 신헌에게 건네며 국왕에게 보고하고 조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힘써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신헌은 300여 년 동안 통상해오던 사이인데 갑자기 조약(條約)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이는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계(書契) 문제로 중단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고 왜관을 통해 이루어지던 무역을 그대로 재개하면 될 것으로 판단한 신헌의 입장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무엇보다 조선은 아직 만국공법에 따라 체결되는 국가 간의 조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대한 주저에서 나온 질문을 두고 무능한 관리로 치부하여 한낱 웃음거리로 삼은 것이다. 흥미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잘못된 사실 관계를 토대로 대상 인물을 비하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다음으로, 설민석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죄를 지으면 우리의 법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본법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조항을 치외 법권이라 소개하면서, 이 조항 때문에 1895년에 발생한 민비(1897년 명성 황후로 추존) 시해 사건의 범인들을 우리 법으로 처단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치외 법권에 대해서는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에도 아래와 같이 조일 수호 조규 제10관을 치외 법권 또는 영사 재판권을 허용한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국 인민이 조선 항구에서 죄를 지었거나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판한다.(금성출판 229)
 
이 문장만 두고 보면 마치 일본인의 범죄를 우리가 처벌할 수 없는 치외 법권 조항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가 간의 조약이든 개인 간의 계약이든 반드시 해당 조항의 전체를 살펴봐야 본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아래는 제10관 전체를 번역한 것이다.
 
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만약 그 범죄가 조선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일본국의 심리 판단에 맡기고, 만약 조선국 인민의 범죄가 일본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조선국 관리에게 귀속하여 조사 판결하되 각각 자기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덮어주거나 치우쳐 숨김이 없이 공평하고 온당함을 밝히는 일에 힘써야 한다.<第十款, 日本國人民在朝鮮國指定各口, 如其犯罪, 交涉朝鮮國人民, 皆歸日本國審斷, 如朝鮮國人民犯罪, 交涉日本國人民, 均歸朝鮮官査辨, 各據其國律訊斷, 毫無回護袒庇, 務昭公平允當.>
 
이 조관의 내용은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국 관리가,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국 관리가 판결한다는 것으로 이를 치외 법권 또는 영사 재판권을 허용한 조항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에는 조선국 범죄자의 처벌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사 재판권의 경우 조일 수호 조규에는 영사(領事)에 대한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는 어느 나라 영사도 부임한 적이 없다.
 
우리 기록에 국제법상 영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 4월 체결된 조미 조약이며, 우리나라에 부임한 최초의 영사는 조미 조약 이후 1882년 8월에 부임한 일본 영사 마에다 겐기치이다. 따라서, 제10관은 치외법권(영사재판권)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 양국 범죄자의 재판 관할권을 규정한 조관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어, 설민석은 민비 시해범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우리가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조관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해당 조관에는 ‘조선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라는 전제가 있다. 당연히 개항장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국한되며 궁궐에서 벌어진 민비 시해 사건과는 무관하다. 더구나 당시에는 시해범이 누군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누가 재판할 것인지를 논할 계제도 아니었다. 처음 일본 측은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차츰 미우라 공사가 주축이 되고 일본 관리들이 가담하여 일으킨 사건임을 인정하면서 바로 그들에게 퇴한령(退韓令)을 내려 본국으로 소환해 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소환 과정이 조일 수호 조규를 근거로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설민석은 최익현을 대원군 탄핵 상소를 올린 인물로 소개하며 남들은 무서워서 못한 일을 최익현은 자신의 관직과 목숨을 걸고 이를 실행했다고 한다. 먼저, 조선시대의 탄핵(彈劾)은 현재의 탄핵과 다소 달라서 양사 즉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법을 어기거나 비리를 저지른 관원의 죄를 묻고 파면할 때 적용하였다. 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양사에서는 탄핵 대상과 그 죄상을 분명히 적시하고 이를 국왕에게 상소하여 처벌할 것을 요청한다.
 
