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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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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루몽'의 기녀 벽성선이 자극한 남성의 처녀성 독점욕구

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14〉앵혈(鶯血) 메커니즘

앵혈(鶯血) : 앵무새 피를 이용한 처녀성 감별법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 작품 〈우렁각시〉. 출처=붓질
우리는 얼굴이 예쁘면 마음씨도 예쁘고 능력도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것이 옳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알면서도 말이다. 이야기는 현실과 다르다. 이야기 속 예쁜 여자는 착하고 못생긴 여자는 나쁘다. 영화도 드라마도 심지어 만화도 여주인공을 예쁘게 그리려고 애를 쓴다.
 
  이런 경향은 내적 자질이 외적으로 나온다고 여기는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적 사고일 수도 있고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처럼 프로이트적 해석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 속의 미녀들은 심성이 선하고 하는 일마저 술술 풀려나간다. 대부분의 고소설의 예쁜 주인공들은 모두 그렇다.
 
  그런데 여기 겉과 속이 같지 않은 두 명의 여인이 있다. 한 명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악한 심성을 지녔고 다른 한 명은 아름다움을 무기로 자기 욕망을 성취하는 집요한 모습을 보여준다. 옛날 소설에 이런 여인들이 있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17세기 여성 교씨의 욕망과 일탈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 친필 원본은 전하지 않고 80여 종의 한문본과 국문본 이본(異本)만 전해지고 있다.
  17세기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 등장하는 아름답지만 악한 여인 교씨(喬氏)가 있다. ‘사씨가 남쪽으로 가게 된 이야기’ 정도인 《사씨남정기》에는 사정옥(謝貞玉)이라는 현숙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유연수(劉延壽)라는 남성과 결혼했는데 자식을 낳지 못한다. 자식을, 특히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당시에 큰 문제였다.
 
  여성을 ‘애를 낳는 도구’ 또는 ‘대를 잇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던 시대에 자식이 들어서지 않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시대에 사씨의 배 속 상황이 감감무소식인 채로 10년이나 흐른다.
 
  바늘방석에 앉은 듯 괴로웠던 사씨는 결국 남편 유연수에게 첩을 들여 대를 이으라는 청을 하고, 유연수는 어쩔 수 없이 교채란(喬彩鸞)이라는 여성을 맞아들인다. 이 여성이 교씨다.
 
  교씨는 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교씨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덜컥 임신을 하고 순풍 아들을 낳는다. 집안 모두가 기뻐하고 사씨 역시 한시름을 놓는다. 교씨는 이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아들을 낳은 자신이 이 집안을 호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씨남정기》는 사씨는 선한 존재, 교씨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사악한 내면을 지닌 존재로 그리고 있다.
  작가 김만중(金萬重)이 중국 배경의 《사씨남정기》를 창작한 의도가 조선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을 풍자하려고 했다는 것을 모두 알다시피, 유연수와 사씨, 교씨의 관계는 우리가 아는 대로 흘러간다. 교씨는 정실 사씨를 모함해서 쫓아낸다. 남편 유연수까지 모함해서 그를 귀양 보내 버리고 집안을 독차지해 버린다.
 
  그녀는 유연수 집안의 식객인 동청과 간통하고 동청이 유연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을 알고도 방조한다. 자기 아들까지 죽었는데도 거리낌 없이 동청과 들러붙어 유연수 집안을 말아먹고 만다.
 
  교씨의 행동은 그녀의 개인적 욕망에 기인한 것으로, 그녀는 자기 욕망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산한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모든 것이 회복된 유연수가 기생질을 해먹고 사는 교씨를 잡아다가 끝내 죽여 버리는데 독자들은 이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교씨의 극단적이고 패륜적인 행동은 마음에서 나왔고, 그런 심성은 그녀의 빼어난 외모와 괴리된 것으로 독자들이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교씨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사악한 내면을 지닌 인물이며 그녀의 미모는 색태(色態·여자의 고운 자태)로 규정되어 버린다.
 
 
  19세기 여성 벽성선의 욕망과 전략
 
《옥루몽》의 표지.
  19세기 소설 《옥루몽(玉樓夢)》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채우고도 남을 내용으로 가득한데, 특히 주인공 양창곡(楊昌曲)은 자그마치 2처 3첩을 거느린다. 그 여성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데다 서로 질투도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남편 양창곡을 섬긴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더욱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양창곡의 세 첩 중에 욕망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 벽성선(碧城仙)이 있다. 벽성선은 선한 인물이고 끝내주게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리고 교씨처럼 자기 욕망에 노골적으로 충실했다.
 
