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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세상만사

DNA 유전자를 활용해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해 보니...

한민족 이야기(6)-바이칼호의 몽골리언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5-10-26 07:25

최근의 유전과학은 우리민족의 시원(始原)이 바이칼 호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 이들이 남하해 요하문명과 알타이어를 탄생시켰다. 이렇듯 유전과학의 발달은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여 인류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면서 인류의 기원과 이동경로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쪽 바이칼호로 이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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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에 육지의 30%는 얼음으로 뒤덮혀 있었다. 오늘날에는 단지 10% 정도만 얼음으로 덮혀 있다
 
태초부터 지구 역사는 빙하기와 온난기를 반복하여 왔다. 지구상에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는 대규모 빙하기는 없었지만 소규모 빙하기는 수 천 년을 주기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빙하기는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빙하기가 오면 초원이 얼어붙고 생물군이 사라져 초원지대는 지금보다 수백 km나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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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온난기가 찾아오면 북반구를 뒤덮고 있던 얼음층이 북쪽으로 물러가면서 북쪽에 새로운 초원들이 생기고 생물군이 나타났다. 초원이 북상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초원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태고의 신비, 바이칼호
 
오늘날의 세계 인류는 크게 세 종족으로 나뉜다. 백인종을 포함하는 코카소이드(Caucasoid)와 황인종을 총칭하는 몽골로이드(Mongoloid) 그리고 흑인종을 총칭하는 니그로이드(Negroid)가 그것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이러한 세 종족으로 분리된 것은 호모 사피엔스 단계로 우리 민족은 몽골로이드에 속한다.
 
간빙기가 끝나고 빙하기가 다시 오면서 몽골리언은 바이칼호 지역에 오랜 기간 갇혀 살았다. 주변이 동토의 빙하가 되어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빙하기에는 바이칼호에 물이 적었고 대부분 초원이었다. 초원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였다. 당시 호수의 수면은 훨씬 낮고 물고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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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빙하기가 끝나면서 물이 차 지금의 바이칼 호수가 되었다. 바이칼 호수는 여러 가지 세계 기록을 갖고 있다. 2500만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다. 그 둘레는 2,200km이며,  최대 깊이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호수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 40미터 속까지 보인다. 330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 강 하나뿐이다.
 
바이칼 호수는 가장 차가운 호수이다. 한 여름에도 1분 이상 발을 담글 수가 없다. 죽은 물고기가 부패하지 않을 정도다. 그 수정같이 맑은 물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물물개와 철갑상어 그리고 내장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물고기 골로미양카가 산다.
 
오랜 고립의 역사로 바이칼호에는 동물 종이 무려 1550종이나 산다. 그 가운데 75%가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유종이다. 이 비율 또한 세계 생태계 가운데 가장 높다. 이들은 세계 어느 지역의 생물과도 다르며 유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곧 이들 생물들은 2,500만년 동안 이 호수에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화되어 온 것이다. 바이칼호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진화박물관이자 원시생명체 연구소다.
 
몽골로이드의 형질적 특징이 형성된 바이칼호수
 
궁둥이에 몽골 반점을 갖고 있는 몽골리언의 형성지가 바로 이 알타이-바이칼 지역이다. 이곳은 몽골리언이 성장하여 성인이 된 곳이다.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 땔감이 많아 빙하기에도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은 강풍과 추위에 적응하면서 체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한 체형으로 진화했다. 찬바람을 피하려 눈은 작고 가늘게 찢어졌으며, 추위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에 지방이 두툼한 눈으로 바뀌었다. 또 추위에 이겨내려 두꺼운 피하지방층, 평평한 얼굴, 얇은 입술, 낮은 코 등으로 진화했다. 추위에 동상에 걸리지 않고 눈길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특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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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형 석핵
 
바이칼호에 현재 수면만큼 물이 올라온 게 12천 년 전이라 한다. 아마 당시 사람들이 거대한 홍수를 만나 바이칼호 지역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기원전 14천경 바이칼호수 연안에서 등장한 동북아시아의 쐐기형 석핵이 불과 12천년 사이에 티벳, 몽골, 동북시베리아, 한반도, 일본까지 급속히 확산되었다. 가벼운 나무창으로 기동력을 확보한 집단이 바이칼을 기점으로 동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고고학적 유적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 구석기 시대로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들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35만 년 전의 고고학적 유적이 전혀 발굴되지 않는다. 반면 더 추워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 같은 이 지역에는 유적이 많다. 더구나 이르쿠츠크 대학의 학자들은 이들의 문화가 세계 어느 곳의 문화와도 다르다고 증언하고 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이동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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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원전 7197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국가 환국의 위치가 바로 바이칼호 주변이다. 그 뒤 빙하기가 끝나 기후가 풀리면서 자연히 이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들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갔다. 몽골리언의 신체적 특성은 동북아시아에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체질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동북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인디언들의 중심그룹이 이동한 것이 14천 년 전이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신화와 습속은 우리 샤머니즘의 전통과 흡사하다. 그들의 기층문화가 우리 민족의 원시문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그들의 기원과 계통이 우리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도 우리말과 뿌리가 같다는 게 배재대학 손성태 교수의 주장이다.
 
그 뒤 서쪽으로 간 몽골리안 국가들에는 핀란드, 헝가리, 터키를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부탄 등자가 들어가는 나라가 많이 있다. 그 탄이 우리나라의 이랑 똑같은 말이란다.
 