설민석이 흥선대원군 탄핵 상소라고 한 것은 1873년 말에 올린 계유상소(癸酉上疏)를 이르는 것으로, 최익현의 문집인 『면암집』에는 ‘호조참판을 사직하고 아울러 생각한 바를 진달하는 소[辭戶曹參判, 兼陳所懷䟽]’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여기에서 최익현은 호조참판을 사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함께 만동묘(萬東廟)의 복구, 서원(書院) 신설 허용, 호전(胡錢:청나라 돈) 사용 혁파, 토목공사를 위한 원납전(願納錢) 징수 중단 등의 건의와 함께 마지막에 모든 정사(政事)를 정부 조직에 따라 운영하고 종친들을 정치 일선에서 배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고종은 대원군이 출입하는 창덕궁의 전용 문을 사전 통보 없이 폐쇄함으로써 더 이상의 정치 관여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만약 흥선대원군을 탄핵하는 상소였다면 탄핵 대상인 대원군을 명시하고 그의 죄상을 조목조목 나열한 다음 이의 처벌을 요청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 상소로 인해 대원군이 정치 일선에서 배제되긴 하였으나 이를 두고 ‘흥선대원군 탄핵 상소’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건립과 관련하여 설민석은 정조 때인 1794년 수원 화성 축성 때부터 노임을 지급했으며, 경복궁 건립 때는 흥선대원군이 농민들을 잡아다가 노임도 주지 않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잘못이다. 하나는 국역(國役)에 임금을 지급한 기록은 화성성역보다 훨씬 이전인 17세기 초에 이미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정조대에도 1789년 사도세자의 원소(園所)인 현륭원 역사(役事) 때 이미 임금을 지급한 사실이 의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경복궁 토목공사에 농민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노예처럼 일을 시켰다는 주장도 기록과 다르다. 고종 실록에는 많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부역(赴役)하였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타나는가 하면, 농사철임에도 경복궁 중건에 많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모여 들자 농사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되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고종 실록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할지라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노예처럼 강제로 노역을 시켰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설민석은 탄핵 상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최익현은 고종더러 ‘당신 아버지의 명예는 지켜드리되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시오.’라고 요구했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최익현의 상소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재미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 하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럴듯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설민석은 ‘대원군이 정치를 잘 했거든요.’, ‘문호를 빨리 개방했어야 우리가 흥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오류다.’, ‘개화는 해야 했지만 좀 더 따져보고 했어야 한다.’, ‘적절히 조화가 되었어야 했다. 그게 되지 않아 나라가 망한 것이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는 모두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평가는 연구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전문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 불과한 강연자가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마치 정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 강연은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 하다 보면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기에 간혹 흥미 유발을 위해 다소 부풀리거나 가공(架空)된 이야기로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전체적 맥락에서 벗어나 오로지 흥미 위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특히, 강연자의 말을 그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강한 유명 강사의 경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하되 흥미 요소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일본과 관계된 역사 강연에서 객관적 사실과 대상 인물을 이유 없이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비하할 경우 반일 감정을 조장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패배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설민석의 짧은 강연에 드러난 많은 사실 관계 오류와 과장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더불어, 그가 진행한 여타의 수많은 강연은 과연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14 08:58   |  수정일 : 2017-03-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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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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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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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  ( 2017-03-18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8
정말 팩트로 조지는 글이구만. 전공자다 설민석 개노답이다. 한 80년대 사짜들이 지껄이던 걸 그대로 가져와서 말함. 난 얘보면서 이덕일이 떠올랐다. 진짜 이런 애들이 다 죽어가는 역사학에 못박아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고맙다 민석아 덕택에 술자리에서 니놈이 개소리 지껄여놓은 거 애들한테 입털어주느라 고생중이다
Dd  ( 2017-03-17 )  답글보이기 찬성 : 26 반대 : 9
뭐?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응 미국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한중일 역사교과서 왜곡 정도는 1한 2중 3일 순이다.