  벽성선은 기녀(妓女)였다. 어려서 난리 통에 부모를 잃고 버려진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충 그런 거였다. 벽성선은 여느 기녀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자기 신분에서 벗어나겠다는 욕망이 간절했다.
 
  야무지고 야심 찬 벽성선은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총동원한다. 벽성선은 낙양에서 기녀 노릇을 했는데, 미모로 이름을 날려 다른 기녀들이 모두 시기했다. 중국 낙양이라면 조선의 평양이라 할 만한 색향(色鄕)으로 내로라하는 쟁쟁한 기녀들이 많았다. 그런 그곳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낙양에서 궁벽한 시골 벽성산(碧城山)으로 쫓기듯이 낙향한다.
 
  후일 운명의 주인공 양창곡을 만났을 때 벽성선이 이 사건을 두고 “낙양 기녀들이 제 미모를 시기하여…”라고 고백하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벽성선의 낙향을 기녀들의 질시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녀들을 거느리는 기둥서방 주인이 이런 빼어난 에이스를 순순히 풀어줬을 리도 없다. 벽성선이 지방 관기(官妓)로 다시 올랐다는 것은 결국 낙양 주인이 그쪽에 팔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벽성선이 낙양에서 동료 기녀들과 트러블을 일으켰다는 것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벽성선이 기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남자들을 가리고 배척하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애간장이 녹을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동료들에게는 눈꼴신 모습이었다. 벽성선 입장에서 신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남자를 잘 만나서 속전(贖錢)을 내는 것인데,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고위 관직들이 드나드는 낙양이지 궁벽한 산골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낙심치 않고 그 지방 ‘벽성산’의 이름을 따서 ‘벽성선’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며 때를 기다렸다. 집요한 여자였다.
 
 
  “피리를 불고 싶어요”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왔다. 벽성산으로 귀양을 간 양창곡은 어느 날 비파 소리를 듣고 한 집에 찾아가는데, 여염집은 아니었다. 호기 있게 “이리 오너라”라고 불렀는데 이게 웬일인가. 문이 빠끔 열리더니 여종 하나가 위아래로 한참 훑어보고는 그냥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차림새만 봐도 양반인 줄 알 텐데 무엄하게도 무례한 행동을 하는 거였다. 이는 벽성선의 전략이었다. 그녀가 가장 꺼리는 것은 ‘함부로’ ‘아무나’ ‘막’이었다. 그래서 여종을 시켜 간(?)을 보게 한 거였다.
 
  양창곡이 한참 기다리니 여종이 다시 나와 안으로 맞는다. 집 안에 들어서니 절세미녀가 당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도 일어나 맞지 않았다. “이 고을 관청의 기녀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고얀 생각보다는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와 말투, 그 새치름한 행동에 그만 빠져들고 만다. 황제에게조차 대들었던 당당함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양창곡은 그녀 앞에서 우물쭈물 주춤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렇게 게임이 이미 끝나 버렸다.
 
  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은 벽성선은 양창곡을 떠보고는 자신이 기다리던 딱 좋은 남자란 걸 눈치 챈다. 그러자 그를 매혹시키려 든다. 그윽한 향기의 술을 대접하며 사향 냄새는 숨기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둥, 보검은 칼집 속에서도 빛을 낸다는 둥 자기 미모를 은근히 드러낸다. 야리야리한 여인의 은근한 눈빛과 고혹적인 말솜씨에 양창곡은 저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벽성선의 전략은 아슬아슬 줄듯 말듯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제 미모에 고고함을 더하는 신비감 조성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욕망의 팔루스(phallus·남근)로 만들어 광휘로 빛나게 하는 거였다. 남자들은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할 때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생기고, 아슬아슬하게 잡히지 않음에 더 애가 달아 안달이 나며 욕망이 증폭되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녀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다. 어차피 결론은 잠자리에서 날 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했다. 그렇게 그녀는 양창곡을 자신의 광휘로 감싸기 시작하고 양창곡은 그녀에게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처음 만남에서 서로 통했다. 양창곡은 그렇게 만난 첫날밤 거사가 이뤄질 줄 알았다. 당기면 붙어야 하는 것이 남자지만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음날 만나자며 돌려보낸다.
 
  “이곳이 번잡하니 내일 달 밝은 밤에 저희 집 뒤에 있는 벽성산에 올라가 이 피리를 불고 싶어요.” ‘피리를 분다’는 상징으로 미묘한 자극을 주면서 돌아가라 했다. 양창곡은 몸이 한창 달아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허둥대며 날이 가기를 기다려 다음날 산에 오른다.
 
