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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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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선원사에서 제작한 고려 반자는 누가 대마도로 가져갔을까?

최대 규모의 금고(쇠북) 대마도 다꾸즈다마 신사에 있어
고려시기 왜구에 의해 약탈
왜구의 약탈문화재 조사 연구 시급

글 |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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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운사 청동제반자(1301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싸운 강화도. 당시 국난극복을 염원하며 고려인들은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대장경을 판각한 선원사는 그래서 민족의 피와 땀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 선원사 2010년 3월 11일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법당에 선원사 종이 아닌 안성 대덕사 종으로 대신 사용해 왔습니다. 늘 마음에 내 절에 종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나 많은 일들이 산재해 입을 열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든든한 법당이 세워졌고 종을 만들어야 법당 불사가 마무리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일본 대마도 두두 다구두혼 신사에 고려시대 을사년(1245년)5월 진양공 최이(崔怡)가 선원사 창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지름 79cm 고려 반자(금고)가 소장된 것을 대한민국 문화재위원이신 정영호 교수님과 한성욱 박사님께서 발견하여 2009년 7월 제보하여 주셨습니다.》

반자(飯子)는 금고(金鼓) 즉 쇠북이다. 용도는 사찰에서 공지할 때 사용하는 의식용구(儀式用具)로 주로 청동으로 제작한다. 반자의 크기는 대체적으로 지금 30cm내외로 제작한다. 그러나 선원사에서 제작한 반자는 79cm로 보통의 것에 2.5배 이상이다. 더구나 당시 고려 최고 권력기관인 진양부의 최이(崔怡)가 선원사 창건의 기념으로 제작하였다면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인데, 어떤 연유로 일본의 변방인 대마도, 그것도 쯔쯔(豆酘)라는 시골 마을의 신사에서 발견되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강화 선원사는 원나라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1245년(고종32년)에 무신정권시대를 연 최충헌의 아들 최우(崔瑀, 후에 이(怡)로 개명)가 창건한 사찰로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인 곳이다. 따라서 국찰(國刹)로서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한 바도 있다. 특히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판각한 곳이다. 그 후 팔만대장경은 1398년(태조 7년) 선원사에서 이운,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시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찰(禪刹)이었으나 지금은 사적 제259로, 주지 성원스님이 그 날을 복원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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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선원사 팔만대장경 판각지 모습

 필자의 이런 의아심은 2015년 대마도 역사문화탐방과정에서 현장을 확인하면서 더 구체화되었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대마도 역사문화탐방단은 2015년 8월 대마도의 주요 역사유적과 유물을 탐방하였다. 그 중에 한 곳이 쯔쯔(豆酘)에 있는 다꾸즈다마(多久頭魂) 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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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 숙소에서 버스로 이동한 탐방단은 1시간 30여 분을 지나 시골 마을인 쯔쯔(豆酘)에 이르렀다. 마을입구에서 다꾸즈다마(多久頭魂) 신사는 버스가 운행할 수 없어서 20여분 남짓을 걸어갔다. 여느 한국의 농촌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한 여름을 맞이하여 마을은 조용하였고, 오가면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50여명의 탐방단이 체류하는 동안 단 한사람의 현지인은 물론 방문객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마을 깊은 곳에 신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곳에 최대 규모의 고려 반자가 있다는 사실에 설레임과 의구심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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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꾸즈다마(多久頭魂) 신사 소장 문화재 안내판. 고려 반자(금고)는 1975년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고려 고종 32년(1245)에 제작되었다고 적혀있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그러면 당시 국찰이었던 선원사에서 다꾸즈다마(多久頭魂) 신사로 최대 규모의 청동 반자는 언제, 어떻게 운반되었을까? 불교를 국교로 삼던 고려 왕실이 국찰에서 조성한 성보(聖寶)를 일본 교토나 도쿄가 아닌 변방인 대마도에 선물이나 교류의 증표로 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탐방단의 생각이었다. 
 
이에 대한 답을 한국방송통신대 이영 교수의 <쓰시마 쯔쯔 다구쓰시마 신사 소재 고려 청동제 반자와 왜구>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2008년 10월 <한국중세사학회>에 게제한 논문에서 “왜구에 의한 약탈로 추정할 수 있음”으로 발표하였다.
 
1245년, 강화 선원사를 창건한 최이(崔怡)는 부친인 최충헌의 원찰인 개성 창복사에 사용할 반자를 제작하였다. 개성의 동남쪽에 있던 창복사에 있던 반자는 무신정권의 몰락과 함께 고려 왕실의 원찰인 흥천사에 보관되었다가 1357년(공민완 6년) 9월 26일, 침략한 왜구에 의해 약탈당해 대마도로 운반당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반자에 추가되어 있는 기록으로
<종 한 개를 바친다. 그것은 합배(合輩)들 때문에 생긴 업보(業因)가 소멸되고 마음속에 바라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쇼헤이(正平)12년(1357년) 10월18일. 오오쿠라 쓰네다네>
 
이것으로 보아 1357년 10월 18일 이전에 반자가 약탈당해 대마도로 운반되었으며, 그 유력한 사건으로 9월 26일 흥천사 침입을 꼽고 있는 것이다.
 
다구쓰시마 신사는 당시에는 관음당이라는 절로서 현재 안내도에도 관음당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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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구쓰시마 신사 안내판, 입구 쪽에 관음당이 있다.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이로서 최대 크기의 고려 청동반자가 일본의 변방인 대마도에 있게 된 연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조사에 있어 한국 역사에서 큰 상처를 남긴 왜구의 실체와 침입 사실, 약탈 등을 밝힐 유물들이 일본에 산재(散在)하여 있음에도 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왜구의 근거지인 큐슈일대에 소재한 한반도 불상만 150여 구 라는 주장과 그보다 다 많은 수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불교예술(마이니치신문사 발행) 2004년 7월호에는 나가사키와 사가현 일대의 불상만 120여구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들 불상은 주로 백제, 신라, 고려 불상으로 60% 가까이가 화상 입은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조사에 있어 주무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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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구쓰시마 신사의 대장경 보관창고. 폐쇄된 공간으로 전시실과 같은 기능은 없다. 2012년 한국의 문화재절도단이 이 창고를 지붕을 뚫고 들어가 대장경을 훔쳤다고 한다.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13 13:11   |  수정일 : 2017-03-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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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문화재제자리찾기공동대표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상임이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등 역임

(현)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
(현)명원문화재단 이사
(현)사회적기업 연우와함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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