책은 안읽고 이따위 수준 떨어지는 강사 TV출연시켜서 띄어주니 뭐기 맞고 틀린지 알리가 있나. 댓글 수준 또한 최소 10년 안에 책 한권 안읽은 티나는 실질적 문맹들. 국가를 위해 자살들 하세요.
정의현  ( 2017-03-17 )  답글보이기 찬성 : 42 반대 : 23
염치의 단어를 가지고 한글자 한글자 따져가며 오류를 이야기 할 때 아까운 시간을 쓰기 싫어 그만 읽으려 했지만, 끝까지 읽다보니 타이틀에 맞게 멍드는 우리역사 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학자가 아닌 단순 지식 전달자 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류를 범하고 우리역사가 멍이 드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셨습니까?국민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무원이 될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저런 지식전달자가 될 때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적어도 후대에 광대같은 사람이 역사를 가르쳤는데 틀린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끊길뻔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게 됐지. 이런 자료로 남을 수 있는 비전공자의 업적이 조금 더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 또한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박시백 화백님과 설민석 강사님, 무한도전 및 역사저널 그날 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 남기는 글임을 밝힙니다.
하긍  ( 2017-03-17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41
설민석 같은 강사에게 멍멍드는 우리역사가 아니라
설민석 같은 강사에게 멍드는 친일파의 역사 라고 하시죠 겨우 찾아낸 오류가 분명한것도 아닌 의견이 분분할수 있는걸로 문제 삼는게 한심하네요 역사란 사실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그시선은 학자라면 누구나 갖을수 있는 것이죠 그것보단 말도안대는 역사교과서나 비판하시길
지나다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29
일단 쭉 읽던 중 민비라고 써두신 부분이 걸리는데.. 그것부터 좀 바로 잡아주시죠?
      답글보이기  민비맞음  ( 2017-03-17 )  찬성 : 16 반대 : 3
민비맞아요. 명성황후는 미디어가 미화해낸것일뿐 민비때문에 일본이 조선에 대한 침략야욕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된 계기중 하나입니다
      답글보이기  유진  ( 2017-03-19 )  찬성 : 5 반대 : 2
민비 맞다. 을미사변 연도랑 고종 칭제건원(광무) 연도를 봐라. 민비는 단 한 번도 황후였던 적이 없다.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콩콩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37
큰 줄기안에서는 그리 틀린 강의도 아니고만..엄청 달려드네...몇몇은 오류가 사실인지도 모르나 꼬투리급도 보여서 말이지...
      답글보이기  중리신사  ( 2017-03-17 )  찬성 : 20 반대 : 1
어떤게 오류고 어떤게 꼬투리인지 구별할 수나 있으신지..? 할 수 있으시다면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말거는 벚꽃닢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33
트집잡이...낯 부끄러워 못 읽겠다. 부스러기로 전반을 탓하는 꼴이, 투기하는 첩년 같소이다∼^
총총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18 반대 : 59
설민석 선생님 참 좋아합니다. 개인의 시선이 담기지 않은 역사가 있을수 있나요? 사실을 갖고 해석하는 것이 무슨 문젭니까. 억지로 트집 잡는 듯한 인상을 지울수 없네요. 설 선생님의 강의가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패배의식을 심어준다는건 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애국심이라고는 생각 못해 봤나요? 쓸데없는 글을 읽으니 흥분하게 되네요.
제목 부터 자극적으로 만든.. 본인이나 염치 챙기세요!!!
왕호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28
참나! 조중동의 조! 또 발벗고나섯네
정치의 개들∼ 이런거 잡으면 박근혜한테 충성하는거가?
별로 우려할일도아니고 기억해서 써먹는 사람도없는데.
뭔 난리지? 일제강점기나 파해치던가 아님 친일파 행적이나 기사써라.
시립국사  ( 2017-03-16 )  답글보이기 찬성 : 73 반대 : 8
역사학 전공자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역시나... 누군가 선생님이 지적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민석쌤을 참 좋아하고 저도 즐겨보긴 하지만, 사료에 의거한 학설 관계에 무지한 일반인들에게 다소 단정적인 어투로 이야기하는 점은 항상 아쉽습니다. 예컨대 설민석이 대원군이 정치를 잘 했다고 말할 경우, 청자의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싶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야기를 너무 맛있게 하거든요. 항상 보면 개연성도 충분하고 설득력이 넘칩니다. 이 글을 쓰신 선생님의 말씀처럼 조금 더 치우침 없는 강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느정도 사견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만은, 결국 대중이 민석쌤에게 기대하는 건 민석쌤의 학설이 아닌 올바른 역사 교육일 테니까요. 실제 전공자인 교수님들과의 콜라보는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대학 때 담당 선생님께서 항상 고민하던 부분이, 어떻게 하면 본인이 갖고 있는 걸 재밌게 전달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즉 결국 그 이야기입니다. 많이, 잘 아는 것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거죠. 교단에 계신 많은 쌤들의 숙제기도 하겠지요. 우리나라 역사 전공 교수님들이 죄다 설민석처럼 강의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ㅋㅋ
여튼, 좋은 지적이지만 설민석쌤이 우리 역사를 멍들게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지성입니다. 다만 정도를 지켜주길 기대하며, 전공자로저 이렇게 교정해주고, 토론하고, 콜라보 강연 등으로 역사 문화 컨텐츠가 더 풍성해지는 길로 가면 어떨까요.
룰룰룰라  ( 2017-03-15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23
염치: 명사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표준국어대사전) 본래 어원은 『관자(管子)』에서 왔을지 모르나 현재 염치라는 말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이라는 뜻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으므로 별 문제없어보임.
신헌(申櫶)이 누구밑에서 수학을했고 학문적으로 뛰어나건 말건 중요치 않음. 조선에 아직 만국공법에 따라 체결되는 국가 간의 조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저렇게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는게 참으로 한심함.