  벽성선은 선선한 태도로 양창곡을 맞았다. 웃으며 손을 잡고 같이 산에 오른다. 그리고 술을 따라 권하며 얼큰하게 취흥을 돋운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가 달빛이 선연히 비추는 그 중턱에 서서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고 붉은 입술로 피리를 머금듯이 물고 부는 피리 소리는 양창곡의 가슴을 둥둥 울리게 했다. 본래 음률에 재주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어찌나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는지, 불고 나자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온몸의 기운이 빠져 흐느적거리는 듯했다.
 
  그야말로 벽성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정을 쏟아부은 일생일대의 승부수였다. 벽성산의 탈속한 신비한 분위기와 그 속에 어우러진 음률의 광휘로 양창곡은 이날부터 날마다 그녀의 집에 간다. 하지만 벽성선은 도무지 몸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지기상통(知己相通)과 육체적 전략
 
  시대마다 사회마다 다르지만, 이런 사회적 문화적 우회로(迂廻路)는 언제 어디나 존재한다. 대놓고 말해, 기녀는 창녀이다. 몸을 매개로 이런저런 이득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소한 금전부터 양반의 첩이 되는 것까지 어느 정도 편폭이 있지만 그 본질은 같다.
 
  그러나 그곳에도 성(性)을 사는 남성이나 성을 파는 기녀나 문화적으로 인정된 우회적 심리적 매개 장치가 중간에 존재한다. 목적은 섹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다른 목적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또 스스로 믿는 것이다. 그 문화적 우회로가 옛날에는 지기(知己)로 상통(相通)하면 계급, 성별, 연령을 떠나 진정한 관계이니 허신(許身)이 가능하다는 관념이었다.
 
  지기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 만난다면 기녀라 해도 상대를 진정으로 따른다는 논리다. 기녀는 비록 몸은 팔지만 마음은 안 판다는 논리이고, 그 마음은 바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알아주는 남성에게 준다는 논리다.
 
  그러니까 벽성선이 양창곡을 지기로 인정했으면 자연스레 몸을 섞고 지내는 것이 수순이다. 그걸 마땅하다고까지는 못해도 몸을 허락하고 말고가 중요한 이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벽성선은 그것을 이슈화시킨다. 양창곡을 향해 “스톱(STOP)!”하며 손을 내젓는다.
 
  양창곡이 벽성선과 지기로 상합하매 서로 교칠(膠漆)처럼 딱 붙어 바야흐로 막 운우지락(雲雨之樂)을 하려고 하자, 벽성선이 뿌리치며 허락지 않았다. 양창곡이 의아해 물었다.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낭자와 친하게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는데, 굳이 몸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무슨 곡절인가?”
 
  벽성선이 말했다. “군자의 사귐은 그 담박함이 물 같고 소인의 사귐은 그 달콤함이 술 같다고 했습니다. 첩은 평생토록 지기와 상통하기를 원하지 평범한 자들과 상통하기를 즐겨 하지는 않았습니다. 상공은 저의 지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청루(靑樓)의 천한 기생의 음란한 품성으로 사귈 수 있겠습니까. 부부가 될 연분을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훗날에도 날이 무궁하니 지금은 붕우(朋友)로 아세요.”
 
  양창곡은 그 지조를 기특하게 생각해서 너무 강박하지는 않았지만 그 풍정(風情)이 너무 담연(淡然)함은 의심했다.
 
 
  몽정까지 한 양창곡
 
  지기로 사귀었다면서 육체관계를 거부하는 것을 양창곡은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부하는 벽성선의 말도 무슨 소린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아무튼 죽어도 몸을 주지 않겠다는 벽성선 앞에 양창곡은 속수무책이다. 그냥 덮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심하게도 그는 귀양 기간 내내 동침하지 못한다. 그저 바라보고 침만 삼킬 뿐이다. 그가 귀양에서 풀려나 돌아가는 날까지도 육체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쯤 되면 벽성선이 해도 너무한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낙양 기녀들이 벽성선을 시기한 이유와 오죽하면 에이스를 팔아버린 뚜쟁이 기둥서방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이런 막무가내라니… 정말 답이 없다.
 
  얼마나 양창곡이 벽성선의 몸 때문에 안달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몽정(夢精)까지 한다. 그가 해배(解配)되어 황성으로 올라가던 중 날이 저물어 한 주막에서 자는데, 밤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양창곡이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온 벽성선이 방으로 쏙 들어왔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며 부끄럽다는 듯 뉘우친다.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양창곡이 그녀를 얼싸안고 방을 뒹군다. 질퍽한 정사를 벌이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를 두드리는 자가 있다.
 
