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칼럼 | 문화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서양화가의 조경 이야기 -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으로

정정수
홍익대 및 동교육대학원 졸업 /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기전대학교 예술조경과 교수, 고도원아침편지 명상센터 옹달샘 예술총감독,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예술총감독, 서울시 시민청예술축제 전시총감독,
현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 개인전 14회, 2008 세계조경가대회(IFLA)
최우수상 수상(인도개최), 2008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 수상(문화부문)

글 |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 호수는 하늘을 담아 내고 주변을 키워 낸다. 서정적 호수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심을 갖게 한다. [벽초지 수목원(2002~2004년 작업)]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다
 
  미술인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한다. 화가인 내가 조경을 한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왜 화가이면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 같은 물음에 내가 “캔버스 대신 땅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대답하면 듣는 이들은 격하게 공감한다.
 
  이렇듯 조경에 푹 빠져 조경 일에 전념하다 보니 자연 속에서 식물을 접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미술은 물론 조경 역시도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으나마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그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감동으로 전달되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보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상대에게 반응하며 정서를 공유하는 시간은 불과 3초 만에 결정된다고 한다. 아마도 첫눈에 반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이 같은 만남이 좋게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거쳐 감동 또는 호감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결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기다움을 유지할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그러하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정원에 나무와 꽃을 심어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람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답지 않은 인위적 조경의 속성
 
사진의 계류는 자연에서 형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작업자들과 함께 만든 인공계류이다. 현무암으로 계류의 경계를 쌓고, 바닥에는 강자갈을 깔아 자연스럽게 하였다. 그 밑에는 파이프를 묻어 자연에서 그러하듯 물이 끊임없이 순환하도록 했다.
[벽초지 수목원(2002~2004년 작업)]
  어떠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자연을 표현하는 조경과 관련된 결과물은 사람이 만들었으나 만들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 이상의 표현은 없을 것이다. 지나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즉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생각으로 조경을 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술이 시장성과는 크게 관계없이 창의적 산물을 생산하는 데 비해, 디자인은 창의적 산물이 시장성의 바탕을 향해서 다듬어지고 재생산된다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미술 속에 디자인을 포함시키거나 또는 순수미술에서 분리(?)시키는 이유이다. 이것은 예술과 대중예술의 차이와 같이 미술이 디자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어서 예술적 조경과 상업적 조경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예술의 대부분의 본질은 창의(創意)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이 상상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고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볼 수 있다면 창의적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겠지만, 이 같은 생각 없이 벤치마킹만을 머릿속에 갖고 있다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실체의 외면만을 보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들 간의 융합이 필요한 이유이다. 감각기관들 중 비교적 외부로 노출된 시각적 감각에 생각과 지각을 붙여 놓고 판단하는 습관을 갖고 그 안에 가슴을 넣는다면 뛰어난 감각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융합된 감각이 만들어 내는 예술적 조경이 주는 엑스터시(Ecstasy)와 같은 감흥은 아름다움, 즉 미(美)에 대한 이해로부터 보는 이의 감성을 보다 깊은 곳으로부터 이끌어 내게 된다.
 
  조경이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전달 요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감동이 있는 조경을 위해 아름다움은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
 
 
  미술이어야 하는 까닭
 
수면과 같은 높이를 유지하는 데크는 규제사항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관람객에게는 수면 위를 걷는 듯한 착각과 함께 자연과 좀 더 가까운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어린이 놀이시설을 포함한 시설물은 25% 내외의 위험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좀 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허가사항에 명시하고 있다.
[벽초지 수목원(2002~2004년 작업)]
  우리의 내면에 저장되어 무의식으로 남는 것은 미술적 영상이다. 즉, 그림처럼 남아 있다가 필요에 의해 나타난다. 마치 검색어가 검색되어지는 순간에 관련정보가 나열되듯이 필요할 때 그림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 떠오르는 그림을 어떻게 현실로 정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미술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미술적 요인이 필요하며 자기를 꺼내 보일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부연을 달아 이야기한다면, 시각에 의존해서 외형으로만 판단되고 잠재되어지는 영상을 통해서는 관념이나 감정을 볼 수 없다. 마치 바람 자체를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구름의 움직임을 볼 때, 초원의 풀들이 물결처럼 누워서 움직일 때, 그때 바람을 보았다고 느끼지만, 바람을 본 것은 아니다. 바람에 의해 움직여지는 현상을 대상으로부터 느낀 것과 달리 한 차원을 넘어서 또 하나의 다른 듯한 조경 공간, 즉 예술적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또는 자신이 이방인이 되어 먼 곳으로부터 여행하던 중에 찾아온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잠시라도 머물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많은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 SNS에 남기며, 다시 찾고 싶어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모델과 배경 중 어떤 것에 비중을 둘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모델이 된 자신이 어디서 찍어도 멋지다면, 장소를 떠나서 생각해 봐도 모델이 멋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배경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만 멋지다면, 모델보다 배경이 더 멋진 것일 것이다. 누가 어디서 찍어도 멋진 배경들로 만들어진 조경 공간이라면 많은 이에게 공감을 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도심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은 도심의 공간 속에서도 멋진 카페를 선호하며, 점심값보다 비싼 음료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공간에서의 만남을 즐긴다.
 
  누구나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어하며, 한번쯤은 주변의 현실로부터 다른 장소에 나를 옮겨 놓고 싶은 공간을 찾는 것이다. 그 공간이 아름답기를 희망하면서!
 
 
  아름다운 장소를 훼손하는 행위
 
새벽부터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모습이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홍성 천수마을(2015년 작업)]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명소는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다. 남들이 찾지 않는 장소를 찾아내서 즐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장소가 추천되어지고 그곳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중에게 노출될 때쯤이면 이곳의 관리자들은 상세함을 덧붙여 현장감 있게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찾는 이가 점차 많아지게 되면 관광객들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또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관계자들이 앞장서기 시작한다.
 
  관광객들의 편리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에도 작으나마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조성된 관광지들의 대부분은 실망스러울 때가 있는데, 언젠가 찾았던 때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찾아갔을 때 변해 버린 모습이 실망하게 만든다.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은 역시!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서게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몇천 원짜리 기념품 상가들이 자연의 모습을 가로막거나 일부를 훼손한 채 자리를 잡고 있어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배경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또는 휴양지의 대부분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을 최소화하고 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연으로부터 치유받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관광지를 찾는다. 즉, 자연을 찾아가는 것인데 준비해서 제공하는 것이 훼손된 모습이라면, 사람들이 점점 더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이같이 뻔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이들 중 규제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즉 전문가를 도와주는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문가 위에서 또는 갑의 입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많다. 오히려 규제의 잣대는 이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창의에 대해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어떠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쉬우며,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 판단에 대해 한 번 이상의 생각을 더 얹는다면 한 가지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많은 이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고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세상에 자연만한 스승은 없는 것 같다. 자연이 주는 교훈은 관광지를 조성할 수 있는 방향도 제시해 주고 있다.
 
  자연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면 타인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3-09 11:00   |  수정일 : 2017-03-09 11:16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