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만약 그 범죄가 조선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일본국의 심리 판단에 맡기고, 만약 조선국 인민의 범죄가 일본국 인민과 관계될 경우 모두 조선국 관리에게 귀속하여 조사 판결하되 각각 자기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덮어주거나 치우쳐 숨김이 없이 공평하고 온당함을 밝히는 일에 힘써야 한다.

전문을 놓고봐도 결국 일본인의 범죄를 우리가 처벌할수 없도록 돼있음.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국 관리가,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국 관리가 판결한다는것 자체가 치외법권을 의미하며 불평등함. 조선땅에서 벌어진 범죄는 일본인의 경우도 조선이 판결하는게 사리에 맞음.

계유상소(癸酉上疏) 여기에 대한 평가는 걍 말꼬리잡기.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백성들의 자원이 많았다는 실록의 기록은 당연히 믿을게 못됨.
영건(營建·건물을 짓는 것)의 공역이 시작된 지 이미 3년이 됐다. 지방에서 잡아 올린 석수(石手)들은 도망치는 습속이 갈수록 심하다. 샅샅이 찾아내 잡아와 막중한 대공역에 사단이 생기는 폐해가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1867년 7월) 영건일감 발췌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숱한 인명이 희생됐음. 관점에 따라 노예처럼 강제 노역했다고 충분히 말할수 있음.

대원군이 정치를 잘 했거든요.’, 문호를 빨리 개방했어야 우리가 흥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오류다.’, 개화는 해야 했지만 좀 더 따져보고 했어야 한다.’, 적절히 조화가 되었어야 했다. 그게 되지 않아 나라가 망한 것이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는 모두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 불과한 강연자가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마치 정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 강연 듣는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저런건 각자의 관점에 따른 주관적 판단과 주장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음.
      답글보이기  김병헌  ( 2017-03-16 )  찬성 : 24 반대 : 1
다른 부분은 굳이 언급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영건일감을 근거로 강제노역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또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어 설명을 덧붙입니다.