  “주인님, 왜 이러셔요? 어디 아프세요?”
 
  눈을 떠보니 수행하던 몸종이 자신이 온갖 이상한 몸짓으로 버둥거리자 놀라 그를 깨운 거였다. 꿈이었던 거다.
 
  벽성선과 양창곡은 결국은 동침한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이다. 벽성선이 야무지게 양창곡에게 첩으로 들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출정(出征)한 남편도 없는 황성의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 비로소 동침한다. 이때 그녀는 ‘일개 천한 기녀’가 아니라 ‘연왕(燕王) 부인’으로 신분이 바뀌어 있었다. 자신이 얻을 것을 완벽하게 얻을 때까지 죽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꺼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춘향전(春香傳)》의 춘향이가 아무 힘도 없는 도련님에게 옷을 홀홀 풀어버리고 냉큼 달려든 것은 벽성선이 보기에 어리석은 멍텅구리 짓이나 다름없다.
 
 
  앵혈(鶯血) 메커니즘과 자기 존재 증명
 
앵혈(鶯血)은 꾀꼬리의 피라는 뜻으로 혼인하기 전 처녀의 팔에 찍는 진한 붉은색 물감의 일종이다. 궁중에서 13세 즈음의 궁녀 지원자들의 처녀성을 감별하기 위해 사용했다. 동그랗게 방울이 맺힌다면 처녀, 그대로 흘러내리면 처녀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벽성선의 행위들을 종합하면 요부(妖婦)의 행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교씨의 행위가 간통과 자식의 치사(致死) 방조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있어 그렇지, 자기 욕망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교씨나 벽성선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교씨는 징치(懲治)되고 벽성선은 영화로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들도 그 차이를 인정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벽성선의 팔뚝에 찍혀 있던 앵혈(鶯血) 때문이다.
 
  앵혈은 궁녀를 들일 때 13세 이상 숙성한 소녀가 후보자 중에 있을 경우, 그 처녀성을 감별하기 위해 앵무새의 생피를 그 팔목에 묻혀 처녀성을 판정하는 법을 말한다. 비과학적 속신(俗信)에 불과하지만, 구한말까지도 궁중에서 이것을 믿었다. 앵혈을 팔에 찍어 두었는데 동침하면 그 붉은 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속신이므로 더더욱 불가능하지만, 민간에서는 그대로 믿었다. 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소설 속에 형상화한 것인데, 이는 남성 욕망에 의한 처녀성의 독점욕이자 지배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기녀가 앵혈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벽성선은 기녀지만 앵혈을 유지한다. 그녀의 앵혈은 양창곡과의 동침 후에 사라진다. 그때까지 처녀성을 유지해서 고스란히 바쳤다는 의미이다.
 
  벽성선이 지기로 상통했지만 몸을 허락하지 않고 끝까지 미룬 것은 바로 앵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귀양지에서 동침해서 앵혈이 사라졌다면, 해배되어 황성으로 올라간 양창곡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이는 동안, 아니 양창곡이 귀양지에서 풀려나는 순간, 벽성선이 어느 남자와 붙어먹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벽성선이 끝까지 지키려고 한 것은 ‘저는 오직 당신만을 따르겠어요’였고, 그것은 그녀의 팔뚝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점으로 구체화되는 거였다. 그 앵혈만이 자신의 심성의 진실을 담보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집요하게 몸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씨와 벽성선은 그 과도함에서 차이가 나기에 그 결과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둘 모두 미모와 심성이 불일치했다는 것은 같다. 그런데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들의 심성과 외모가 불일치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본래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교씨는 교씨다웠고, 벽성선은 벽성선다웠다는 생각 말이다.
 
  본래 그랬던 그녀들을 두고 “얼굴만큼 마음도 고와야지”라며 강요하는 남성들과 사회의 기제와 압력이 요구하는 것이 달랐던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착함’을 내놓으라고 그녀들을 재단했던 것만 같다. 그것을 내놓지 못하고 일탈하고 파행한 교씨와 끝까지 몸을 지켜 앵혈을 보여준 벽성선의 결과가 이러한 이유에서 달라졌던 것 같다.
 
  벽성선은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자신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외부’로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다. 자기 순결을, 자기 존재 증명을 앵혈로 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을 군침 흘리며 지켜보고 있는 세상에게 말이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ㅣ글=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09 14:35   |  수정일 : 2017-03-1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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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광수네  ( 2017-09-07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요즘 한국여성들이 이글을 앵혈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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