그 뒤 동이족의 중심지역도 남하하여 홍산문화 지역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한 것이 11천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꽃핀 홍산문명은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약 2천 내지 1천년 정도 앞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들이 조선족과 흉노족으로 나눠진다. 조선족이 건국한 나라가 고조선이다. 조선시대에 오랑캐라고 불리었던 만주 일대의 민족들이 기실 모두 한 핏줄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조선족과 흉노족은 3000년 전에는 형제 동족이라는 내용이 있다.
 
 
몽골리언은 모두 형제 민족
 
역사적으로 바이칼 호수는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의 발원지로 그들은 모두 몽골리언의 후손들이다. 기원전 200년부터 한나라를 압박하며 북쪽 초원지대에 큰 나라를 세웠던 흉노족은 물론 중국에 북위(北魏), 북주(北周), (), ()을 건설했던 선비족의 고향도 바이칼호 주변이다.
 
4세기 후반 로마를 위협했던 훈족6세기 후반 20년 만에 만주에서부터 서쪽 비잔틴제국의 북방지역, 남쪽으로는 힌두쿠시에 이르는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 동서남북에 걸친 대제국을 일구었던 투르크(돌궐)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8세기 중반 투르크제국을 무너뜨리고 몽골 고원을 차지한 후 약 100년 동안 지배한 위구르족, 9세기 투르크 계통 몽골족 키르기즈, 10세기 요()나라를 건설하여 북송(北宋)을 압박하며 11세기까지 동방의 실질적 지배자 거란족 역시 몽골리언이다.
 
일찍이 12세기 초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일어나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스칸의 몽골 등 유목민족 모두가 역사적으로 바이칼호수 주변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다. 그들에게 바이칼호수는 민족의 발원지이자 성지였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유전자가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다만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중국인들이 이 민족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 한자들의 발음이 달랐을 뿐이다.
 
수천 년간 인류의 삶과 문명에 가장 역동적인 유목민족들의 거점 핵심지역이 바이칼 호수 지역이다. 곧 바이칼이 모든 몽골인종의 근원지였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 선생과 봉우 권태훈 선생 등이 바이칼 호수 일대를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주목한 바 있다.
 
 
우리 한민족이 유전학적으로도 몽골리언의 원형질을 가장 잘 계승해
 
중국 동북 3성과 윈난성 일대 소수민족, 장족도 몽골리언들이다. 몽골, 중남미의 인디오들베트남도 몽골리언들이다. 중국 남부로 내려간 몽골리언은 남방계 민족과 함께 중국 문명을 만드는 주류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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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 유전자 지도 
 
 
유전적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다. 70%는 북방계, 30%는 남방계이고, 극히 일부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이 두 계열의 사람들이 완전히 결합하여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의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고 있다.
 
빙하기가 끝나고 요하 부근으로 남하한 몽골리언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 무렵 먹을 게 풍부한 발해만과 한반도 바닷가와 강가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뒤 이들이 요하 문명과 알타이 언어를 탄생시켰다. 유전자 추적에 의한 인류 이동도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 몽골인, 티베트인, 터키인은 에스키모인, 아메리카 인디언과 유전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한 묶음이다. 이른바 알타이어족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약 8000년 전에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랄어(핀란드어, 헝거리어)와 셈어(히브리어, 아랍어, 고대 아키드어) 역시 비슷한 연대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한반도와 인도 남부인의 유전자 지도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두 곳 간에 사람의 이동이 많았던 것을 뜻한다. 그만큼 양 지역간에 해상 왕래가 잦았던 증거이다. 가야 왕국으로 시집 온 인도 공주 허 황후의 이야기가 신화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유전학적으로 몽골리언의 원형질을 가장 잘 계승, 발전시켰다고 한다. 인류가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를 활용해 당뇨병을 연구하다 이 DNA가 인류의 이동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한 이홍규 의학박사의 말이다. 한국인과 바이칼 호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인이 혈연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사실은 모스크바유전학연구소의 자카로브 박사에 의해서도 규명되었다. (출처; 한국인의 기원, 이홍규, 우리역사연구재단)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홍익희 세종대 교수

서울고와 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와 1978년 KOTRA 입사하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무역관 근무를 거쳐, 경남무역관장, 뉴욕무역관부관장, 파나마무역관장, 멕시코무역관장, 마드리드무역관장, 밀라노무역관장을 역임하고 2010년 정년퇴직했다. 배재대학에서 ‘서비스산업의 역사와 미래’, ‘유대인의 창의성’,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 바 있으며 현재는 세종대학에서 ‘세종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32년간 수출전선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장단점을 눈여겨보았다. 우리 민족의 앞날도 제조업 보다는 그들이 주도하는 서비스산업에 있다고 보고 그는 10년 전부터 유대인 경제사에 천착해 아브라함에서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 10권을 썼다. 그 축약본 <유대인 이야기>가 2013년 초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예스24 네티즌 투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출간한 <세 종교 이야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2년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또 같은 해 화폐금융시리즈 곧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동시 출간했다. 최근에는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종이책 이외에도 금융산업 등 각종 서비스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한민족 이야기> 등 103권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등록일 : 2015-10-26 07:25   |  수정일 : 2015-10-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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