본인이 쓴 칼럼의 논지는 설민석의 주장 중
1. 정조 때인 1794년 수원 화성 축성 때부터 노임을 지급했다.
2. 경복궁 건립 때는 흥선대원군이 농민들을 잡아다가 노임도 주지 않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반박을 하려면 이 두 사항에 대하여 모두 언급해야 맞겠죠.

1번은 노임 지급은 이미 17세기 초에 기록으로 나타나므로 잘못된 주장이며,
2번은 경복궁 영건 일기에 아래와 같이 매일 自願軍의 숫자, 擔募軍의 숫자를 기록하였으며, 노임 지급과 賞을 주어 노고에 보답한 기록 등도 있으니, 잘못된 주장이죠?

경복궁 영건 일기 1865. 6. 8.
自願軍 21洞, 823名
함흥(咸興)의 石手 8명이 自願하여 스스로 원하여 1달을 기한으로 부역하겠다고 하니, 그 정성이 可尙하나 기한이 멀다. 北土 사람의 비용과 식량은 반드시 계속 잇기 어려운 염려가 있고, 또 한 두 달에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일체 석수에게는 품삯을 지급하여 광화문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라.

뿐만 아니라, 영건 일감 해제에도 노임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다시 한 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백성들의 자원이 많았다는 실록의 기록은 당연히 믿을게 못됨’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근거를 밝혀주시면 좋겠군요.
그리고, 본인은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백성들의 자원이 많았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농사철임에도 많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모여 들자’라고 썼으니 글을 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영건 일기에 있는 같은 내용입니다.

경복궁 영건 일기 1865. 7. 18.
시에 경외 민인이 다투어 즐거이 이르니 가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근래 듣기로 팔역의 백성들이 발징(發徵)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하여 부역(赴役)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지금 추수 때가 되어 한결같이 부역하는 백성들이 농사 때를 잃게 되었으니 백성들을 위해서는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부터 자원하여 오는 백성들은 일체 중단하게 하여 편안히 농사일에 힘쓰도록 할 것을 각 읍에 신칙하도록 하라.

물론, 1867년 기록에 석수들이 달아나고 잡아들이고 한 일이 있었죠. 하지만, 전체를 살피지 않고 특정 사건을 들어 일반화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역사교육  ( 2017-03-15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0
역사교육학에서 흔히 말하는 내러티브식 수업의 문제점입니다. 이를 보완하기위해 정확한 지식 이해와 객관적인 해석이 필요하죠. 설민석씨가 내러티브수업으로 흥미있는 수업을 이끌어나가는것은 좋지만 내러티브 수업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교육을 전공했다면 당연히 알것입니다.
      답글보이기  유진  ( 2017-03-19 )  찬성 : 11 반대 : 0
설민석은 역사교육 전공자가 아닙니다. 역사의 해석 문제에 대한 이해를 못하는 한 저런 강의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글씀  ( 2017-03-15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37
민석쌤한테 다들 왜그러지 한국사 국정교과서나 어떻게 되고있나
보도해라 조선일보야
설민석쌤 강의 듣고 한국사 시험잘맞은 학생들도 많다
랑케가 아니라 카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의 해석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는거아니냐 전체 흐름에서 딱히 벗어난거 없이 흥미위주로 잘 설명했는데
방송에서 부분부분 말한것만 짤라내서 매도하는게 웃기다고본다
      답글보이기  사학도  ( 2017-03-15 )  찬성 : 32 반대 : 1
랑케의 역사와 카의 역사만 놓고 사학의 조류와 역사서술의 방법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설민석강사의 강연은 사학을 하는 이들이 보기엔 누구나 부족하고 누구나 지나치다고 이야기합니다. 역사는 실제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불변하죠. 그걸 사학자는 사료와 논리로써 논증합니다. 카도 역사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하지만 증거없이 주장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카는 사료비판에 대해서 엄격히 규정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근거없이 공인이 대중이 보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근거없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개인적 주장을 보편적으로 증명된 역사인 것 마냥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사회적 문제입니다. 점수야 잘 나올겁니다. 왜냐하면 설민석 강사가 주장하는 대부분은 시험에 안나오는 부분이고 오히려 논란되지 않는 부분은 시험에 나옵니다. 이건 한국사시험을 치뤄보신 분이라면 알겁니다. 그리고 설강사가 방송사에서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방영한 것을 알면서도 정정하지 않은것도 문제입니다. 논증되지 않은 주장은 소설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조태원  ( 2017-03-15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94
아놔... 기득권 꼴통 학자들의 설민석에 대한 질투 폭발의 현장∼ ㅎㅎ
      답글보이기  하창우  ( 2017-03-15 )  찬성 : 23 반대 : 4
일본 모 방송사에서 한국의 탄핵 과정을 다루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립니다. 박근혜 탄핵을 왜 일어났는가? 결국 질투 때문이다!
조태원님의 사고방식을 보니 그 방송이 생각나네요.

