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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내 동태 몸뚱이 어디갔어?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1-30 10:14

날카로운 밤바람이 빌딩들을 휘감아 얼어붙게 하는 2019년1월25일 저녁이었다. 나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의 한 낡은 빌딩 지하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작은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는 지하공간은 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썰렁했다. 음식점들은 취객들로 부글부글 끓어올라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 지하 식당가가 폐장한 듯 적막했다. 아예 불이 꺼버린 음식점도 있었다. 떡볶이 집, 녹두빈대떡집, 갈비탕집 등이 모두 문을 닫고 사람이 없었다. 그런 속에서 코너의 만두전골집에서만 따뜻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내가 찾아가는 집이었다. 의뢰인으로 알게 되었던 모자가 얼마 전 개업한 음식점이었다. 온갖 고난을 딛고 일어나 열심히 살아가는 모자였다. 아들은 중국의 명문대학에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았다. 교수나 외교관을 지망하던 그는 어느 날 인생의 궤도수정을 했다.늙은 엄마를 갉아먹으면서 허구 헌 날 그럴듯한 직업만 바라볼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었다. 그들은 빌딩의 지하에 있는 만두전골집을 인수해서 개업을 했다. 나는 작은 법률사무소를 하면서 어떻게 사업을 할까 하나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신용을 지키고 선을 행하면 성공하리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사건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님이 내게 맡긴 의뢰인으로 한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 낮은 자세로 그들을 섬기겠다고 기도했었다. 요즈음은 권리금을 받기 위해서 사기극이 넘치는 시대였다. 이를 테면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와 본 셈이기도 했다.
음식점 내의 몇몇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부대찌개를 앞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손님도 보였다. 나는 구석에 앉아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바로 찌개와 반찬들이 나왔다.묵은지와 콩나물 그리고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 맛갈스러운 찌개였다.
“변호사님 이거 들어 보세요”
주방장을 하는 아들이 계란찜을 가지고 와서 앞에 놓았다.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노릇노릇한 계란부침이 사각으로 단정하게 말아져 있었다. 벌써 수준급의 솜씨가 된 것 같았다. 청년은 이어서 자기가 개발한 고기완자도 내왔다. 철판위에 놓인 함박스테이크 비슷했다. 스며 나오는 고기즙과 간장소스가 잘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엄마는 끓는 동태탕을 손님들 상에 가져다주기 바쁜 것 같았다. 갑자기 홀 저쪽에서 어떤 남자가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이봐요 주인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동네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두란 말이야. 내 입에 따라 가게가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
“예, 예 잘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에 익은 청년의 엄마 목소리였다. 미용사로 있을 때부터 손님을 모시는 데는 이력이 난 여자였다. 손님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동태탕을 시켰는데 어떻게 대가리하고 꼬리만 있는 거야? 중간의 몸통은 어디로 갔어?”
그게 무슨 소린지 얼핏 이해할 수 없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엄마는 계속 굽신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 가게를 권리금 얼마를 주고 인수했는지 알고 있어. 그리고 한 달에 얼마씩 임대료 주는 지도 알고 있고. 알았어? 아줌마.”
음식점 마다 그런 구더기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얄팍한 법률지식을 가지고 상인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잠시 후 내 앞으로 그가 문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뾰족한 코 위에 은테안경을 거친 곱슬머리의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잠시 후 청년의 엄마가 내 자리로 왔다.
“동태의 머리와 꼬리만 있고 몸통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물었다.
“손님이 얼른 몸통을 다 먹어 치우고 없다면서 한 마리 더 달라는 트집이예요. 그래서 한 마리 더 가져다 드렸어요.”
“그런 손님도 있어요?”
“음식점을 냈더니 더 지독한 손님도 낮에 있었어요. 찌개에 소주를 시켜 먹더니 여러 손님이 나가는데 얼른 섞여서 도망가 버렸어요. 제가 경험이 없어서 놓쳐 버린거죠. CCTV를 봤더니 옷은 신사모양 멀쩡히 입었더라구요. 음식장사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내가 힘들다고 하던 미용사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아들하고 밤 한시까지 만두를 빚어야 하고 새벽에는 경동시장가서 야채 사와야 하고 잘 시간이 없어요. 그나마 썰렁한 식당가에서 우리 가게만 손님이 있는 편이라 다른 음식점 주인들 눈치를 봐야 하구요.”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9-01-30 10:14   |  수정일 : 2019-01-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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