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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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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말고 헌 옷 줘요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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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 다 흘러가고 보름 남짓 남았다. 나는 지하철 서울역에서 내려 몇 번 출구로 나갈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손에 헌 옷이 든 비닐봉지를 든 남자가 앞에 보였다. 낡고 닳아빠진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이 아마도 노숙자 같았다.
 
“실례지만 드림센터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합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 거기요? 바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면 됩니다.”
 
그가 친절하게 손짓으로 가리켜 주었다. 노숙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후 나는 드림센터의 입구에 있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두꺼운 비닐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든 노인들이 빽빽하게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항상 그들 사이에 보이던 우목사가 보이지 않았다. 드림센터를 운영하는 우 목사는 노숙자보다 더 누추한 옷을 입고 늙은이와 노숙자의 묘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있는 공기 속에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게 보기에 좋았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몇 명 격리한 방에 데려다 놓고 자선사업을 하는 척 하면서 기부금을 뜯는 사람들은 가짜라는 생각이다. 노숙자들 사이에 작은 의자 하나를 놓고 머리를 깍아 주는 봉사하는 아줌마 미용사도 천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굳이 날개가 있어야만 천사인건 아니니까. 이층의 식당으로 갔다. 플라스틱 탁자위의 큰 냄비 속에는 식은 카레가 약간 남아 있었다. 그 옆에는 제과점에서 보낸 팔다 남은 빵 봉지들이 보였다. 거기에서 일을 하던 우목사와 탁자를 가운데 놓고 마주앉았다.
 
“그렇게 헌옷을 보내달라고 해도 이상해요. 사람들이 바지를 보내줘도 꼭 새 걸 가져다 줘요. 그리고 나중에 욕을 해요.”
 
우목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되물었다.
 
“노숙자들은 말이죠, 옷들을 보관할 수가 없으니까 바지 같은 것도 한철만 입고 버려요. 그러니 한번 입고 버릴 헌 옷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새 옷들을 보내거든요. 그걸 한철 입고 버리는 걸 보면 나중에 화를 내기도 하고 욕을 해요.”
 
그런 그들의 사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계속했다.
 
“여기 합숙소에 설치하는 텔레비전을 기부하는 분도 있는데 저는 이름난 상표가 아닌 가장 싼 걸 가져다 줬으면 해요. 그러면 제가 부담이 없겠어요. 비싼 걸 가져다주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도 인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일일이 인사 하는게 저는 부담스럽거든요. 그냥 편하게 이 일을 했으면 좋겠는 거죠. 저도 받지만 말고 남에게 뭔가 주고 싶어요. 엄변호사님 제 선물 좀 받을래요?”
 
“그러죠”
 
그가 주는 걸 감사하면서 받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지난 번 왔을 때도 그가 주는 누룽지를 받아갔다.
 
“가까운 학교에서 먹고 남은 밥들을 보내주는데 여기서도 그게 남아요. 그래서 기계를 사다놓고 계속 누룽지를 만들어요. 그거 좀 가져다 드세요.”
 
노숙자 출신 봉사자로 보이는 나이든 남자가 옆에 비닐봉지에 든 누룽지를 몇 개 가져다 놓았다. 나는 그에게서 삶에서 나오는 한 두 마디의 진리를 얻어듣기 위해 일 년에 한 두 번씩 그곳을 들른다.
 
“여기 현장에서 하는 즉석 설교 한 말씀 들읍시다.”
 
내가 말했다.
 
“우선 제가 목사니까 목사로서 고백하겠습니다. 목사로 교회를 할 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이란 놈이 동행하는 것 같았어요. 설교를 하는 중에도 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서면 그 사람이 헌금을 안 해도 아 신도 하나가 늘면 헌금이 늘어나겠구나 저 사람은 얼마짜리구나 하는 게 기계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거예요. 예수는 전하지 않고 내 비즈니스를 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신도 머릿수를 늘이느냐 헌금을 많이 걷느냐 건물을 크게 짓느냐가 솔직히 뇌리에 가득 찼었어요. 그게 전혀 없는 목사라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여기 있으면 그런 게 다 증발하고 없어져서 마음이 편해요. 목사가 된 게 좋은 건 목사니까 목사를 마음대로 비판해도 된다는 거죠.”
 
그가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씩 웃었다. 그의 높게 솟은 콧등이 보였다. 지난 해 왔을 때 그는 술 취한 노숙자가 때려 코뼈가 부러졌었다고 말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여기서 묵는 노숙자들을 보면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의외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없어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니까 서로 위로를 받고 우울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렇겠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시에 계속 낙방했을 때는 같이 떨어진 사람만 보면 금세 슬픔이 사라지곤 했었다. 그는 마음이 활짝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속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타입이었다. 이따금씩 노숙자 합숙소를 찾는다. 단상에서 가운을 입고 성가대를 배경에 두고 하는 관념적인 근엄한 설교보다 노숙자 합숙소에 숨어있는 성령에게 듣는 한 마디가 더 감동적인 것 같다. 진리는 화려한 강단에서도 광야에서도 노숙자 합숙소등 어디에도 존재하는 거니까. 나는 비닐봉지에 가득 누룽지를 선물로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한밤중에 성경을 읽고 백 년 전 한 크리스챤이 쓴 글을 읽는다. 그는 성경의 해석을 신학자에게 의존하지 말고 공중을 나는 새나 들에 핀 꽃을 보고 하라고 하고 있다. 깊은 암시가 담긴 말 같았다. 예수님도 다시 이 땅에 오면 노숙자 합숙소 같은 곳을 배회하지 않으실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8-12-24 09:35   |  수정일 : 2018-12-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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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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