질문 하나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기득권 꼴통 학자라는 주장하시는 근거는 어디있습니까?
기득권 꼴통 학자의 무엇이구요? 설민석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사람이라면 기득권 꼴통 학자입니까? 대한민국에서 기득권 학자 되기 참 쉽네요.
      답글보이기  사학도  ( 2017-03-15 )  찬성 : 23 반대 : 3
기득권 사학자가 아닌 역사를 배운이들이라면 응당 제기할 문제입니다. 만약 사학 학석박 학위를 다 가지고 저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공석에서 대중에게 전달한다면 이것보다 더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역사는 사실을 전달해야되는데 소설을 전달하기에 문제인 겁니다. 질투하기엔 강사는 별로 재미가 없죠^^ 깊이나 정도에서 말이에요.
김찬호  ( 2017-03-14 )  답글보이기 찬성 : 54 반대 : 12
알만하군 그래서 근현대사 학자들이 실력이 형편없어서 역사서들이 모두 그모양이군 그러니 전교조 민노총 이자들이 그리 날뛰고 (이자들의 목적은 대한민국타도니 잘못된것을 옳은거라고 우겨야 하니) 옳은 것을 반대하지
박대봉  ( 2017-03-14 )  답글보이기 찬성 : 96 반대 : 12
설민석의 강연내용의 오류는 저것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학계에서 꼼꼼히 검증된 내용도 무시해버리고 강의의 편의를 위해 극단화시켜 설명하는 일이 많아 위태할 지경이다. 설민석 강연은 그냥 일개 한국사 강사의 쇼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학생들은 물론 많은 일반인까지 이를 권위있는 진실인 양 믿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박성우  ( 2017-03-14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64
1. 10조관의 내용이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국 관리가,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국 관리가 판결한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치외법권이 아니면 뭡니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인데 일본인이라고 일본이 판결하는게 당연합니까 ?
2. 설민석강사가 자기 주장을 하는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 그사람은 그사람 나름의 주장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거기에 반대할 수 있죠. 청취자가 설민석의 의견이라고 모두 받아들일까요 ?
좆죽독  ( 2017-03-14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29
후보 단일화를 반대하고 출마를 고집부리는 보수후보들은 문재인의 하수인들임이 확실하다. 골수 반역자들이라고나 할까...
      답글보이기  똑바로살길  ( 2017-03-14 )  찬성 : 73 반대 : 11
설민석 요새 수강후기다 뭐다 말 많던데..지식이 얕고 꼼수를 부리다보면 뒤탈이 생기는 법이죠
      답글보이기  벌써  ( 2017-03-16 )  찬성 : 7 반대 : 1
재인이 똘만이들이 활동을 시작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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